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PD 1000명 양성하겠다…최고의 캐스팅은 손석희 뉴스룸”
주철환은 전설의 PD다.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홍경수 순천향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는 저서 ‘확장하는 PD와의 대화’에서 PD 주철환이 가진 방송학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었다. “한국의 PD 역사는 주철환을 기점으로 이전의 선사시대와 이후의 역사시대로 구분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하자면 주철환은 베일에 쌓여있던 PD의 존재를 대중 속으로 끌어낸 장본인이다.
그런 주철환이 서울시 출연기관인 서울문화재단의 대표가 됐다. PD 출신으로는 최초다. 이 자리는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조선희 전 한국영상자료원장(전 씨네21 편집장) 등이 거쳐 갔다. MBC, 이화여대, OBS, JTBC, 아주대 등 방송국과 대학에서만 활동하던 주 대표가 공공부문에 뛰어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인터뷰 중 최초로 밝히는 내용이라며 ‘문화PD 1000명 양성론’을 숙원사업으로 내걸었다.
그를 만났으니 방송가 현안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JTBC에 대한 평가가 궁금했다. 주 대표는 ‘중앙일보’가 종합편성채널 개국을 준비하던 2010년 방송제작본부장으로 영입돼 이후 JTBC에서 편성본부장과 대PD를 지냈다. 그는 손석희 (당시) 성신여대 교수의 JTBC행에 직접적 영향을 끼친 인물로도 꼽힌다. 주 대표는 손석희 JTBC 보도담당 사장의 매형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내 인생 최고의 캐스팅은 손석희의 JTBC 뉴스룸”이라며 자부심을 한껏 드러냈다.
주 대표는 민감해할 법한 친정 MBC에 대한 질문에는 조심스럽게 답변을 내놨다. 그는 MBC의 최근 모습을 안타까워하면서도 “김태호 PD가 깨어 있다면 희망이 있는 것”이라며 후배들에 대한 신뢰를 나타냈다. 주 대표는 논란거리로 떠오른 KBS의 외주제작시장 진출과 그 배경에 대한 해석도 거침없이 털어놨다. 인터뷰는 13일 오후 서울시 동대문구 용두동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실에서 1시간 30여분간 진행됐다.
서울문화재단이 7번째 직장이다. 공공부문은 처음인데?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한다. 오늘도 (기자와 인터뷰하며) 새로운 사람을 만난 거 아닌가. 어제는 서울연극센터에 가서 연극하는 분들을 만났다. 또 잠실창작센터에 가면 장애를 가진 예술가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번에 연희창작촌에 갔더니 소설가들이 창작에 매진하고 있더라. 문래예술공장, 금천예술공장, 신당창작아케이드에 가보면 공예 작업하는 분들도 만난다. 남산예술센터에 가면 실험적인 예술가들을 만난다. 전방위적으로 예술 종사자들을 만날 수 있는 거다. ‘바빠서 죽겠다’가 아니라 ‘바빠서 좋아 죽겠다’. 학교는 교사 마인드, 방송은 PD마인드 아닌가? 문화재단은 교사 마인드 절반, PD 마인드 절반으로 일하면 딱 맞다.
예능PD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서울문화재단 대표에 선임됐다. PD출신인 게 도움이 되나?
물론이다. PD는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는 사람이다. 그걸 혼자하지도 않는다. 황석영 작가나 조정래 작가는 혼자 만들지 않나. 우리는 아니다. ‘무한도전’을 김태호 PD 혼자 하나? ‘삼시세끼’를 나영석 PD 혼자 만드나. 전문 스태프와 일하며 적재적소에 캐스팅을 한다. 또 PD는 아무리 프로그램이 좋아도 시청률이 낮으면 꽝이다. 시청률이 뭔가. 대중의 지지다. 조직을 운영하면서도 여론조사 할 거다. 여기서 첫 PD출신 대표로서 나쁜 선례를 남긴다? 정치행보에 휘말린다? 그럼 역사의 죄인이 되는 거다.
서울문화재단에서는 서울시와도 협조할 일이 많을 것 같다. 경력에서는 거의 처음으로 ‘당국’과 직접 대면하게 된 건데, 어려움은 없나?
