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대국 관심 틈타 급조된 정책 실효성 의문
또 시작이다. 빅 이벤트 하나에 온 나라가 들끓었고 그 안에서 단 며칠 만에 정책이 뚝딱 하나 탄생했다.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도중 갑작스레 태어난 우리 인공지능 정책에 대한 이야기다.
이세돌 9단이 구글 인공지능 알파고와 2국을 벌인 바로 다음날인 지난 11일 정부 부처 간부들은 AI(인공지능) 개발 정책을 만든다며 회의를 여는 등 부산을 떨었다. 그리고 기업들을 끌어들여 컨트롤타워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민간 기업에게 돈을 걷어 지능정보기술연구소를 설립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수 조원이 들어가는 정책이 불과 며칠 만에 만들어졌다. 급조된 정책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만약 구글이 해당 대국을 전략적으로 홍보하지 않았더라면 인공지능 정책은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정부의 인공지능 정책은 구글이 만든 정책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사실 만들어진 과정보다 더 큰 문제는 정책의 내용이다. 정부는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SK텔레콤, KT, 네이버에게 30억 원씩 걷어 연구소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필자가 알기론 이들 기업중에는 인공지능에 큰 관심이 없던 곳들도 있다. 정확히 말하면 현재는 인공지능보단 다른 비즈니스에 집중하고 싶은 기업이다. 하지만 이제 그곳은 좋든 싫든 인공지능 연구소를 짓는데 30억 원을 내고 적극 참여해야할 운명에 처했다.
기업들의 의지가 없으면 아무리 정책을 만든다고 해도 제대로 될 리 없다. 그렇다고 억지로 기업에게 의지를 요구하는 것은 더 위험하다. 기업마다 전략이 다르고 상황이 다르고 자원이 다른데 정부가 방향을 정해놓고 억지로 이끌어가려 하면 기업은 비즈니스 전략을 수정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골머리를 싸매야 한다.
과거 정부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협업을 통해 차량용 반도체를 만들어보자고 꺼내들었던 정책이 결국 두 기업이 처한 상황이 반영되지 않아 폐기된 것은 반도체 업계에서 유명한 이야기다. 정부가 먼저 방향을 정하고 ‘나를 따르라’고 외치는 정책 수립 방식은 진보정권이나 보수정권이 다를 것 없다.
이번 정부의 정책 발표에 대해 인공지능 전문가인 한 대학교수는 “해당 부분에 대한 투자나 연구가 필요하다는 100번의 논리적인 논의보다 결국 빅 이벤트 한 번이 정부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을 또 한 번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번 알파고 대국에 대한 대중 반응에 곧바로 회의를 하고 정책을 내놓은 정부의 행동이 과학인들을 연구보다 쇼맨십에 치중하게 하지 않을지 걱정이다. 알파고 앞의 이세돌은 그리도 의연했는데 우리 정부는 왜 이리도 가볍게 움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