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의 미래·먹거리·정신을 세운 CEO로 기억되고 싶다”
23일 간소한 이임식 열어

황창규 KT 회장 / 이미지=조현경 디자이너
황창규 KT 회장 / 이미지=조현경 디자이너

황창규 KT 회장이 6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23일 간소한 이임식을 가졌다. 황 회장 공식 임기는 오는 30일 열리는 주주총회 때까지이지만, 사실상 이번 이임식을 끝으로 후임인 구현모 내정자에게 KT 수장 자리를 넘겼다. 연임까지 임기를 제대로 마친 것은 황 회장이 KT 역사상 처음이다.

황 회장은 이날 서울 광화문 사옥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KT의 미래, 먹거리, 그리고 KT의 정신을 제대로 세운 최고경영자(CEO)로 기억되고 싶다”며 “지난 6년간 강력한 경쟁력을 보여준 임직원들에게 잊지 못할 감동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지금까지 만들어 온 성과 그 이상을 뛰어넘어 135년 역사의 KT그룹을 글로벌 1등으로 올려 달라”고 덧붙였다.

이임식은 코로나19 여파로 소수 직원들만 함께 한 가운데 사내 스튜디오에서 조촐하게 치뤄졌다. 황 회장은 스튜디오에서 임직원들에게 전달할 메시지를 녹음하는 것으로 이임식을 대신했다. 

황 회장은 KT 회장 취임 전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신화’를 이끈 인물이다.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사장)이던 2002년 “반도체 메모리의 용량이 1년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이른바 ‘황의 법칙’으로 반도체 신성장을 이끌었다. 이후 삼성을 떠나 2010년 지식경제부 R&D전략기획단 단장, 2013년 성균관대학교 석좌교수 등을 거쳤다. 2014년 1월에는 검찰 수사 등으로 불명예 퇴진한 이석채 전 회장의 뒤를 이어 KT 회장으로 공식 취임했다.

황 회장은 KT 역사상 처음으로 연임 임기를 제대로 마친 인물이다. 다만 황 회장에 대한 평가에서는 ‘공(功)’과 ‘과(過)’과 분명하게 갈린다. KT 체질 개선 및 5G·인공지능(AI) 등 차세대 먹거리 제시, KT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만든 것 등은 황 회장의 성과로 꼽힌다. 

황 회장은 취임 직후 KT렌탈을 비롯한 계열사 17곳을 매각하는 등 경영 효율화에 집중했다. 구조조정 비용 탓에 406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던 2014년을 제외하곤 2015년 1조2000억원의 흑자를 기록하는 등 지난해까지 5년 연속 영업이익 1조 클럽 가입에 성공했다.

특히 황 회장은 2014년 10월 기가인터넷을 업계 처음으로 상용화해 KT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았다. IPTV 사업 역시 기가인터넷을 기반으로 공격적으로 확대해 KT의 대표적인 먹거리로 만들었다. 

황 회장은 또 5G 이동통신 서비스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고 인공지능(AI) 서비스 대중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황 회장은 지난 2015년 MWC 기조연설에서 5G 네트워크의 가능성을 제시한 뒤 계속해서 5G 조기 상용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황 회장은 ‘미스터(Mr) 5G’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황 회장의 5G 상용화 의지는 지난해 4월 한국이 세계 최초로 5G를 상용화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황 회장은 AI와 관련해서는 상당한 공을 들였다. 황 회장은 지난해 KT를 AI 회사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KT그룹의 모든 상품과 서비스에 AI를 접목하고 그룹 전체 내 일하는 방식도 AI 기업에 맞게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AI 스피커 ‘기가지니’ 보급 확산, AI 호텔을 선보이는 등 AI 영토 확장에 속도를 냈다.

그동안 계속돼 왔던 정치적 외풍을 끊고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안착시킨 것 역시 황 회장의 공적이다. 앞서 KT는 정권 교체기마다 임기가 남은 CEO가 뒤바뀌고 정치권 낙하산 인사들이 줄줄이 임원으로 줄줄이 영입되는 등 정치권의 외풍에 시달려 왔다. 이에 황 회장은 정관 개정을 통해 공정한 인선 프로세스를 만들고자 노력했고, 그 결과 정치권 낙하산 논란 없이 차기 CEO로 구현모 KT 사장이 내정됐다.

그러나 황 회장은 임기 동안 많은 구설에 휘말렸다. 2014∼2017년 KT 전·현직 임원들이 국회의원 90여명에게 KT 법인 자금으로 4억3000여만원을 불법 후원했고, 황 회장이 이를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아울러 취임 첫 해인 2014년 임직원 8300여명를 구조조정한 것과 관련해 노조와의 갈등이 극에 달하기도 했다. 

아현국사 화재 역시 황 회장의 대표적인 과오로 꼽힌다. 지난 2018년 11월 서울 서대문구 KT 아현지사에서 발생한 화재는 ‘국민 통신기업’이라는 KT의 신뢰도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당시 KT는 화재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 1만1500명에게 62억5000만원 규모의 보상금을 지급했다. 황 회장은 아현국사 화재 이후 열린 국회 청문회에 참석해 이를 해명하기도 했다. 

KT는 오는 30일 주주총회에서 구현모 사장을 새 CEO로 선임할 예정이다. 구 사장은 12년 만의 내부 출신 CEO로, 30년 넘게 KT에 몸 담아 온 정통 KT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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