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그룹 및 총수 성향 따라 각양각색···‘다보스 회의론’ 때문에 갈수록 발길 뜸해져
축구팬들에게 월드컵은 손꼽아온 축제지만, 축구에 관심 없는 이들에겐 남의 나라 잔치다.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을 대하는 각 그룹 총수들의 모습도 이와 비슷하다. 각자 마다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보스포럼을 대하는 모습이 천차만별로 나타나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찾는 발길이 뜸해지는 추세다.
22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막되는 다보스포럼은 전세계 정재계 주요 인사들이 모여 경제현안에 대해 논의하는 장이다. 자연스레 글로벌 경제상황에 촉을 세워야 하는 국내 재계 총수들도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다만 모든 총수가 그런 것은 아니다. 각자마다의 이해관계가 다른 탓이다.
다보스포럼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관심이 많은 총수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다. 최 회장은 1998년부터 20년 넘는 기간 동안 거의 매번 해당 행사에 참여해 왔는데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SK그룹 관계자는 “(최태원 회장은)다보스포럼 뿐 아니라, 보아오포럼 등 주요 국제 포럼에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며 “기업의 사회적 가치에 대해 주로 강조해왔으며, 올해도 그와 관련된 내용이 나오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전했다.
한화그룹 역시 다보스포럼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김승연 회장이 직접 찾진 않지만 유력한 후계자로 거론되는 장남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는 10년 가까이 다보스를 꾸준히 찾고 있다. 차남인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도 올해 3번째로 다보스를 찾는다. 재계에선 한화그룹 3세들이 다보스포럼을 꾸준히 찾는 것은 경영수업의 일환이라고 분석한다. 현장에서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후계자로서 내실을 다지는 시간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다보스포럼은 현장에서 실무적인 비즈니스를 하는 자리가 아니다”며 “글로벌 네트워킹을 형성하는 자리로서의 의미가 더 강하다”고 전했다.
꾸준히 다보스를 찾다가 발길이 소원해진 경우도 있다. 대표적 인물이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 부회장이다. 정 수석 부회장은 2006년부터 2014년까지 꾸준히 참석했하다가 2015~2016년 발길을 끊었다. 이후 지난해 다시 참석했지만 올해는 또 다시 불참키로 했다. 정 수석 부회장은 광주형 일자리 문제, 관세장벽 등 그룹의 대내외 악재로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한 상황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07년 삼성전자 전무시절 다보스포럼 차세대 지도자로 꼽히기도 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해당 포럼과 인연이 멀어지는 느낌이다. 삼성 사정에 밝은 한 재계 인사는 “과거 국정농단 사태 이후 이부회장은 다보스포럼을 찾기 힘든 상황이 됐고, 지금 역시 재판 등 여건을 고려하면 방문하긴 힘든 상황일 것”이라고 전했다.
황창규 KT회장은 올해 다보스포럼을 찾지만 뒤가 불편할만한 상황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들과 소상공인연합회는 황 회장이 KT아현지사 화재 사고에 대한 마무리도 제대로 짓지 않고 다보스포럼에 참석하려 한다며 맹비난 한 바 있다.
한편 그룹마다 상황은 다르지만 국내 뿐 아니라, 국제적 추세로 볼 때 다보스포럼은 점차 과거의 위상을 잃어가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올해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 주요 국가 정상들이 모조리 불참하며 이 같은 분위기를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다보스포럼은 이미 수년 전부터 실효성이 없다는 이야기가 있어왔다”며 “현장에서 나온 이야기가 실제 정책 등으로 반영되거나 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친목모임 정도의 의미만 남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