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000명만 남아… "정부·채권단, 유효한 대책 내놔야"
대우조선해양 채권단은 자금지원과 자본 확충 조건으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협조할 것을 노동조합에게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우조선은 설비 30%와 인력 41% 감축해야 한다. 거제 옥포조선에는 한때 5만명이 일했다. 이제는 정규직 1만450명, 비정규직 2만8000여명만 남았다. 앞으로 정규직 2500명, 비정규직 9000명을 추가로 줄인다. 정규직은 2020년까지 7000명만 남는다.
홍성태 노조위원장은 “지난해 9월2일 당선된 뒤로 머리띠를 풀지 못했다. 투쟁보다 이별이 힘들다. 지난해 10월 35년간 일한 선배들이 회사를 떠났다. 입사 때부터 함께 일한 맏형 같은 분들이다. 나가지 말아달라고 설득하면서 많이 울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는 대선주자라면 어김없이 들르는 핫플레이스(인기 장소)라 불린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오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도 왔다. 지난 19일 거제 옥포조선소 핫플레이스에서 홍성태 위원장을 만났다.
5일 임금단체협약(임단협)은 결렬됐다.
사측의 일방적인 인력 구조조정에 동의할 수 없다. 인력과 시설을 대폭 축소하겠다는 것이 구조조정의 핵심이다. 조선업은 노동집약적 산업이다. 배를 만들려면 설비뿐만 아니라 인적자원이 중요하다. 채권단은 구조조정이 초래할 문제는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 자르기에만 몰두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수주잔량은 121척이다. 2년치 일감이다. 숙련공을 내보내면 배를 제때 만들지 못한다. 제때 인도하지 못해 수천억원 넘는 지체보상금(L/D·Liquidated Damage)을 물고 있다. 숙련 노동자가 부족해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조선업 공정 작업은 설계-모형실험-강재절단-조립-선행의장-도장-탑재-진수-안벽의장-시운전-명명식-인도 절차로 이어진다. 작업 순서가 뒤바뀌면 공정에 차질이 생기고 생산 지연이 불가피하다. 이만큼 숙련 노동자와 기술이 중요하다. 이를 자르면 배를 짓지 못한다. 정부와 채권단은 이를 간과하고 있다.
노조는 지난해말 채권단에게 파업하지 않고 구조조정에 동참한다는 확약서를 제출했다. 유효한가.
확약서 효력은 채권단과 경영진에 달렸다. 구조조정 방향과 방식에 따라 유효일 수도 무효일 수도 있다. 정부가 당시 대우조선해양을 죽이겠다는 분위기가 강한 터라 확약서를 제출했다. 노조는 회사와 구성원을 살리기 위해 대승적으로 결단을 내렸다. 하지만 사람 자르기 구조조정을 밀어붙인다면 노조는 따를 수 없다. 확약서가 무효로 된다면 그 책임은 채권단과 경영진에 있다.
수주가 없다. 유가 하락도 원인이다. 이에 더해 정부가 대우조선해양에 부실기업을 인수토록 했다. 인수 회사만 20여개다. 대표적인 예가 루마니아 망갈리아 조선소다. 회사 사정도 안 좋은데 이 조선소를 운영하기 위해 아직도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지원 규모는 알 수 없다. 노조는 사측에 자료 청구를 할 수 있는데,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20여개 회사 인수하면서 버린 돈이 어마어마하다. 그런 회사가 지탱하겠나.
정부는 조선사 퇴직 인력을 직업 교육 후 다른 업종에 투입하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조선산업 구조조정 관련 정부 지원대책에 알맹이가 없다. 정규직은 늘지 않고 사내하청 노동자는 2009년 7만7000명에서 2014년에는 무려 12만명 이상이 됐다. 고용 생태계가 불안정한 현실에서 정부는 근본 대책 없이 일방적으로 구조조정을 강행하고 있다. 정규직 2000명, 비정규직 11000명이 대우조선을 떠나야 했다. 떠난 사람들은 재취업보단 다른 업종을 택하고 있다. 물량팀 노동자는 4대 보험 혜택도 받지 못한다.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인력이 많다. 직업 교육이나 다른 업종 재투입은 허황된 이야기다.
