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디아블로 이모탈’ 사건 이후 끝 모를 추락

블리즈컨 2018 현장 모습. / 사진=원태영 기자
블리즈컨 2018 현장 모습. / 사진=블리자드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등으로 유명한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가 최근 위기를 맞았다. 홍콩 민주화 시위가 한창인 가운데 블리자드가 게임 대회의 홍콩인 우승자에게 부적절한 조치를 취했다는 이유로 유저들에게 큰 비난을 샀다. 

앞서 블리자드는 강력한 지적재산권(IP)를 바탕으로, 게임 이용자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게임사 중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은 골수팬들마저 등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블리자드는 ‘워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 ‘오버워치’ 등 여러 기라성 같은 게임을 만들어냈다. 블리자드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특히 스타크래프트는 한국에 이른바 게임 광풍을 불러일으켰다. 스타크래프트가 출시될 당시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를 겪으면서 실직자들이 새로운 창업 아이템을 알아보던 상황이었다. 때마침 찾아온 게임 광풍에 편승해 전국 곳곳에 PC방 창업 열풍이 불었다. 이때부터 한국은 게임 강국의 면모를 다져가기 시작했다.

스타크래프트는 국내 e스포츠 발전에도 지대한 공을 세웠다. e스포츠란 컴퓨터 및 네트워크, 기타 영상장비 등을 이용해 승부를 겨루는 스포츠를 의미한다. 흔히들 한국을 e스포츠 종주국이라고 부른다. 스타크래프트가 큰 인기를 끌자, 방송국들은 게임 전문 채널을 만들었다. 온게임넷(현 OGN) 등도 그 당시에 생겨났다. 이때부터 지역 단위로 개최되던 스타 대회가 전국 규모로 커지면서 TV를 통해 방영되기 시작했다. 그에 맞춰 ‘프로게이머’라는 신종 직업도 등장했다. 방송사와 기업들도 앞다퉈 대회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이 대회들이 바로 현재 e스포츠의 시초가 됐다.

이후 출시된 ‘디아블로2’를 비롯한 디아블로 시리즈,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W), 하스스톤, 오버워치 등 블리자드가 출시한 게임 대다수가 한국에서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블리자드의 공동 창업자 마이크 모하임은 한국에서 ‘마 사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블리자드는 합리적인 수준의 과금, 방대한 콘텐츠, 빠른 피드백, 매력적인 게임 스토리 등을 바탕으로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시장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앞서 나열한 사례들은 이제 모두 빛바랜 영광이 된 지 오래다. 지금의 블리자드는 이용자들에게 욕을 많이 먹는 게임사일 뿐이다. 최근 몇 년간 블리자드는 게임 그 자체보다는 돈을 쫓기 시작했다. 실적에 연연했고 결국 비인기 게임, 다시 말해 돈이 되지 않는 게임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의 e스포츠 대회를 중지한 사건이다. 

여기에 게임 개발에 평생을 바쳐온 핵심 개발자들이 회사를 떠나기 시작했다. ‘마 사장’ 마이크 모하임마저 최근 블리자드를 떠났다. 블리자드가 변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은 지난해 11월 열린 ‘블리즈컨 2018’에서 디아블로의 차기작으로 모바일게임 ‘디아블로 이모탈’을 선보인 것이다. 대다수 이용자는 ‘디아블로4’나 ‘디아블로2 리마스터’ 정도를 기대했다. 그러나 정작 블리자드는 중국 게임사 넷이즈와 합작해 디아블로의 모바일 버전을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넷이즈의 경우 앞서 디아블로 IP 표절 의혹이 있었던 곳이다. 당시 팬들의 분노는 어마어마했고 이는 주가 폭락으로 이어졌다. 

더 큰 문제는 블리자드가 오버워치 이후로 신규 게임을 선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출시한 ‘와우 클래식’이 큰 성공을 거두기는 했으나, 이를 온전한 신규 게임으로 보긴 어렵다. 결국 과거 인기 IP인 와우를 재활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하스스톤’ 대회에서 발생한 홍콩 지지 발언에 대한 제재도 전 세계 이용자들에게 큰 분노를 샀다. 하스스톤 프로게이머 응 와이 청(닉네임 블리츠청)은 승리 후 가진 인터뷰에서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홍콩에 자유를 달라. 이는 우리 시대의 혁명”이라며 홍콩 시위대의 구호를 외쳤다. 이에 블리자드는 규정 위반을 이유로 해당 영상을 VOD에서 모두 삭제했으며, 블리츠청의 출전권을 1년간 정지하고 상금도 몰수했다. 

그러자 전 세계 이용자들은 블리자드가 ‘중국 자본에 굴복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동안 블리자드가 정치적 올바름(PC)과 사회적 정의를 핵심 가치로 내세워 왔던 것에 반하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이용자들의 블리자드 회원 탈퇴가 줄을 이었으며, 미국 정치권마저 블리자드를 비판했다. 미국 민주당 론 와이든 상원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블리자드는 중국 공산당을 기쁘게 하기 위해 창피를 당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결국 블리자드는 블리츠청에 대한 징계 수위를 낮췄다. 출전 정지 기간을 기존 1년에서 6개월로 줄이고, 몰수했던 우승 상금을 돌려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블리자드 측은 “우리는 잠시 멈춰서서 유저들 얘기에 귀 기울이고 더 잘할 수는 없었는지 숙고했다”며 “뒤돌아보니 처리 절차가 부적절했고 너무 서둘러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블리자드의 사과에도 한번 추락한 이미지는 회복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여전히 전 세계 많은 이용자가 블리자드를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는 11월 열리는 블리즈컨에서도 유저들의 항의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와우 클래식의 예상치 못한 흥행으로 재도약에 나섰던 블리자드 입장에서는 좋은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 셈이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과거의 블리자드는 하나의 상징이었으며, 블리자드에서 출시한 게임은 블리자드에서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크게 주목을 받았을 정도였다”며 “그러나 이제는 대다수 골수팬이 블리자드를 떠났으며, 내부적으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이라도 이용자들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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