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회장, 금융위 중징계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
내부통제기준 ‘마련’ 위반, ‘준수’ 위반 구분해야
금융위 “내부통제의 실효성 제고방안 마련 추진”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불완전판매를 이유로 금융감독원이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에게 처분한 징계는 위법한 것이라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금융회사의 내부통제기준 ‘준수’ 위반을 제재할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 위반과 ‘준수’ 의무 위반은 구별되어야 하고,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한 이상 그 기준 일부를 준수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를 징계처분 사유로는 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15일 손 회장이 “문책경고처분 등 징계를 취소해 달라”며 금융감독원장을 상대로 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우리은행은 2017년부터 DLF를 일반투자자들에게 판매해 왔다. 금융감독원은 우리은행이 2019년 판매한 사모펀드인 ‘독일국채금리연계 DLF’의 손실률이 사회적으로 문제되자 부문검사를 실시하고, 2020년 3월5일 우리은행 대표이사이던 손 회장에게 “감독자로서 금융관련 법규를 위반하고 금융질서를 심히 문란하게 했다”라는 이유로 문책경고 처분을 했다. 중징계에 해당하는 문책 경고를 받으면 3~5년간 금융권 취업이 제한된다.
구체적인 처분 사유는 ▲상품 출시 과정에서 상품선정절차를 생략할 수 있는 구체적 기준을 실효성 있게 마련하지 않음 ▲상품 판매과정에서 내부통제기준을 실효성 있게 마련하지 않음 ▲상품선정위원회 개별위원들에 대한 회의결과 통지 및 보고, 위원선정 및 교체 등에 대한 기준·‘절차·시스템을 마련하지 않음 ▲적합성보고서와 관련해 상품의 위험 정도와 무관하게 상품권유 사유를 선택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운여하는 등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하지 않음 ▲우리금융그룹의 내부통제기준 준수여부를 점검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체제를 마련하지 않음 등 5가지다.
손 회장은 각 처분에는 처분사유가 존재하지 않아 위법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이어진 세 번의 재판에서 모두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1심은 징계 사유 5개 중 세 번째 사유만을 인정하고 ‘이 사건 처분에는 재량권 일탈·남용의 위법이 있다’며 징계처분을 취소했다. 2심은 나아가 5개 사유 모두가 위법하다고 봤다.
이 사건 쟁점은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를 위반했는지 여부였다.
대법원은 “우리은행이 ‘집합투자상품위탁판매업무지침’ 등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해 거기에 법정사항을 모두 포함시켰고, 이 내부통제기준의 실효성이 없다고 볼 수 없는 이상 손 회장이 내부통제기준 자체를 마련하지 못했다는 사유로는 제재할 수 없어 결국 이 사건 처분사유를 모두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현행 법령상 금융회사의 내부통제기준 ‘준수’ 의무 위반에 대해서는 제재를 가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마련’ 의무 위반과 ‘준수’ 의무 위반은 구별되어야 한다는 점을 최초로 설시한 판결이다”고 판결의 의미를 설명했다.
판결 이후 금감원은 입장문을 내고 “소송 결과와 무관하게 금융회사 지배구조 감독규정 제11조제1항 [별표2]의 ‘내부통제기준 설정·운영기준’을 내부통제기준의 실효성 판단기준으로 인정되었다는 점에서 상고의 실익이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며 “향후 대법원 판결 내용을 잣대로 금융위 등 관계기관과 함께 내부통제의 실효성 제고방안 마련을 추진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한편, 내부통제기준 ‘준수’ 의무 위반을 ‘마련’ 의무 위반으로 제재할 수 없다는 이번 대법원 판결은 유사한 사실관계로 소송중인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의 재판에도 영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함 회장은 우리금융 손 회장과 달리 1심에서 패소한 상태다. 서울고법에서 항소심이 진행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