산업위기대응지역 지정은 일정 부분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게 빠져있다. 바로 특별고용지원업종(고용 사정이 급격히 악화될 우려가 있는 업종을 정부가 지정해 사업주와 근로자에게 각종 지원을 해주는 제도)에 조선 3사(대우조선해양·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가 빠져있다. 이는 중소 조선소에 비해 물량이 안정적이이라 지원하지 않아도 된다는 정부 방침 탓이다.
조선 3사 사정도 좋지 않다. 특별고용지원업종에 지정되면 정규직의 경우, 최장 60일 동안 1일 최대 4만3000원을 받을 수 있다. 이 돈으로 생계를 꾸리기에는 한계가 있다. 노조는 조선 3사를 하루빨리 지정하길 고용노동부에 요청하고 있다. 지급 기간과 지원금 확대 등도 계속 요구하겠다.
정부가 어떻게 구조조정을 진행해야 하겠가.
일본과 중국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정부가 조선산업 육성을 위해 공공 선박 발주와 함께 금융 지원 등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일본은 1970~80년대 두 차례 구조조정으로 설비와 인원을 대대적으로 감축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만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조선산업 성장 계기를 놓친 일본은 현재 국제 경쟁력을 되찾기 위해 조선 설비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있다. 숙련 노동자와 기술 확보(외국 인력 포함), 정부 금융 지원으로 조선산업 지원과 육성에 적극적이다.
중국 정부도 10대 중점산업분야에 해양플랜트와 첨단 선박 등 조선산업 성장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에 더해 첨단해양플랜트 중점 육성과 선박 수출신용보증 등 금융 지원 정책, 첨단 선박 해외 수출 적극 지원 등을 시행하고 있다.
국내 조선업 퇴직 인력이 어디로 가겠나. 한국에서 수십 년간 배 만드는 일만 했다. 국내서 배를 만들 수 없다면 일본과 중국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일본과 중국으로 많은 숙련 노동자들이 유출되고 있다. 한국 조선 기술이 함께 빠져나가는 것이다.
대우조선해양 당면 과제는.
회사를 정상화하려면 충분한 일감을 확보해야 한다. 수주 회복은 유가상승 등 외부 요인에 의해 연동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사람을 자르는 구조조정을 막는 것이 당면 과제다. 또 단체교섭을 마무리해야 한다. 노조는 임금 삭감, 연차 사용, 임금성 복지 지불 유예 등 고통 분담에 동참하고 있다. 노조는 4자(정부·채권단·경영진·노조) 협의체 구성, 조선업 지원 육성 대책, 고용 보장, 추가 자금 지원을 요구한다.
회사에 경영 관리단이 파견 나와있다.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농협 등 채권단에서 파견한 인사들이 회사 전반에 대해서 관리 감독하고 있다. 예산 집행에 과도하게 개입하고 있다. 이에 노사가 풀어야 할 사안까지 관리단 눈치를 봐야 한다. 노사 자율 경영과 책임 경영을 원한다.
언제쯤 조선업황이 회복될까.
올 하반기부터 회복세를 보이고 2018년부터 신조선 발주가 크게 늘면서 조선시황이 활기를 되찾을 것으로 본다. 클락슨 보고서에 따른 수주·발주 증가와 OPEC(석유수출국기구) 감산 합의에 따른 유가상승 덕에 미래 전망은 밝다. 또 해상 선박 연료 환경기준 강화와 황산화물 배출 규제, 선박 내 평형수 처리 설비 의무화, 실연비데이터보고(MRV·각국에 입항하거나 출항하는 모든 선박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의무적으로 보고하는 제도) 도입과 향후 선박 교체 수요 기간 단축으로 조선 경제는 살아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