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기이사 선임·사퇴·주주권리 강화 기구 설치…키워드는 '책임경영'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오른쪽). / 사진=뉴스1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8일 국민연금의 반대를 물리치고 SK㈜ 정기 주주총회에서 2년만에 등기이사에 복귀했다. 탈세 등 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과 조현준 사장 부자도 등기이사에 재선임됐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각각 경영위기 극복과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등기이사에서 물러났다,

 

SK㈜, 효성, 현대상선, 롯데쇼핑 등 대기업 333개사가 18일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이와 같은 이사 선임 안건 등을 의결했다. 

 

최 회장은 2014년 3월 전 계열사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난 후 2년만에 그룹 지자회사인 SK㈜ 등기이사로 복귀했다. 그는 이사회를 통해 대표이사와 이사회의장에 선임됐다.

 

최 회장은 지난 2014년 2월 횡령 혐의로 대법원에서 실형 확정 판결 직후 계열사 등기이사에서 사퇴한 바 있다. 2년7개월 동안의 수감생활 후 지난해 광복절 특사로 출소했다. 그는 출소 직후 경영일선에 복귀했지만 등기이사는 맡지 않았다. 

 

SK는 최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를 준비하며 차근차근 경영투명성 증진 방안을 마련했다. 지난달 최 회장 등기이사 복귀를 공식화하며 거버넌스위원회 설치 계획과 퇴직금 개편 방안 등이 결과물이다. 조대식 SK㈜ 사장은 "신설되는 거버넌스위원회 활동을 통해 주주친화 정책을 더욱 강화하고 신규 성장 사업의 적극인 발굴과 육성을 통해 기업가치를 지속적으로 높여가겠다"고 말했다.

 

▲SK, 최태원·최신원 등기이사 복귀하며 총수일가 책임경영 강화

 

SK㈜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등기이사 선임안에 반대 의견을 냈지만 선임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경제개혁연대 등도 최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에 대해 책임경영을 한다는 전제로 반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계열사 SK네트웍스는 이날 정기 주총에서 최신원 SKC 회장을 등기이사로 선임했다. 최신원 회장은 최태원 회장의 사촌형으로 고(故) 최종건 SK 창업주의 차남이다. SK는 최태원·최신원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로 총수일가의 책임경영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효성은 이날 서울 마포구 본사에서 열린 정기 주총에서 조석래 회장과 조현준 사장 등을 이사로 재선임했다. 국민연금은 효성 주총에서도 이들 이사 재선임 안에 반대 의견을 냈다.

 

조 회장 부자는 분식회계·배임·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12월 1심에서 분식회계·탈세(조석래), 횡령(조현준)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조 회장은 징역3년에 벌금1365억원, 조 사장은 징역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효성은 재판 과정 내내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발생한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주장했다. 조 회장 부자의 등기이사 복귀도 유죄 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책임경영을 위해선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은 이날 기아자동차 주총에서 기타비상무이사에 재선임됐다. 기타비상무이사는 상근은 아니지만 회사와 특수관게에 있는 등기이사를 말한다. 이로써 정 부회장은 현대·기아차에 이어 오는 24일 개최되는 현대엔지비와 잔여 임기가 남은 현대모비스, 현대제철, 현대오토에버 등 총 6개 계열사에서 등기이사를 맡게 됐다.

 

기아차는 이사회 내 독립적 주주권익 보호기구인 투명경영위원회를 설치한다. 투명경영위원회는 인수합병, 주요 자산취득 등 주주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경영 사항, 배당 등과 관련해 이사회에 주주 권익을 반영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위원회는 사외이사 5인 전원으로 구성된다. 

 

LG그룹 3남으로 그룹의 신성장사업추진단장을 맡고 있는 구본준 부회장은 이날 계열사 주총을 통해 LG화학 기타비상무이사에 이름을 올렸다. LG화학 관계자는 구 부회장 이사 선임에 대해 "미래 신성장 사업을 추진하는 데 구 부회장 선임이 도움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LG전자는 이번 주총을 통해 구 부회장이 이사회의장에 이름을 올리며 공동대표에서 물러나고 조성진 H&A사업본부장과 조준호 MC사업본부장, 정도현 경영지원부분 사장에게 대표를 맡기는 3인 각자대표 체제로 변모했다. 

 

▲롯데, '신동빈 원톱체제' 공고

 

롯데쇼핑 주총에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을 사내이사로 재선임되며 신동빈 원톱체제를 공고히 했다. 롯데쇼핑은 이들 외에도 신 회장 측근인 이인원 롯데정책본부 부회장, 이원준 롯데쇼핑 대표이사도 사내이사로 재선임했다. 

 

롯데그룹이 롯데제과를 시작으로 점진적 퇴진을 예고한 신격호 총괄회장은 사내이사 임기가 1년 남은 상황이다. 오는 25일 정기 주총을 앞둔 롯데제과는 신 총괄회장을 이사로 재선임하지 않기로 했다. 

 

대한항공 정기 주주총회에선 최근 항공사 비하 댓글로 논란이 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사내이사로 재선임됐다.

 

반면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이 회장은 이날 진행된 CJ㈜와 CJ제일제당 주총에서 사퇴했다. 그는 앞서 2013년 CJ E&M·CJ오쇼핑·CJ CGV 등 계열사 등기이사에서 사퇴한 바 있다.

 

이 회장이 22년만에 그룹 내 모든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나게 된 배경에는 건강상황이 더 이상 경영을 할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해 12월 파기환송심에서 조세포탈·횡령·배임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재상고 해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유전병 등으로 인한 건강악화로 지속적으로 구속집행정지를 이어오고 있다.

 

이 회장의 등기이사 사퇴로 그동안 그룹 경영을 사실상 총괄해온 손경식 회장과 이채욱 부회장의 역할이 보다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CJ는 두 사람이 이끄는 그룹경영위원회가 경영을 총괄하되 계열사에게 좀 더 권한을 많이 부여하는 방식으로 경영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회장의 딸과 아들은 최근에서야 각각 부장과 과장으로 승진한 만큼 그룹 경영 참여까지는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그룹의 주력사인 현대상선 등기이사에서 물러났다. 현대상선은 금강산광광 이후 지속적 어려움을 겪다 최근 글로벌 해운시장 불황까지 겹치며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바 있다. 현 회장은 구조조정이 더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백의종군을 선언하며 사퇴의사를 밝힌 바 있다.

 

현대상선 주총에서는 현 회장 사퇴안건과 함께 주식병합안을 통과시켰다. 현대상선은 이번 7대 1 감자 단행을 통해 자본금이 1조2124억원에서 1732억원으로 줄며 자본 잠식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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