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는 왜 존재해야 하는가

5월 한국방송학보에 흥미로운 논문이 하나 실렸다. 우형진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쓴 ‘공영방송 KBS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시청자 평가가 KBS 선호도 및 적정 수신료 부담액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다.

우 교수는 논문에서 69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응답자 구성은 대학생 55%, 장년층 45%다. 결과는 예측한 그대로다. KBS에 주어진 사회적 역할 중 ‘공공복리증진,’ ‘국민기본권옹호’ 등 공적 의제에 대한 시청자 평가가 높을수록 KBS에 긍정적인 태도가 높게 나타났다.

눈에 띄는 부분은 공영방송의 ‘경제적 책임’에 대한 시청자 인식이다. 연구결과 KBS의 ‘경제적 책임’이 시청자의 KBS 선호도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우 교수는 “시청자들은 KBS가 처한 상황과 관계없이 공영방송으로서 지나친 경쟁력 강화나 경제적 이윤추구를 요구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KBS가 경쟁력 제고를 위해 상업적 이익을 중시하는 기업행위를 수행할 경우, KBS 존재 이유에 대한 국민적 의문을 확산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영방송의 역할론을 강조한 연구논문이 새로울 건 아니다. 하지만 최근 KBS가 보이는 행보는 이 논문의 시의성을 새삼 돋보이게 만든다.

근래 KBS의 움직임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몬스터’다. 동명의 타 방송사 드라마 얘기가 아니다. KBS와 KBS미디어, KBS N이 공동 출자한 외주제작사 이름이 몬스터 유니온이다.(관련기사:콘텐츠 제작 뛰어든 KBS, 외주제작사들 반발) 1990년 7월 처음 편성된 외주의무편성 제도의 근간은 방송제작 시장에서 지상파 독점해소와 독립제작사 육성에 있다. 몬스터 유니온의 등장은 이 근간이 뿌리 채 흔들리고 있음을 방증한다. 한 언론학자는 “이름을 참 잘 지은 것 같다”고 비꼬았다.

‘머니’에 대한 열망도 오롯이 드러난다. KBS와 KBS미디어는 CJ E&M이 배급한 영화 ‘인천상륙작전’에 30억원을 투자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에 따르면 KBS는 지난 1년 간 뉴스에서 이 영화에 대한 관련보도를 52건이나 쏟아냈다. 투자금 회수와 정치적 목적이 절묘하게 맞물린 모양새다.

중간광고 도입 주장도 이 열망을 견인한다. KBS 뉴스는 5월과 6월 잇달아 중간광고 도입 취지의 학계 세미나 자료를 보도했다. ‘중간광고 도입하면 1500억원 생산유발효과’, ‘중간광고 등 지상파 비대칭 규제 개선해야’ 같은 내용이다. KBS는 2014년에도 ‘지상파 중간광고 금지는 차별적 규제’라는 내용의 학회 발표내용을 뉴스에서 소개했다. 

KBS는 수신료 인상의 명분으로 ‘광고축소’와 ‘미디어 생태계 안정’을 내세웠다. 지난해 6월 조대현 (당시) KBS 사장은 “KBS가 광고를 축소하면 매체 간 치열한 광고 경쟁이 줄어들고 지역 미디어 산업도 나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다시 말해 KBS는 서로 충돌하는 논리를 동시에 구사하고 있던 셈이다. 그런데 수신료 인상이 국회 계류로 사실상 불가능해지자 ‘외주제작사’와 ‘중간광고’라는 카드를 내세워 ‘머니몬스터’가 되기로 작정한 것으로 보인다. 중간광고는 방송통신위원회 시행령 개정으로 도입이 가능하다.

한 젊은 언론학자는 사석에서 “공영방송이 잘못된 길을 가는 것에 쓴 소리하는 지식인들이 필요한 때다. 그런데 너무 많은 이슈가 터져서 그런지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다. 안타깝다”고 밝혔다.

다시 논문으로 돌아가 보자. 우 교수는 “KBS의 사회적 책임 중, 경제적 책임 평가가 높을수록 수신료 부담 의향이 낮게 나온 것은 KBS가 현재보다 더 공영방송 같은 경영, 편성, 제작을 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즉 그토록 바라는 수신료 인상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라도 KBS가 본연의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는 얘기다.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이 똑같다면, 굳이 시청자들이 2500원의 수신료를 전기요금 고지서에 합산해 납부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아무리 적은 돈이어도 국민 호주머니에서 가져다 쓰고 있다면 최소한 머니몬스터는 되지 말아야하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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