내가 처음 수상스키에 도전했다고 가정하자. 겪어보지 않은 거다. 그렇다고 그게 어려울까? 아니다 즐겁다. 서울시 공무원들을 많이 만나게 될 거다. ‘입장주의’라는 표현이 있다. 지금 나는 서울문화재단 대표 ‘입장’에서 기자를 만나고 있지 않나. 사람은 역할이라는 게 있다는 거다. 공무원은 공무원의 역할이 있다. 그들의 입장을 어느 정도 존중해줘야지, 저 사람 왜 저렇게 건조하지, 딱딱하지 비난할 필요 없다. 다만 이견이 있을 순 있다. 그럴 땐 설득해야한다. 그래도 안 된다면 유보해야겠지. 만일 내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데 저 쪽에서 소홀히 한다? 그럼 생각을 해봐야할 거다. ‘내가 여기 잘못 왔구나’(웃음) 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일은 없었다.
주어진 예산이 있다. 씨앗을 뿌린다는 마음으로 많은 예술가들을 다양하게 지원하자는 일각의 의견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한 움큼의 씨앗이 있다 해서 다 뿌리는 건 좋지 않다. 예술가에게는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재능과 열정이다. 보니까 열정을 가진 사람은 많은데 재능을 갖춘 사람은 드물더라. ‘슈퍼스타K’에 120만 명이 지원해도 허각 같은 친구는 단 몇 명만 나오지 않나. 모두에게 기회를 주는 게 반드시 좋은 건 아니다. 차라리 그 사람이 다른 일을 했을 때 더 행복한 삶을 살 수도 있다. 열정이 있으니 도와준다? 문화행정가로서 그렇게 해야 하는 건 아니다. 다만 그 사람이 재능과 열정을 갖췄고 사람들 역시 인정하면 도움을 줘야 한다.
지난 번 다른 인터뷰에서는 ‘노량진에서 컵밥 먹는 젊은이들에게 문화를 권할 수는 없다’고 했다.
문화는 어쩔 수 없이 복지와 함께 가야 한다. 지금 일자리가 너무 없다. 맹자가 항산항심(恒産恒心)을 말하지 않았나. 어느 정도 경제기반이 있어야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거다. 특히 청년들의 문화는 복지, 즉 일자리와 함께 가줘야 한다. 지금 노량진에서 컵밥 먹는 청년에게 가서 “저기 버스킹 하고 있으니 음악을 좀 들으세요” 그러면 “저 지금 공무원시험 11월 1일이거든요?” 이렇게 대답하지 않겠나.
(물론) 노량진에서 공부하는 청년들이 문화적인 혜택을 원한다는 걸 (재단에서) 알면 그들을 위한 음악회를 열 수 도 있다. 혹은 그들에게 자신들이 겪은 ‘사회문제’에 대해 희곡을 써보라고 권할 수 있다. 그걸로 연극을 할 수도 있다. 그게 하나의 아젠다가 될 수도 있는 거다. 그런데 내가 먼저 가서 ‘여러분 무엇을 원하나요?’ ‘어떤 문화혜택을 받고 싶으세요?’라고 한다면? 아마 그들은 화낼 거다. 즉 맥락을 짚어야 한다.
이 대목에서 주 대표는 문화와 교육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유년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나는 축구, 야구 같은 스포츠에 관해 아무 것도 모른다. 대신 어릴 때 세익스피어를 읽고 라디오로 음악을 많이 들었다. 생각을 많이 했고 일기를 썼다. 하지만 몸을 움직이는 건 하나도 안했다. 아버지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부모와 선생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 가령 초등학교 선생님이 국악을 잘 안다고 하자. 수업시간에 그걸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그럼 그 아이들은 나이 들어서도 국악을 좋아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다양한 문화와 접할 수 있게 해주는 게 어른의 역할이다. 나는 스포츠와 단절되니 축구가 왜 재밌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수영도 안 해봤다. 나를 수영장에 데리고 간 사람이 없어서다.
주 대표는 기자가 쉬어가자는 의미로 던진 질문에서 본인의 문화철학을 오롯이 드러내는 답변을 내놨다. 이 대목에서 주 대표는 “이 인터뷰에서 처음 공개하는 것”이라며 ‘문화PD 1000명 양성론’을 꺼내들었다.
