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첫 재판 시작…法, 증인신문 등 사실관계 조사 최소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뇌물공여 등 1심 선고공판을 마친 후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2017.8.25 / 사진=뉴스1


이틀 뒤 본격화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은 법리공방이 될 전망이다.

재판부는 각 혐의별 입장을 3차 공판에 걸쳐 프레젠테이션(PT)을 통해 듣기로 했으며, 증인신문 등 사실관계 조사는 최소화 한다는 방침이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정형식 부장판사)는 오는 12일 이 부회장에 대한 항소심 첫 공판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 부회장에 대한 1심은 170여일간 59명의 증인신문과 서증조사가 진행됐지만, 2심은 사실관계 조사보다 법리해석에 집중하기로 했다.

재판부는 지난달 28일 열린 1차 공판준비기일에서 1~3회 공판은 양측의 혐의별 입장을 듣는 PT 진행하기로 했으며 4회 공판은 증거조사, 5회 공판부터는 초소화된 증인신문에 돌입하기로 했다.

일반적으로 PT를 통해 각 혐의별 사안을 정리하는 재판이 상당하지만, 3차례나 PT를 진행하는 재판은 드물다.

1심이 ‘포괄적 현안에 대한 묵시적 청탁’과 ‘수동적 뇌물’이 있었다며 이 부회장의 유죄를 인정한 데 상당한 논란이 불거지자, 철저한 법리해석을 통해 논란을 불식시키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1심 재판부는 특검이 제기한 공소사실과 달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합병에 따른 신규 순환출자 해소,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설립 등 ‘개별적 현안’에 대한 명시적·묵시적 청탁을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이 부회장의 ‘승계 작업’이라는 ‘포괄적 현안’에 대해서만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판단하고 각 단순 뇌물죄와 제3자 뇌물죄를 유죄로 인정했다.

대법원 판례는 묵시적 의사표시에 의한 부정한 청탁이 성립하기 위해서 청탁의 대상(승계작업)이 되는 내용과 제3자에게 제공되는 이익에 대해 공무원과 이익 제공자 사이에 ‘공통의 인식’이나 ‘양해’가 있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1심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정부 기관과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에서 작성된 보고서를 통해 삼성의 승계문제를 인식했고, 이 부회장 역시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일가 등의 관계를 인식했다고 봤다. 그러면서 삼성의 승계문제를 인식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정유라씨에 대한 지원을 이 부회장에게 요구했고, 이 부회장은 승계 작업 문제 해결에 대통령의 지원을 기대하고 이에 응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문제는 1심의 이 판단이 증거의 증명력을 법관의 자유 판단에 맡기는 ‘자유심증주의’에 근거한 것이고, 법관에 따라 달리 판단할 수 있다는 점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특검 측이 오히려 부정한 청탁의 내용을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특정했어야 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특검은 그동안 묵시적 청탁뿐만 아니라 명시적 청탁도 있었다고 주장해왔다. 이 때문에 특검은 포괄적 현안에 대한 증명을 강화하는 한편, 1심에서 모두 인정되지 않은 개별적 현안에 대해서도 청탁이 존재했음을 입증할 근거들을 강화할 전망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공동정범 관계 해석도 상당한 의견차이가 있을 전망이다.

1심은 정유라씨가 삼성 측의 승마지원을 받은 게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씨의 ‘단순수뢰죄’에 해당한다며 뇌물공여 혐의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공무원이 아닌 최씨가 받은 돈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받은 것과 동일하게 평가할 수 있다고 봤는데 두 사람의 ‘공동정범’ 관계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법원은 ▲오래 전부터 개인적인 친분관계를 맺어온 점 ▲대통령 취임 이후 국정 운영에 최씨의 관여를 수긍하고 의견을 반영하는 관계에 있었던 점 ▲이 부회장과의 독대해서 승마지원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며 지원이 미흡한 경우 이 부회장을 강하게 질책하고 임원 교체도 구체적으로 언급한 점 ▲승마지원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감사의 마음을 전한 점 등 고려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간접적인 여러 사실을 바탕으로 공모관계를 추론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두 사람을 공동정범으로 판단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적 공동체’라는 모호한 개념이 완전하게 입증되지 않은 부분도 논란의 여지로 남아있다.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220억원이 무죄로 판단되는 등 공소사실 433억 중 89억여원만 유죄로 인정된 부분도 상당한 법리공방이 예상된다. ‘(재단 출연금은) 일반적인 관행이고 청와대와 전경련이 주도했다’라는 1심 판단은 ‘강요에 따른 피해자’라는 삼성 측 논리와 맞닿아 있기 때문에, 항소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특검 측은 두 재단 출연금의 뇌물성 여부가 이 부회장의 사건을 넘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그 논리를 더 강화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1심에서 증인신문이 불발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2심에 나설지도 관전포인트다.

하지만 두 사람이 무대응 전략을 고수할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두 사람이 워낙 말주변이 없을 뿐 아니라, 다른 재판에서 실언을 해 여죄가 드러나거나 기존 주장과 배척되는 발언을 할 여지를 남길 필요가 없는 탓이다.

억울한 부분이 있다면 자신이 받고 있는 재판에서 방어를 하면 충분하고, 증인신문에서는 변호인의 조력 등을 받을 수 없는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두 사람은 또 이번 사건을 ‘정치적 탄압’으로 규정하고 1심에서도 수차례 증인 출석에 불응했기 때문에 2심에서도 입장을 바꿀 이유가 없다는 게 중론이다.

법리공방에 집중할 계획인 항소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 측이 요청한 8명의 증인 중 4명만 채택했다. 2심에서 채택된 증인은 말 중개상인 안드레아스 헬그스트란드와 남찬우 문체부 평창올림픽 지원과장, 주모 삼성전자 경영지원실 재경팀 직원, 강모 삼성전자 과장 등이다.

영재센터 전 직원인 김모씨와 삼성전자 법무팀 정모 변호사에 대한 증인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와 김종 전 문화체육관부 제2차관을 증인채택 여부는 양측 의견이 달라 보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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