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연료 파이프라인 수요 증가 확실, 무역확장법 232조는 변수
美, 중국산 배터리 및 원자재 차단···국내 기업 리튬·망간 수입국 다변화 초점
[시사저널e=유호승 기자] 미국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통과되면서 국내 철강·배터리 업계가 크게 수혜를 입을 전망이다. 이 법안의 핵심은 에너지 안보와 기후변화 관련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것이다. 화석연료 생산·운송을 위해 철강 기업의 제품 수입이 늘어나는 동시에, 신재생 에너지의 대표 격인 2차 전지의 수요도 크게 증가할 것으로 확실시된다. 아울러 중국에 대한 강력한 규제로 우리 기업은 반사이익을 얻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에선 최근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상원을 통과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제안한 ‘더 나은 재건’을 대체하는 법안으로 급격한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자국내 에너지 생산 관련 투자를 늘려 오는 2030년까지 약 40%의 탄소감축 등을 골자로 한다. 이를 위해 에너지와 환경 분야에 3690억달러(약 481조원)를 쏟아붓는다.
박성봉 하나증권 연구원은 “미국은 에너지 안보를 위해 석유와 천연가스와 같은 화석연료 생산 및 운송을 위한 인프라 관련 규제를 완화할 방침”이라며 “자국내 파이프라인과 가스 액화 및 저장 설비, 해상 운송을 위한 터미널 등의 건설 확대로 이어져 에너지용 강관 수요가 크게 늘어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신재생 에너지와 태양광 패널, 에너지 저장 시스템 구축 등을 위한 세금 감면도 추진하면서 관련 기업에 큰 제품 수요가 몰릴 전망”이라며 “법안에 중국 제품의 수입 관련 규제가 포함된 만큼 국내 기업에는 큰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올해 7월 강관 수출은 약 107만톤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1% 늘었다. 이 중 56%가 미국으로 수출됐다. 현재는 다소 안정화 상태지만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으면서 북미 지역에서 원유 수요가 늘면서, 원유를 나르는 에너지용 강관 수요가 증가해서다. 이 가운데 인플레이션 감축법 효과까지 더해지며 미국 강관 시장의 수요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더욱이 미국이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포스코와 현대제철, 세아제강 등 국내 철강 기업의 미국향 강관 수출규모는 더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포스코 관계자는 “강관 수출량이 늘어나는 가운데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시행될 것을 감안해 증가할 수요 물량 등을 파악하고 있다”며 “현재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국내 기업의 수출 물량이 제한받고 있지만,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시행되면 이 규제가 완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는 2018년부터 우리나라가 중국산 철강을 대량 수입해 우회 수출하고 있다고 판단해 무역확장법 232조의 제재 대상에 포함시켰다. 이 법은 자국의 통상 안보를 해친다고 판단될 경우 수입량 제한과 고율 관세 부과 등을 취하는 무역 제재다.
이 법의 규제로 우리나라의 대미 철강 수출량은 2017년 354만톤에서 2018년 254만톤으로 줄었다. 강관 역시 2017년 220만톤에서 2018년 90만톤으로 줄었다. 시간이 지나 정권이 바뀌고 인플레이션 감축법 시행이 다가온 만큼, 규제 완화가 조만간 나타날 것으로 철강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철강업계뿐만 아니라, 국내 배터리 기업도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호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법안을 보면 중국산 배터리 탑재 전기차는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 2024년부터 북미 현지에서 생산된 전기차인 동시에 중국에서 생산된 배터리가 탑재되지 않았다면 전기차 1대당 최대 7500달러(약 1000만원)의 보조금을 받는다.
이를 통해 삼성SDI와 SK온, LG에너지솔루션 등 국내 배터리 3사는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 중국의 CATL과 BYD 등 배터리 제조사들이 글로벌 시장 진출을 서두르고 있는 가운데,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전기차 최대 시장인 미국으로의 진출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하게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과 중국의 글로벌 패권 분쟁으로 나타난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우리 기업이 북미 점유율을 한층 끌어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다만 국내 배터리 제조 과정에는 중국산 원자재가 많이 쓰인다. 이 점을 미국이 문제 삼을 수 있어 원자재 수입국을 다변화해야하는 시점”이라고 전했다.
미국은 2023년까지 배터리 원자재의 40%를 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생산된 것으로 써야 한다고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담았다. 이 비율은 ▲2024년 50% ▲2027년 80% 등으로 높아진다. 미국과 중국은 FTA 체결국이 아니어서, 우리 기업은 배터리 원자재의 중국 수입 의존도를 빠른 시간 안에 낮춰야만 한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배터리 핵심 소재인 양극재를 구성하는 전구체(니켈·코발트·망간 혼합물)와 양극활물질(전구체에 리튬을 결합한 소재)은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한다. 올해 상반기 전구체의 중국 의존도는 91.8%, 양극활물질은 96.7%에 달한다. 음극재에 쓰이는 인조흑연도 중국 비중이 91.0%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