2009년 음반 내고 가수로 깜짝 데뷔했다. 가수는 은퇴한 건가?(웃음)
나는 가수가 아니라 생활음악인이다. 주말마다 동네 축구하는 아저씨들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도전하는 건가? 거기서 건강과 친목, 자기보람을 찾는 거다. 그런 걸 문화적으로 활성화시키고 싶다. 노량진 수산시장에 있는 분들도 그들의 삶을 담은 뮤지컬을 만드는 거다. 얼마나 멋진가. 그럴 때 PD 마인드가 필요하다. 우리가 PD 마인드 가진 사람을 지원해주는 거다. (그래서) 1000명의 문화PD를 양성하고 싶다. 이 인터뷰를 통해 처음으로 말한다. 가령 노량진 수산시장에 PD 재능 갖춘 사람이 가서 취재와 연출을 하는 거다. 그렇게 나온 작품을 갖고 ‘서울문화영상제’ 같은 걸 할 수도 있다. 문화PD들이 시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전달하는 통신원이 될 수도 있다.
주 대표는 이 지점에서 본인만의 PD론을 꺼내보였다. PD는 본래 Producer Director의 약자다. 프로듀서는 기획 기능, 디렉터는 현장을 강조하는 의미다. 여기에 나는 Programer Designer라고 덧붙인다. 즉 문화PD를 통해 문화 프로그래머, 문화 디자이너를 만들겠단 거다. 나이 제한은 없다. 은퇴 노인, 고등학생, 청년 모두 할 수 있다. 이걸 서울시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확산시키고 싶다. 이율곡은 10만 양병설을 주창했지만 이루지 못했다.(웃음) 내가 있는 임기동안 ‘최소한’(at least) 1000명을 양성할 거다.
시민들도 스마트폰앱으로 손쉽게 영상을 제작하는 시대다. 프로와 아마추어 사이의 벽도 과거보다 허물어졌다. PD출신인데, 직접 시민을 위한 영상제작 교육에 나서 볼 생각은 없나?
‘오마이뉴스’가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고 했는데 이제는 ‘모든 시민은 PD’가 됐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건 영상, 방송, 교육 아니겠나. 만약 조용필 씨가 서울문화재단 대표라면 당연히 노래로 시민들을 즐겁게 해줘야 하지 않겠나? 나도 주특기를 살릴 거다. 그걸 안 하면 직무유기다. 다만 지금은 아니다. 그래도 임기 3년 아닌가. 나설 거다.
주 대표를 만났으니 JTBC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JTBC는 올해 ‘시사저널’이 시행한 ‘2016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조사에서 지상파와 종합일간지를 제치고 처음으로 매체신뢰도 1위를 기록했다. ‘미디어법’ 통과 당시의 혼란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손석희 사장은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부문에서 75.8%의 압도적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다. 2013년 손 사장이 JTBC로 옮길 당시 다수 매체는 “매형 주철환PD의 존재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었다. 당사자인 주 대표는 이날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3년 전 ‘추측성 보도’에 대한 나름의 대답을 내놨다.
JTBC 개국 20개월이 지난 즈음 홍경수 순천향대 교수와 인터뷰(‘확장하는 PD와의 대화’ 中)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만드는 사람들이 경쟁하는 구도면 참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JTBC의 지난 5년을 어떻게 보나?
만일 고 기자가 나에게 ‘PD를 하면서 가장 적재적소에 최고의 캐스팅을 했다고 생각한 인물이 누구냐’고 질문을 했다고 가정해보자. 나의 대답은 이렇다. ‘내 인생 최고의 캐스팅은 JTBC 손석희의 뉴스룸이다’ 손석희 사장에 앞서 JTBC에 가서 몇 년 간 세팅 작업을 했다. 손 사장은 MBC에 1984년 1월 1일 입사했다. 나는 그 직전 해에 들어갔다. 또 내가 결혼한 지 30년 됐다. 그가 내 처남이니 30년 동안 우리는 형제처럼 지낸 사이다. 나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면 그가 JTBC로 왔을까? 나는 손 사장에게 JTBC에서 뜻을 펼칠 수 있다는 신뢰를 줬다. 당시 언론이 다 뭐라 했나. 종편으로 간다고 비판하지 않았나. 몇 년 지난 지금은 어떤가. JTBC가 ‘시사저널’이 뽑은 매체신뢰도 1위에 올랐다는 건 손석희의 영향력이다.
