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 업계 업황 악화 계속돼···설비 투자 보류 분위기
"정부 주도 중장기 로드맵 제시·정책 지원 필요"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지난해 시작된 석유화학 업황 악화가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보임에 따라 관련 기업들이 설비투자 계획을 축소하고나섰다. 기업들은 탄소 감축을 위한 탄소 포집·저장·활용(CCUS) 기술 개발에 비용을 투입하겠다고 했지만 수익성 악화로 탄소 중립 과제 달성이 미뤄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수익성 악화···증설도 중단
17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석화업계의 지난해 4분기 수익성에 대한 추정치는 3분기에 비해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LG화학의 지난해 4분기 매출 추정치는 15조 309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1.05% 증가했으나 영업이익 추정치는 6510억으로 27.7%가량 감소할 것으로 분석됐다. 금호석유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2012억원)은 전분기 대비 12.7%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롯데케미칼과 효성화학은 영업적자를 이어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경기침체로 석유화학 제품 수요가 줄면서 업황 악화가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원료인 나프타 가격은 크게 올랐지만, 수요가 줄면서 공장을 돌릴수록 손해를 보는 상황이다.
석유화학 기업들은 공장 가동률까지 낮춰가며 넘치는 재고에 대응하고 있지만 가동률 감소로 고정비 부담은 늘어나고 있다. LG화학의 여수 NCC 공장 가동률은 80% 안팎, 롯데케미칼도 70~80%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핵심 제품 증설 계획도 줄줄이 미루는 추세다. 통상적으로 제조업체들은 재고가 늘면 중장기적으로 설비투자를 줄인다.
금호석유화학은 의료용 라텍스 장갑 소재인 NB라텍스를 생산하는 공장 증설 계획을 올해 말에서 2024년 4월로 연기했다. 지난해부터 코로나19 특수로 올라왔던 NB라텍스 수요가 다시 급감했기 때문이다. 대한유화도 지난해 11월 3000억원 규모의 플라스틱 스티렌모노머(SM) 설비투자를 무기한 보류한다고 밝혔다.
◇"기업돈 쓰게하지 말고 정부 주도 지원 나서야"
석유화학업계가 설비 투자 계획까지 미루는 모습을 보이면서 탄소 중립을 위한 투자금이 마르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가 석유화학 기업들의 필수 사업영역으로 자리 잡은 건 맞다"면서도 "탄소 감축을 위한 신사업 투자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만큼 속도를 내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LG화학은 지난 2020년 업계 최초로 '2050 넷제로(Net Zero)'를 선언하며 기후 중립화 추진을 명시했다. 롯데케미칼도 2050년 탄소 중립 달성 및 RE100 가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는 등 주요 기업들의 목표는 명확하다.
이를 위해선 변동성이 심한 석유사업 비중을 줄이고 친환경 사업에 대한 투자를 이어가야 한다. 국내 기업들은 사업 다각화를 위해 배터리·태양광 등 신사업에 조 단위 투자를 발표하는 등 탄소 중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동박 제조업체 일진머티리얼즈를 인수하며 배터리 소재 사업에 뛰어들었다. 한화솔루션은 2024년까지 미국 조지아주에 3조2000억원을 투자해 태양광 통합 생산 단지인 '솔라 허브'를 구축할 예정이다.
다만 석유화학 업계 전반의 지속적인 수익성 악화로 기업들은 자금 확보가 절실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기후변화 위기는 공공의 문제다. 기업이 돈을 써가며 위기에 대응할 것을 기대하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며 "정부가 나서서 중장기 로드맵을 갖고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