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상인들 "떠나면 상권 죽고 남으면 경쟁 치열"

지난 19일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에서 직원들이 1도크를 가로질러 이동하고 있다./사진=박견혜 기자
서울의 흉문(凶聞)은 거제서 돌아보니 소문에 불과했다. 서울은 거제를 초상집으로 알지만 거제에는 초상 대신 배를 짓는 일상만 있었다. 수주 절벽에 공터일 것 같았던 도크는 미완의 거대 선박으로 가득했다. 

대우조선해양에는 1도크(Dock·선박을 건조·수리하기 위한 시설), 2도크와 로얄도크 3개가 있다. 노란 본체에 대우조선해양이 파랗게 적혀있는 골리앗크레인이 있는 곳이 1도크다. 골리앗크레인은 1000톤 규모 철제를 들어 옮긴다. 골리앗크레인은 철로를 따라 앞뒤로 이동하며 장조의 유쾌한 경고음을 울린다. 경고음이 자주 들렸다. 배가 건조되는 소리다.

 

지난 19일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를 찾았다. 방문 당일 노조는 단체교섭 및 구조조정 투쟁 보고대회를 마친 상태였다. 임금단체협상은 미봉 상태였지만, 현장 직원들 표정은 예상보다 밝았다.


대우조선해양은 5일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협상을 거쳤지만 끝내 인력 구조조정에 대한 노사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 정부는 대우조선해양 경쟁력 강화 방안으로 설비 30%와 인력 41% 감축을 발표했다. 채권단은 4조2000억원 자금 지원 및 자본 확충 조건으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노조에 요구한 상태다.


지난 19일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 내부에 걸려있는 구조조정 반대 현수막/사진=박견혜 기자
23일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고강도 구조조정에 이어 올해도 2000여명 추가 감축 계획을 밝혔다. 올해 말까지 직영 인력은 8500명으로 줄어든다. 대우조선은 거제 사원숙소 매각 의지도 드러냈다. 

 

이미 1만명이 떠났다. 과거 5만명 가까이 일했던 거제 옥포조선소에는 현재 정규직 1만450명, 비정규직 2만8000여명만 남았다. 지난해 10월 희망퇴직으로 약 2000명이 줄었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희망퇴직자라고 퇴직 준비했겠나. 반강제로 나가는 걸 보니 남는 사람들도 불안하다”라고 말했다.

 

◇대규모 구조조정 하에도 활기 잃지 않아

 

조선소 각 도크에는 LNG선과, 컨테이너선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해양 제작 부문에서는 드릴십(원유시추선) 제작에 바쁘다. 특수선 제작 공간에서는 군함도 제작된다. LNG선은 500~600명 기술자가 5~6주간 제작한다. 조선소 직원들은 안전끈에 매달려 ‘뺑끼칠(페인트칠)’한다. 조립1공장과 2공장, 3공장에서는 용접 불꽃이 튄다. 그 옆을 ‘애살있게 단디’ 작업하길 주문하는 현수막이 트럭에 실려 지나갔다.  

 

지난 19일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에서 한 직원이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사진=박견혜 기자
직원들은 400만㎡ 조선소를 이륜 자전거로 달린다. 제작 중인 LNG선 옆엔 묵은 자전거가 수천대다. 사람 수와 자전거 수가 비긴다. 현대중공업은 오토바이를 탄다. 작업 현장에서 만난 한 관계자는 “종종 자전거 도둑도 있다”라며 웃었다. 또 다른 직원은 멀리서 기자를 불렀다. 하이바(안전모) 착용법을 다시 알려주겠단다. 하이바에 묶인 머리를 내줬다. 전후로 각을 보더니 “이만하면 됐다”고 했다. 이마 끝에 걸려있던 하이바는 재장착 후 눈썹산까지 내려와 있었다.

 

지난 19일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 바다에 묶인 소난골 드릴십의 모습/사진=박견혜 기자

하지만 조선소에는 여전히 곤란이 산적해 있었다. 대우조선해양에는 121척 수주가 남아있지만 추가 수주 없다. 이마저도 돈이 될지는 확실하지 않다. 언제 발주사 측에서 인도를 무를지 모르는 탓이다. 선박 인도를 해야 대금의 60~80%를 받을 수 있는 헤비테일 수주가 주(主)인 탓에 인도 불안은 곧 유동성 불안이다. 인도가 미뤄지면 대금을 받지 못하게 된다. 

 

앙골라 국영석유회사 소난골(Sonangol)이 발주한 드릴십(원유시추선) 2척을 지난해 6~7월 인도하려 했다. 하지만 앙골라 자금난 탓에 인도가 3차례 미뤄져 1년 넘게 인도가 지연되고 있다. 받지 못한 대금만 1조원이다. 극적으로 이번주 내 4개 글로벌 선사 및 국제석유화학사가 소난골 드릴십 운영사 입찰에 참여한다.

