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탕 냉탕 반복하는 샤워실의 바보 되지 말아야
바보가 샤워실에 들어갔다. 처음 샤워 꼭지를 틀자 뜨거운 물이 나왔다. 바보는 깜짝 놀라 가장 찬 물로 샤워 꼭지를 돌렸다. 이번에는 너무 차가워 다시 뜨거운 물을 틀었다. 바보는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온수와 냉수를 번갈아가며 틀어댔다.결국 물만 낭비하고 정작 샤워는 하지 못했다.
밀턴 프리드먼 전 미국 시카고대 교수가 1976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으면서 정부의 무능함을 꼬집으면서 설파한 '샤워실의 바보(fool in shower)'라는 우화다. 주로 금융 경제 위기 상황을 빗대어 사용하지만 최근 면세점을 둘러 싼 정부의 태도를 꼬집기에도 적합하다.
최근 정부가 면세점 제도 개선을 두고 냉탕과 온탕을 왔다갔다 하며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양새다. 정부는 2013년 관세법 개정을 통해 면세사업자 선정 방식과 기준, 기한을 변경했다. 대기업의 특허를 제한하고 자동 갱신되던 특허를 허가제인 경쟁 입찰 방식으로 변경했다. 특허 기간도 기존 10년에서 5년으로 줄였다.
이에 지난해부터 특허기간이 만료되는 면세 사업자의 사업권 유치를 위한 경쟁이 치열해졌다. 면세사업 1위 기업 롯데가 점포 하나를 잃었고 25년 동안 사업을 이어오던 워커힐은 면세 사업 분야를 접어야 할 상황이 됐다. 그러자 면세점 근로자들의 고용안정성이 크게 위협받기 시작했다. 약 2200명의 직원이 실직 위기에 놓이게 됐다.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정부는 다시 면세점 사업 기한을 10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16일 전문가, 학계, 산업계, 시민단체 등이 참석한 가운데 면세점 제도 개선을 위한 공청회를 열 계획이다.
이 자리에서 면세점 시장 진입 요건, 특허기간과 수수료 등을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토대로 3월 안에 개선안을 발표하겠다고 서두르고 있다. 기재부 차관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면세점의 특허 기간을 10년으로 연장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10년 단위의 면세점 특허기간을 독과점을 이유로 축소하더니 고용 안정성 문제가 불거지자마자 다시 기간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샤워실에서 찬물과 뜨거운 물을 정신없이 돌리는 중이다.
이런 상황이 되자 업계는 혼란스럽다. 지난해 면세점 사업권을 확보한 업체들과 탈락 업체들은 극명한 입장 차를 드러내고 있다. 이미 면세점 특허권을 놓친 기업들의 회생과 부활 가능성이 점쳐지는 반면 아직 자리 잡지 못한 신규 업체들은 공멸론까지 주장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이미 여러 공청회와 세미나를 통해 면세점 문제를 고민해왔다. 합리적인 의견을 수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부가 나서서 업계의 혼란을 부추기는 것은 옳지 않다. 더 이상의 혼란이 가중되지 않을 방법을 찾아가는 게 급선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