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균제, 치약 등 전 성분 공개로 이어져
가습기살균제 피해사건은 유통업계 전반에 걸친 케미포비아(화학제품 기피증)를 불러일으켰다. 여기에 치약에서 가습기살균에 사용된 유해성분이 검출되면서 소비자 불안을 가중했다. 이에 주요 생활용품 업체들이 자사 제품의 화학성분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계기가 됐다. 정부도 생활화학 제품 관리체계를 전면 개편하는 내용을 담은 안전관리 대책을 내놨다.
◇ 옥시, 5년만에 피해자에게 사과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은 2007년부터 봄철마다 원인미상의 호흡 곤란 환자들이 내원하자 아산병원 호흡기 내과 의료진을 중심으로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가 실시됐다. 2011년 8월 질본 역학조사 결과 발표하고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미상 폐질환의 위험 요인으로 추정된다며 사용 및 출시 자제 권고했다. 이어 2011년 11월 진본중간 결과에서 강제수거 명령을 내렸다.
신현우(68)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 현 RB코리아) 전 대표와 존 리(48) 전 대표 등 6명은 2000년 10월 흡입독성 실험을 제대로 실시하지 않고 독성 화학물질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을 함유한 옥시싹싹 뉴가습기 당번을 제조·판매해 73명을 숨지게 하는 등 181명에게 피해를 준 혐의를 받고 차레로 구속기소됐다.
재판 과정에서 옥시 관계자들이 별다른 검증 없이 라벨에 아이에게도 안심이라는 문구를 추가해 영유아의 대량 피해를 양산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또 한번 충격을 주었다. 홈플러스와 롯데마트 등이 대형 유통업체들이 옥시레킷벤키저의 가습기 살균제 상품을 벤치마킹하면서 피해는 더욱 커진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사건발생 5년 만인 4월과 5월, 롯데마트와 옥시래킷벤키저가 피해자들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검찰 수사를 우려한 면피용 사과라는 비판이 끊이질 않았다. 실제로 신현우 전 대표를 비롯한 피의자들은 법리적으로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은 신현우전 대표에게 징역 20년, 존리 전 대표에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한 기업인 옥시와 세퓨에는 법정 최고액수인 벌금 1억5000만원을 구형했다. 지난 6월 첫 공판을 시작한 이 사건은 오는 1월 6일 선고 공판을 앞두고 있다.
◇ 아모레퍼시픽, 가습기살균제 치약 논란
지난 9월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일으킨 유해물질 CMIT/MIT(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메틸이소티아졸리논)가 일부 치약에서도 검출되면서 생활용품 전반에 대한 불안감이 다시 고조되기도 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회수 대상인 아모레퍼시픽 치약 11종에 들어간 CMIT/MIT 함량이 인체에 무해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외국의 기준에 따르면 아모레퍼시픽의 메디안 후레쉬포레스트 치약 등 치약 11종에서 검출된 CMIT/MIT 함량은 최대 0.0044ppm으로 인체에 안전하다는 것이 식약처의 설명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CMIT/MIT 성분은 치약에 허용되지 않는 물질로 이를 사용한 제품은 불법이다. 국내에서는 벤조산나트륨, 파라옥시벤조산메틸, 파라옥시벤조산프로필 등 3종만 치약의 보존제로 허용하고 있다.
치약 외에도 시중에 유통되는 구강청정제, 샴푸, 바디워시, 식기세척제 중에도 CMIT/MIT 성분이 들어간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부가 전면적인 조사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문제가 발견되자 지난 9월 판매된 치약을 전량회수하고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미 해당 제품을 구입한 소비자는 구매 일자, 사용 여부, 본인 구매 여부, 영수증 소지 여부 등과 상관없이 구입처나 아모레퍼시픽 고객상담실, 구입 유통업체 고객센터를 통해 교환·환불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해당 제품 회수와 반품을 지금도 받고 있다”며 “3분기와 4분기 회수 비용에 350억원 정도가 들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 두려운 생활화학용품, 전성분 공개 단초
정부는 11월 국무회의를 열고 생활화학제품 관리체계를 전면 개편하는 내용이 담긴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 대책을 내놨다. 정부는 우선 오는 2019년 시행을 목표로 가칭 살생물제 관리법을 제정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신규 살생물질은 안전성과 효능자료를 제출해 정부의 승인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기업은 정부 승인을 받은 살생물질만 사용해야 한다. 또 이를 사용한 제품 역시 정부의 평가와 허가를 받은 뒤에 출시할 수 있게 된다. 이와 함께 정부는 내년 상반기 중으로 유통 중인 모든 생화화학제품에 대한 위해성 평가를 마무리하고 위해도가 높은 제품은 즉각 퇴출하고 제품명을 공개하기로 했다.
기업들도 생활화학제품 전성분 공개의사를 밝혔다. 홈플러스, 이마트, GS리테일 등은 지난 11월 25일 자체 브랜드(PB) 제품의 전성분을 공개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앞서 옥시레킷벤키저와 애경산업, 다이소아성산업, 헨켈홈케어코리아, 클라나드, 산도깨비, 롯데쇼핑 등 7개 업체들도 자사가 판매하는 생활화학제품의 전성분을 홈페이지에 공개키로 결정했다.
그동안 생활화학제품 제조·유통 업체들은 영업비밀이라는 이유 등으로 전성분 공개 요구를 거부해왔다. 그러나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따른 따가운 여론과 불매운동 등을 앞세운 환경단체 압박에 밀려 하나둘씩 전성분 공개에 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