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불완전 판매 정황 속속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출시일인 14일 금융권 곳곳에서 불완전판매 정황이 드러났다.
이날 은행, 증권 등 33개 국내 금융사는 ISA를 일제히 출시했다. 시중은행은 신탁형 ISA를 먼저 출시하고 금융당국의 허가를 받아 오는 4월 중 일임형 ISA를 판매할 계획이다.
신탁형 ISA는 원칙적으로 금융사가 가입자에게 상품 포트폴리오를 제시할 수 없다. 다만 가입자 요청이 있을 때만 투자 성향에 맞춰 맞춤형 포트폴리오를 자문해줄 수 있다.
하지만 현장 분위기는 달랐다. 가입자의 투자 성향을 묻기 전부터 상품 포트폴리오부터 제시했다. ‘고수익형’ 투자 상품을 권하는 등의 모습도 보였다.
이날 기자는 국민·신한·KEB하나·우리·농협 등 국내 5대 은행을 방문했다. 대부분 은행은 번호표를 뽑자마자 ISA 상담사와 연결해줬다.
기자는 투자 성향 질문을 받지 못하고 이미 펼쳐진 상품 포트폴리오를 받아들었다. 전문 용어로 가득한 페이지에서 알아볼 수 있는 단어는 맨 위에 있는 ‘고위험·초고위험’이었다.
투자자 입장에서 먼저 상담사에게 ‘투자 경험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상담사는 다양한 상품이 담긴 투자 리스트 중 한 가지를 찍어줬다. "AB미국 그로스에 투자하라"고 투자 성향에 대한 대답을 대신했다.
ISA에 담길 고수익형은 정기예금 비중을 대폭 낮추고 대신 해외펀드·ELS 등을 편입한 상품이다. 기대수익률이 높은 만큼 원금손실 위험도 상당하다. 이에 원금 손실 우려를 지적하자 “단기적으로 주가가 오르면 모르겠지만 장기적으로 오르고 내리는 패턴 때문에 큰 손실은 없을 것”이라며 "ISA 예금 상품에 투자하려면 차라리 일반 적금 상품에 가입하라"고 권했다.
수수료 부담에 대해선 “초고위험 상품은 연 0.5%에서 1% 사이라고 보면 된다”며 “손님이 투자를 잘 모르기 때문에 가장 무난한 상품을 선택해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은행도 마찬가지다. 수익률 목적이 아닌 목돈 만들기가 목적이라고 하자 상담사는 “초저위험 상품은 큰 장점이 없다”며 “소액으로 한번 투자해 보고 본인이 투자 공부하면서 수익률을 확인하는 게 좋다. 수익률이 발생한다면 차후에 자금을 더 넣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기자에게 “ISA 공부가 아직 덜 됐다”며 우왕좌왕 하는 모습을 보인 상담사도 있었다. 계좌이동이 가능하냐는 질문에 “아직 잘 모르겠다.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전화기를 들어 누군가에게 기자의 질문을 물었다. 옆에 있던 직원의 도움을 구하기도 했다.
답변을 끝까지 기다려주자 상담사는 “아직 은행의 시스템이 완성되지 않아 계좌이동은 4월 중에나 가능하다”고 말했다.
ISA 중도 해지 여부를 묻자 상담사는 많은 양의 문서를 꺼내 질문 내용을 찾으며 “아직 공부가 덜 돼서”라고 얼버무렸다. 펀드에 대한 운용과 수익률, 포트폴리오 정보 질문에는 “고위험 상품은 아무래도 손실 위험이 크다. 예·적금으로 가는 것이 낫다” 등 구체적인 답변은 들을 수 없었다.
다른 은행에서 일임형ISA가 언제 출시 되냐고 묻자 상담사는 “신탁형과 일임형 차이가 없다”며 “은행이 신탁형을 먼저 내놓은 이유는 그만큼 투자자에게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사와 달리 시중은행은 투자일임업 허가가 나오지 않아 관련 등록 절차가 끝나는 4월 말부터나 일임형ISA가 출시된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일어나는 기자에게 “수익률이 걱정된다면 일단 1만원만 넣고 계좌만 만들어 놔도 된다”며 “이후 주가연계증권(ELS)과 펀드 등을 하나씩 넣어도 된다”고 가입을 권했다.
기자가 본 시중은행 ISA 상담 창구는 대개 한산했다. 가장 바쁠 1~2시에도 ISA를 찾는 사람은 보기 힘들었다. 대기 상황판에도 기자가 뽑은 대기표를 포함한 ‘1명’ 표시만 보였다.
상담이 시작하고 ‘한산하다’는 기자의 질문에 ISA 상담사는 "은행에서 많이 홍보해 왔지만 기대보다 손님이 적어 우리도 당황했다"며 "아무래도 손님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