종편 개국 당시 극심하게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때 종편 5적이라는 말이 돌았다. 그 5적 안에 내 이름도 있었다. JTBC 세팅하는 데 갔으니까. (그런데) 나는 그때 정치적인 의도를 1%도 갖지 않았다. 어릴 때 가장 재밌던 채널이 TBC다. TBC를 부활한다는 플랜이 맘에 들었다. 거기에 참여하는 게 ‘PD의 역사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받은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내 진정성을) 알아주는 거 아닌가. 기분이 좋다. JTBC가 언론사로서 입지를 굳혔다고 본다. 손석희 뉴스룸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내가 일조했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
방송환경이 크게 변했다. 지난해 KBS에서 방영된 드라마 ‘프로듀사’의 경우 콘텐츠사업부의 역할이 도드라졌다. 이 같은 변화가 PD라는 직업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치리라 보나?
환경 탓을 하지 말자는 게 기본 생각이다. 시대와 불화하면서 불평불만을 쏟아내며 역행할 것인가, 아니면 시대의 흐름을 바꿔볼 것인가. 여러 가지가 가능하다. 콘텐츠사업부에서 주도를 해도 거기에 PD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있으면 되는 거다. KBS에 정규PD로 입사해서 자격을 갖춘 사람이니 꼭 그가 해야 한다? 시대가 변했다. 이제는 실력 있는 사람이 전문가지, 자격증 딴 사람이 전문가가 아니다. 실력자가 시대를 주도할 거다. 다만 실력이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만 쓰인다면 정치논리, 산업논리에 휘말리게 될 거다. 그게 철학의 부재다. 왜 PD를 하나? 오로지 PPL(간접광고) 많이 해서 수익을 올리는 게 목표라면 선정성, 스타마케팅, 폭력성 혐의를 다 뒤집어 쓸 거다. 하지만 드라마에도 시대에 대한 문제제기와 아젠다 세팅을 담아낼 수 있다. (프로듀사를 예로 들자면) 김수현의 대사나 차태현과 김수현의 관계, 공효진의 작업 환경 등을 그리며 사람들에게 문제의식을 느끼게 해줄 수 있다. 그런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이 PD다. 그 사람이 실종됐다? 그러면 세상이 막 굴러가는 거다.
친정 MBC의 최근 모습은 어떻게 보나?
여전히 아쉽다. ‘무한도전’을 예를 들어보자. 김태호 PD는 이제 문화권력자가 돼있다. 김태호 PD가 깨어있다면 희망은 있는 거다. 김태호 PD가 깨어있고 ‘라디오스타’ ‘복면가왕’ PD가 깨어있으면 된다. 지금 MBC가 전체적으로 무너지거나 흐트러지는 느낌을 주더라도 말이다. 지진이 나도 복구를 하지 않나. 희망은 결국 사람이다. 거기 있는 사람이 PD의 문제의식을 갖고 있으면 된다.
주 대표는 이 말 이외에는 MBC를 직접 거론하진 않았다. 다만 그는 MBC에 대한 질문에 답변하는 와중에 “세상을 바꾸는 데는 ‘장기적’ 방법과 ‘획기적’ 방법이 있다. 장기적으로 바꾸려는 사람들과 그 안에서 획기적으로 혁신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하모니를 이룰 때 세상이 바뀐다”며 “광화문에서 오래 살았다. 그곳은 대통령 당선자와 지지자들이 모여 만세를 부르는 곳이다. 그 후 다들 어떻게 됐나. 이제는 곱셉‧덧셈이 아니라 나눗셈을 해야 할 때다. 세상과 세월이 싸우면 세월이 이긴다”고 말했다. 그의 생각을 간접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표현이다. 지상파 얘기가 시작된 김에 최근 논란이 된 ‘KBS 외주제작사’에 대한 입장도 물었다.
최근 KBS가 자회사로 제작사 ‘몬스터 유니온’을 만들었다.(관련기사: 콘텐츠제작 뛰어든 KBS, 외주제작사들 반발, [기자수첩] 머니몬스터가 된 공영방송) 독립제작사 측에서는 이를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와 같다”고도 날을 세웠다. 어떻게 보나?
