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 위한 주식 대량매도…"시세조종으로 보기 어려워"

대법원이 주가연계증권(ELS)의 헤지를 위해 주식을 대량 매도했다면 개인투자자의 손실이 발생했더라도 시세조종으로 보지않는다는 판단을 내놨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경 / 사진=뉴스1 

주가연계증권(ELS) 헤지(위험 회피)를 위해 주식을 대량 매도했다면 개인투자자의 손실이 발생했더라도 시세조종으로 보지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14일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개인투자자 김모씨가 BNP파리바와 신영증권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을 기각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2006년 3월4일 신영증권으로부터 하이닉스와 기아자동차 주식과 연계된 ELS에 1억원 가량을 투자했다. 이 ELS는 기아자동차와 하이닉스 주가와 연동된 상품으로 2종목이 특정 가격을 넘거나 미달하면 손익이 결정되는 구조였다. 만기 3년에 매 6개월마다 조기상환 기회가 부여되며 조기상환조건 충족시 연 수익 16.1% 확정되는 조건이 붙었다.

 

상품을 판매한 신영증권은 프랑스계 금융기관인 BNP파리바와 스왑(SWAP) 계약을 체결했다. 스왑은 거래계약 당사자간 사전에 정해진 현금흐름이나 금액을 교환하는 금융기법이다. 이에 따라 해당 금융상품에서 발생하는 현금흐름은 BNP파리바에서 부담하게 됐다. 신영증권으로서는 해당 ELS가 만기 내 목표 수익률에 도달할 가능성에 대비한 셈이다. 

 

BNP파리바는 신영증권이 발행한 ELS 중 약 절반에 해당하는 300억원어치 상당의 파생금융상품을 액면가의 98% 가격에 매입했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국내증권사들은 ELS 같은 상품을 판매하면 백투백헤지(back to back hedge)를 위해 대형 증권사와 스왑계약을 체결한다. 

 

문제는 BNP파리바가 2006년 9월4일 오후 2시57분부터 59분까지 단일가매매시간에 7차례에 걸쳐 기아자동차 주식 140만주를 매도했다는 점이다. 이날은 해당 싱품의 1차 조기상환기준일이었다. 

 

BNP파리바가 대량 매도주문을 내기 7분여 전인 오후 2시50분경 하이닉스와 기아자동차의 주식은 1만5950원 수준이었다. 조기상환기준 가격인 1만5562.5원 보다는 350원 이상 높았다. 그러나 단 2분 사이에 쌓인 대량매도주문에 이날 기아자동차 주가는 1만5550원으로 마감했다. ELS 상환 기준 가격보다 낮아졌기 때문에 조기상환은 불가능했다. 김씨는 ELS의 결국 투자 금액의 4분의 1 수준인 2950여만원을 받았다. 

 

투자자 김씨는 "BNP파리바가 조기상환 의무를 피하기 위해 주가를 조작했다"며 "신영증권과 비엔피파리바은행을 상대로 각각 9200만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신영증권도 BNP파리바에 항의했다.

 

반면 BNP파리바는 "델타헤지에 따른 것으로 정상적 매매"라며 "시세를 조종할 목적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델타는 기초자산의 가격변화에 대한 옵션가치의 민감도를 표현하는 단위다. ELS 같은 파생금융상품을 판매하는 증권사는 델타 값을 활용해 옵션과 현물의 수를 맞추는 방식으로 주가 변동에 따른 위험을 막는다. 예를 들어 파생금융상품이 현물을 보유(long)하는 구조라면 선물옵션은 파는(Short) 형식으로 반대 포지션을 구성한다.

 

 

대법원은 "BNP파리바에 대해 시세조종이 아니라 위험 회피를 위한 정당한 거래였다"고 판단하고 김씨 소송을 기각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씨는 1·2심 재판부에서도 모두 패소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이 이번 거래가 델타헤지를 위한 정당한 거래였다고 판단한 이유는 크게 세가지다. 

 

우선 BNP파리바가 당일 장종료 전에 주식 보유량을 줄여 ELS 상환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필요성이 있었다고 봤다. 따라서 장종료 막판 100만주를 매도한 것이 시세조종을 위한 매도 주문이 아니었다는 판단이다. 

 

매도 방법에서도 가격하락을 목적으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사건 당일 매도된 물량중 60만주가 시장가 매도 주문을 통해 거래됐다. 대법원은 이 물량이 지정가 주문보다 우선하여 계약 체결을 하기 위한 것이라 판단했다. 가격하락을 목적으로 보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나머지 40만주 매도주문의 지정가는 1만5600원으로 상환기준가격보다 높다.

 

재판부는 "인위적으로 가격을 조작하는 등 공정성이 훼손됐다고 볼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시세조종이라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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