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에서 무산되자 21대 개원 후 다시 제출
정부가 보편요금제 관련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통신업계와 갈등이 커질 전망이다. 정부는 보편요금제 도입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 공약사항인 가계 통신비 인하를 추진할 계획이지만, 통신사들은 5G 투자가 본격화되고 있는 지금, 보편요금제 도입이 투자 여력을 위축시킬 것이란 우려를 나타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달 30일 보편요금제 도입과 보편적 역무 관련 정보시스템 구축·운영 등 내용을 담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보편요금제는 저렴하게 이동통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기본 수준의 음성·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통신사들이 제공하도록 의무화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지난 2017년 6월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문재인 대통령 공약인 기본료 폐지 대안으로 처음 제안했다. 이후 민관 정책 협의회, 규제개혁위원회 심의,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2018년 6월 국회에 관련 개정안이 제출됐다. 그러나 야당은 5G 투자 위축과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이라고 강하게 반대했고 통신사 역시 정부가 제시한 2만원대 보편요금제에 준하는 요금제들을 선보이며 상황을 무마시키고자 노력했다. 반대 속에 결국 보편요금제는 20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정부는 이번 21대 국회에서 보편요금제 법안을 다시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과기부 관계자는 “제20대 국회 회기 만료로 폐기된 정부 제출 법률안을 제21대 국회에서 재발의하는 것”이라며 “전기통신사업의 건전한 발전과 이용자 편익 증진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편요금제 도입으로 통신사들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 통신 3사는 지난해 5G 상용화 이후 관련 인프라 구축을 위해 많은 비용을 투자했다. 특히 정부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기 위축을 개선하기 위해 5G 조기 투자를 종용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보편요금제 도입이 투자 위축을 불러일으킬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앞서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난해 11월 통신 3사 CEO와 만나 5G 중저가 요금제 출시를 촉구한바 있다. 5G 요금제가 고가 요금제 위주로 형성돼 있는 만큼, 국민들의 통신비 부담을 줄여달라는 취지에서였다. 당시 CEO들은 “고민해보겠다”며 즉답을 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신업계에 따르면 중저가 요금제를 출시하기 위해선 5G 가입자가 최소 1000만명은 넘어야 가능한 것으로 자체 평가하고 있다. 과기부에 따르면 5월말 기준 국내 5G 가입자는 687만6914명으로 집계됐다. 올해 연말은 돼야 1000만명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계속되는 5G 중저가 요금제 출시 압박에도 통신사가 이렇다할 반응을 보이지 않자, 정부가 보편요금제 카드를 다시 꺼내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통신사들은 5G 중저가 요금제는 물론 보편요금제 역시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영업이익이 감소하고 있는 상황속에서 5G 설비투자 비용이 증가하는 마당에 요금까지 낮추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경기 부양을 위해 5G 투자는 빨리 하라고 닦달하면서 요금을 낮추라는 것은 모순”이라며 “아직 투자비 회수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요금부터 낮추라고 압박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 3월 통신 3사에게 5G 조기 투자를 권했고 3사 역시 상반기까지 4조원을 조기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통신 3사의 1분기 설비투자(CAPEX) 총합은 1조881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반기 4조 조기 투자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관측이다.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인해 실적이 감소하면서 투자 여력이 줄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과도한 시장개입이란 지적도 나온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보편요금제가 통과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도 정부의 시장 개입이 과하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당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정부의 정책 방향은 어디까지나 시장의 경쟁 활성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어야 한다”며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거나 가격에 영향을 미치겠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통신사 입장에서는 정부의 주파수를 활용해 사업을 하는 만큼, 정부의 뜻을 따라야 하는 것은 맞지만 요금제까지 일일이 간섭하는 것은 너무 과한 처사”라며 “현재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