너무 방송 현안만 묻는 거 아닌가?(웃음) 재능과 열정을 가진 사람이 실력자다. 그 사람이 기회를 갖는 게 좋다. KBS라는 기득권 덕에 기회를 독점하거나 선점한다? 그거는 정의사회가 아니다. 거기도 PD가 있을 거 아닌가. 그 사람이 깨어있어야 한다. (또) 소금의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 즉 견제가 있으면 된다.
그럼 KBS가 지금 왜 그렇게 할까를 생각해보자. 최근 KBS를 보니 재방송이 너무 많아졌더라. 예전에는 ‘용의 눈물’ 등 정통 사극에 돈을 많이 썼다. 요새는 ‘팩션 드라마’(faction drama)라면서 말은 그럴 듯하게 한다. (하지만) 결론은 돈을 적게 쓰겠다는 거다. (특히) 제일 KBS스럽지 않은 게 ‘일일드라마’다. 평일 저녁 8시 25분부터 하는 드라마 한 번 봐라. 너무 저예산이다. (물론) 저예산이어도 얼마든지 거기 아이디어를 넣어서 연출할 수 있다. 그런데 제목만 바뀌지 항상 똑같은 얘기다. 삼각관계, 신데렐라, 출생의 비밀! 출생의 비밀이 조금 식상하다 할 때는 시한부 생명.(탄식) 일일드라마는 거의 10년 동안 동어반복을 하고 있는 거다. 그걸 왜 하나. 그 시간에 차라리 생활정보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게 나을 것 같다. 모든 KBS 일일 드라마는 부모가 자식의 결혼을 반대하는 이야기다. 아이디어가 빈곤한 거다. 전파라는 게 국민재산인데, 그 재산이 저렇게 쓰여도 되나. KBS만의 문제가 아니라 MBC, SBS 일일드라마, 아침드라마 다 마찬가지다. 왜 귀한 전파를 저렇게 함부로 쓰나. 안타깝다.
서울문화재단 임기가 끝나도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정년이 1년 남는다. PD현업과 방송사 사장, 대PD에 이어 문화재단 대표도 거치게 됐다. 대학에 돌아갔을 때 훨씬 풍부한 교육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여기서 얼마나 많은 문화콘텐츠를 접하고 문화행정을 경험하나. 그걸 문화콘텐츠학과 학생들에게 전수하고 싶다. 2019년 9월 1일 아주대학교로 돌아간다. 그럼 딱 1년 동안 교수를 하고 정년퇴직이다. 내가 거의 40년 동안 문화관련 경험을 해왔는데, 그 1년이 내 삶에서 가장 농축된 경험을 (교육으로) 쏟아낼 수 있는 시기가 아닐까. 그때는 좋은 책이 많이 나올 것 같다. 지금까지 15권의 책을 냈다. 여기서의 경험을 집대성한 저작물이 나오고, 또 교육도 할 수 있다. 퇴직 후에는 젊은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가칭) ‘주철환 아카데미’를 만들고 싶다. 수강료를 내는 식의 수익사업은 하고 싶지 않다. 목마른 젊은이에게 문화의 샘물을 떠주고 싶다.
궁극의 목표는 무엇인가?
1955년생이니 베이비부머의 첫 세대다. 나는 60대의 선망이 아니라 희망이 되고 싶다. 선망은 부러워하는 거다. 희망은 나도 될 수 있다는 거다.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속이 상하면 겉이 상한다. ‘겉’이 젊어지려면 ‘곁’에 젊은이를 두면 된다” 내 꿈은 젊은이들이 나를 즐겁게 찾아오는 거다. 공자는 죽을 때 제자들이 옆에 있었다. 대개 인류의 스승들은 그렇게 생을 마감하시더라. 석가모니, 예수 그리스도, 공자, 소크라테스. 그 분들이 죽을 때는 여자들이 아니라 제자들이 곁에 있었다. 그런 분들의 삶을 보니까 참 멋있더라.
또 직장문화를 바꾸는 데 선두주자가 되고 싶다. 우선 종이로 하던 회의를 바꿨다. 대형 모니터를 활용해 영상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럼 누군가는 일이 많아진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아니다. 그냥 휴대폰으로 찍어서 편집 없이 날 것 그대로 띄우면 된다. 앞으로 이 회사를 젊은이들이 가장 다니고 싶은 곳으로 만드는 게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