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 양지장조선과 8000TEU급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 8척 LOI 체결
국제해사기구(IMO) 탄소 규제···친환경선 구매 나선 글로벌 선사
HD한국조선해양, 메탄올 추진선 점유율 55%···中보다 기술력 앞서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국내 조선업계가 압도적인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는 고부가가치·친환경선 시장에서 최근 중국 조선사의 저가 공세에 일부 수주물량을 뺏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가선 부문에서 국내 조선업 수주물량을 뛰어넘은 중국이 고부가가치·친환경선 시장까지 침투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게 업계의 대체적 분석이다.
◇'싼 가격'으로 실적 쌓기 나선 中
15일 해운 전문 매체 트레이드윈즈에 따르면 세계 1위 해운사 머스크(Maersk)는 중국 조선업체 양지장조선과 8000TEU급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 8척에 대한 건조계약 의향서(LOI)를 체결했다. 계약 규모는 13.8억달러(약 1조7400억원)에 달하며 4척에 대한 옵션도 포함돼 있어 추가 수주도 유력하다.
중국 조선사가 머스크와 ‘친환경 선박’(LNG·LPG·메탄올 등) 인 메탄올 추진 선박 계약을 따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머스크는 지난 2021년부터 HD한국조선해양과 메탄올 추진선 분야에서 협력을 맺어왔기 때문에 업계에선 이번 수주도 HD한국조선해양이 따낼 것이라고 예상해왔다.
중국이 낮은 신조선가를 내세운 영향이다. 한국이 메탄올 추진 엔진 등 주요 기술에서 경쟁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중국 조선사들은 ‘저가 공세’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양지장조선은 머스크에 메탄올 추진 선박 한 척당 1억1500만달러(약 2000억원)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국내 조선사들보다 척당 1500만달러(약 200억원) 싼 금액이다.
메탄올 추진선 ‘퍼스트 무버’로 평가받는 머스크가 중국업체 손을 잡으면서 앞으로 있을 수주에서도 중국이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선사 2곳이 곧 있을 프랑스 선사 CMA CGM이 발주할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 수주전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CMA CGM은 선복량 8위의 물류기업으로 최소 5척에서 최대 10척(48억달러) 규모의 메탄올 추진선 발주를 낼 계획이다.
◇친환경선 성장세 거세···급해진 中 조선사
저가수주 전략이 친환경 선박 수주 시장에 등장한 건 이 시장의 성장세가 크기 때문이다. 프랑스 해운 조사기관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글로벌 컨테이너선 발주에서 LNG와 메탄올 추진선 등 친환경 선박이 차지하는 비중은 40%가 넘는다.
특히 메탄올 추진선의 발주 증가 속도가 매섭다. 올해 2월까지 9300TEU급 메탄올 추진선은 총 68척이 발주된 것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전체 발주량의 12%에 달한다. 지난해 말까지 메탄올 추진선 발주 비율은 1%였다.
국내 조선사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친환경 선박 분야 1위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보다 점유율은 소폭 줄었지만 전 세계 발주량 2606만CGT 중 약 50%를 수주했다. 메탄올 추진선 분야에선 HD한국조선해양이 선두주자다.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발주된 메탄올 추진선의 55%(54척)을 수주했다.
기술력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한 중국 조선사들은 저가수주 말고는 선택지가 없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메탄올 추진선 분야에서 트랙레코드(실적)가 적어 저가수주를 통해서라도 입지를 구축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글로벌 탄소 규제가 해운사들의 친환경선 발주를 부추기면서 앞으로 이 시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오는 7월 열리는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80)에서 2050년 탄소 배출 감축 목표를 기존 50%에서 100%로 상향할 것으로 전망된다. 탄소연료 사용에 대해서는 부담금을 부과하는 안이 유력하다.
◇“中, 韓 기술력 못 쫓아와”…K조선 '선별 수주 전략' 유효
다만 중국이 써내는 싼 입찰가가 장기적으로 국내 조선업계를 위협하진 못할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 조선사들은 오랜 기간 친환경선 분야에서 실적을 냈고, 친환경 추진선의 핵심인 ‘엔진’ 기술력 분야에서 중국을 한참 앞선다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메탄올 추진 엔진 개발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기술적인 부분을 구체적인 수치로 표현하기는 제한되나 메탄올 추진선의 핵심이 되는 메탄올 추진 엔진 기술력은 월등히 앞서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실제로 중국 조선소들은 국내 선박용 엔진 생산 업체에서 제작한 메탄올 추진 엔진을 납품받아 선박을 건조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중국의 물량 공세가 역으로 국내 조선업계에 득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중국 조선소들이 저가 물량으로 도크를 채우면 오히려 국내 조선사들은 수익성 높은 선박을 선별 수주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조선사들은 안정적인 수주 잔고를 바탕으로 아주 제한적인 슬롯에 대해 수익성 위주의 영업활동을 진행 중이다”며 “중국업체들이 저가 수주로 물량을 채운다고 해서 국내 조선사들이 품질, 신뢰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앞서 있는 상황을 뒤집을 순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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