 

19일 옥포조선소에서 만난 조선업계 관계자는 “소난골이 나가도 복지비용, 임금 받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자금 상황이 워낙 악화되어있기 때문이다. 상반기 안에는 나가야 한다”라며 “앙골라가 자금난에 처해있으니까, 정부랑 회사에서 앙골라에 대출해주는 식으로 지원을 하자는 방향인 것 같다. 사실 앙골라는 아쉬운게 없다. 우리 회사가 어려우니까 그걸 갖고 계속 이용하는 거다”라고 토로했다.


정부와 채권단은 지난해부터 회사 측에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조선소를 떠난 1만명 공석은 생산력 하락의 직접적 원인이다. 현장에서 만난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해양선(드릴십)같은 경우는 프로젝트마다 설계가 자주 변경된다. 숙련된 노동자들이 투입돼야 하는데, 잠깐 치고 빠지는 물량팀 같은 비정규직이 많이 들어가다 보니까 제대로 (배가)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배 짓는 건 결국 사람이 하는거다. 다섯 사람이 할 일을 한 사람이 하면 제작 기간도 오래 걸리고 그만큼 생산력도 떨어지고 제작 시기 맞추기도 어려워진다”라며 “최소 5년은 일 해야 기술력이 축적되고 숙련도가 높아진다. 그런 사람들이 열 사람의 몫을 하는데, 현재는 그런 사람을 잘라내고 있다. 이런 식으로는 일이 안된다”고 성토했다​.


앳된 얼굴도 보였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갓 졸업한 그들은 조선소에서 현장 교육을 받고 있었다. 김민호(21·가명)씨는 “기술교육원에서 분야별로 이론과 실기 교육을 받는다. 성적 우수자에 한해서는 직접 채용도 이뤄진다. 기술자를 키워내는 건 조선업의 미래와 직결된다. 그만큼 조선업은 사람이 중요한 업종이라서, 기술자를 키우는 데 노력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현장에 와서 현장 상황을 살피고 구조조정 결단을 내려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책상에 앉아 데이터만 갖고 계속 결정을 하니까 문제”라며 “직접 와보면 이 곳의 생기를 느낄 수 있다. 저력 있는 회사다. 보는대로 활발하지 않나. 서울에서는 계속 사람만 자르라고 하는데, 여기 와보면 알지 않나. 사람이 정말 중요하다”라고 털어놨다.


지난 16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옥포조선소에 와서 외교 채널을 통한 조선업황 타개책을 말한 바 있다. 이에 대한 현장 반응은 썰렁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물론 수주를 받고 하는 데에 외교적 부분이 아예 없진 않다. 대통령이 해외 순방하며 경제 문제 이야기할 수도 있으니까. 상대 나라에 퍼주고, 대가로 받아오고 할 순 있지만 외교 그 자체가 큰 성과로 작용할 수는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도시의 허기, 떠나도 남아도 문제


“사람 다 좋죠, 그런데 이해 관계가 걸려 있어서….”


옥포조선소는 옥포동에 있다. 옥포동엔 옥포시장이 있다. 떡도 볶고, 커피도 타고, 회도 판다. 노래방도 있다. 대우조선해양 직원들은 옥포동과 장승포, 아주동에 산다. 직원들은 구내 식당이나 집이나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한다.


옥포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40대 임모씨는 “예전에는 주변에서 저녁을 먹고 카페로 넘어오는 조선소 직원들이 꽤 있었다. 요즘엔 주변 학생들이 더 많이 온다”라며 “아무래도 사람들이 많이 빠지다 보니까 이렇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홍성태 대우조선해양 노조위원장은 본지와 인터뷰에서 “10월 달에 조합원들이 희망퇴직을 하고 나갔다. 이 회사에서 35년 가까이 일한 선배들이다”고 술회한 바 있다. 정부는 추가로 정규직 2500명, 비정규직 9000명을 더 줄일 예정이다. 계획대로라면 2020년까지 정규직 7000명만 남는다.


19일 만난 대우조선해양 한 관계자는 “구조조정으로 조선소에서 나간 사람들이 아직까지 이곳에 많이 산다. 수십년동안 이 근처에서 산 사람들인만큼 쉽게 뿌리를 못 옮긴다”라며 “그들이 떠나면 상권이 죽는다는 문제가 있는데, 사실 남아도 문제다”라고 말했다.


남아서 생기는 문제는 경쟁 격화다. 그는 이어 “사실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뻔하다. 배를 만들지 않으면 식당이나 작은 가게를 여는 것이다. 찾는 사람은 정해져있는데, 뭘 하겠다는 사람만 많으니 금방 금방 사라진다”고 설명했다. 인근 시장 주 수요자였던 조선소 직원들이 퇴직 후에는 공급자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다. 떠나면 떠나는대로 상권이 죽고, 남아서 장사를 하면 자영업자 간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인 것이다.


옥포동 인근 분식점 사장은 “이 곳 사람들 참 좋다. 인정도 많고. 서로 가게 봐주기에도 거리낌이 없다. 그만큼 오래 얼굴 봐왔고, 서로 믿으니까”라면서도 “요즘엔 구조조정이다 뭐다 실직자도 늘고, 그만큼 자영업자도 늘고, 경기가 안좋으니까 예민할 수밖에 없다. 이게 다 먹고 살기 위해 얽힌 이해관계 때문 아니겠는가”라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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