한때 기아차 인수 타진했으나 결국 무산···인수했다면 국내 완성차 시장 양강체제 됐을 가능성도

1993년 신경영 선언 당시 이건희 삼성 회장. / 사진=삼성전자
1993년 신경영 선언 당시 이건희 삼성 회장. / 사진=삼성전자

[시사저널e=엄민우 기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별세 후 그의 삶이 재조명되는 과정에서 과거 자동차사업에 관심을 기울였던 사실도 새삼 회자되고 있다. 과거 이 회장은 기아자동차 인수에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실제로 인수합병이 이뤄졌을 경우 삼성전자는 물론 현대차, 나아가 국내 자동차 시장에 적잖은 영향을 줬을 것이란 분석이다.

재벌 오너 중에서도 이건희 회장의 차(車) 사랑은 남달랐다. 자동차에 관심이 많아 차를 일부 분해 및 조립을 할 수 있었고 슈퍼카 등 자동차를 수집하는 그야말로 차 애호가였다. 특히 용인스피드웨이에서 보유하고 있던 차량을 타고 달리는 취미생활을 즐겼던 일화는 유명하다. 요즘시대 분위기로는 ‘힙(Hip)’ 한 회장님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당시엔 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일부 있었다.

이 회장은 단순히 차 자체에 대한 관심을 넘어 자동차 사업에도 열정을 가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1995년 삼성자동차 부산공장을 착공하며 사업에 뛰어들었으나 1997년 IMF가 터지며 결국 르노에 회사를 넘겨야 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 회장의 자동차 사업과 관련 가장 이슈가 된 부분은 기아차 인수와 관련한 부분이다. 90년대 기아차가 적자를 내며 자금난에 허덕이던 때 삼성은 끊임없이 인수를 타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단번에 안정적으로 완성차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이재용 부회장 역시 하만 인수를 통해 자동차 전장사업 시장에 단숨에 진입한 바 있다.

허나 기아차 인수에 관심을 보인 곳은 삼성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현대그룹도 기아차 인수에 관심이 있다고 밝히며 치열한 인수전을 예고했다. 뿐만아니라 대우도 기아차에 관심을 보인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당시 그룹들은 모두 기아차를 인수할 이유가 있었다.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은 삼성이 기아차를 인수하면 3위로 밀려날 것이란 전망이 있었다. 현대는 자동차 업계 1위를 고수하는 데엔 문제가 없었지만 잠재적으로 시장의 경쟁자를 만드는 꼴이었다. 결국 기아차는 현대차의 품으로 가게 됐고 결국 지금의 ‘현대·기아차’가 됐다.

인수가 무산된 지 한창 후인 2008~2009년 무렵 완성차 업계가 흔들릴 당시 삼성이 한국GM, 르노, 쌍용차를 모두 인수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돌기도 했다. 허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결국 이건희 회장의 자동차 사업은 이루지 못한 꿈으로 남게 됐다.

업계에선 당시 이 회장이 기아차를 인수했다면 지금의 국내 자동차 시장이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당시 국내 자동차시장 규모를 보면 2강이 서로 경쟁하는 체제가 적당하다는 이야기가 있었다”며 “삼성이 기아차를 인수했다면 현대차와 삼성의 양강 체제가 수립되고 서로 경쟁하며 발전하는 관계가 됐을 수 있는데, 여러 정치적 이유 등으로 그렇게 되지 못했고 현재의 1강 3약 체제가 됐다”고 분석했다.

이 회장이 자동차에 관심이 많다는 점, 또 현재 삼성이 자동차 전장사업 등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삼성이 자동차 사업을 계속했을 경우 삼성전자와 시너지도 기대할 수 있었을 것이란 주장도 있다. 허나 기아차 인수 무산으로 삼성은 반도체 부문에 더욱 투자를 이어갈 수 있었고 지금처럼 메모리 부문에서 경쟁상대가 없을 정도의 위상을 갖게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편 이건희 회장의 발인은 오는 28일이며 장지는 경기도 용인 삼성가 선영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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