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치엘비·에이치엘비생명과학, 옵티머스운용 펀드 등에 400억원 투자
환매 중단된 라임운용 펀드에 투자한 상장사들도 다수
소액 주주 입장에선 금융상품 투자 실패에 따른 부정적 영향 불가피
국내 일부 상장사들이 사모펀드에 투자했다가 환매 중지로 손해를 보는 사례가 연이어 나오고 있는 가운데 해당 상장사 소액주주들이 유탄을 맞았다. 금융상품 투자 실패에 따라 재무 악화 및 배당·투자여력 축소 우려가 높아지는 까닭이다. 상장사가 투자한 금융상품이 구체적으로 공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같은 경우가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바이오기업인 에이치엘비와 에이치엘비생명과학이 환매가 중단된 옵티머스자산운용 펀드에 투자한 사실이 드러났다. 에이치엘비는 이달 11일 하이투자증권을 통해 해당 펀드에 300억원을 투자했고 에이치엘비생명과학은 지난 4월 NH투자증권을 통해 옵티머스자산운용에 100억원을 위탁했다.
아직 해당 펀드의 만기가 도래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손실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다만 만기가 앞선 펀드에서부터 환매가 되지 않고 있는 데다 옵티머스자산운용이 부실 자산에 투자했다는 점에서 에이치엘비가 투자한 원금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진양곤 에이치엘비 회장 역시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하고 손실 확정 시 사재를 출연한다는 방침이다.
상장사의 사모펀드 투자 실패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에어부산은 지난해 6월 라임자산운용 펀드에 200억원을 투자했다가 같은 해 10월 라임펀드 환매가 중단되면서 170억원이 넘는 평가 손실이 발생했다. 아시아나IDT와 명문제약, 넥센 등 상장사도 각각 119억원, 29억원, 19억8400만원 등을 라임자산운용의 펀드에 투자했다가 낭패를 봤다.
문제는 이 같은 상장사들의 투자 실패가 일반 소액주주들에게 우회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에이치엘비는 지난해 연결 기준으로 연간 596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에이치엘비생명과학 역시 적자 경영을 하고 있는 상태다. 연구개발에 많은 비용이 필요한 바이오기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모펀드 투자 실패는 주주 입장에선 아쉬울 수밖에 없다. 여기에 에이치엘비는 자금조달을 위해 지난 6월 초 3391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진행하기도 했다.
에어부산과 아시아나IDT 등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에어부산은 지난해 일본과의 관계 악화와 올해 코로나19 확산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상황에서 사모펀드로 100억원이 넘는 평가손실을 기록한 것이 뼈아프다. 항공 관련 IT(정보통신기술)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시아나IDT 역시 항공업 침체에 직면한 상태다. 영업환경과 실적이 좋다고 하더라도 향후 영업 확대를 위한 투자나 배당 여력이 일부 감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모펀드 투자실패는 주주들에게 부정적인 이슈다.
그러나 소액주주들은 이 같은 금융상품 투자 상황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는 실정이다. 게다가 일부 상장사의 경우 해당 투자 건이 이사회 결의도 거치지 않고 집행되기도 했다. 이들은 금융상품 투자를 일반 기업경영 활동으로 분류했는데, 이는 이사회 결의 요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직접 리스크에 대비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사회라는 안전판마저 제 기능을 하지 않은 것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번처럼 운용사의 일탈을 상장사가 사전적으로 차단하기는 쉽지 않다는 측면에서는 억울할 수 있다”면서도 “금융상품 투자 역시 기업 가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될 경우 주주에게 알릴 수 있도록 하거나 이사회를 통해 위험 관리에 보다 더 노력을 기울일 수 있게 하는 제도적인 보완은 필요해 보인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