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여유자금 투자 않고 은행에 예치
건당 10억원을 넘는 고액 은행 예금잔액이 500조원을 돌파했다. 역대 최대 규모다. 장기 저금리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이 예금에 예치된 것으로 보인다.
1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말 현재 예금은행 잔액 10억원 초과 고액계좌(저축성예금·금전신탁·양도성예금증서 기준)의 수신액은 514조8000억원으로 6개월 전보다 23조6000억원 증가했다. 10억원을 넘는 고액 계좌 잔액이 500조원을 넘어선 것은 사상 처음이다.
5억원 이하 계좌 잔고는 586조8000억원으로 6개월 동안 11조1000억원 늘었다. 5~10억원 규모 계좌 잔고는 56조 2000억원으로 2조1000억원 증가했다. 10억원 초과 계좌 잔고가 여타 규모 계좌보다 큰 폭으로 늘어났다.
5억원 이하 계좌 잔고는 2011~2013년 사이에 반기 당 평균 20조원이 증가했지만 2014~2015년 상반기엔 증가 폭이 평균 13조4000억원으로 줄었다.
하지만 같은 기간 5억원 초과 계좌는 반기당 평균 증가액이 3조9000억원에서 21조원으로 5배를 넘었다. 이중 10억원 초과 계좌는 평균 증가액이 3조1000억원에서 19조2000억원으로 6배 이상 급증했다.
계좌 유형별로 저축성예금의 고액계좌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지난해 상반기 말 저축성예금 잔액은 976조6000억원으로 6개월새 18조9000억원이 늘었는데 이중 66%를 넘는 12조5000억원이 10억원 초과 고액계좌였다.
금전신탁 잔액은 158조4000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15조2000억원 증가했는데 이중 8조2000억원이 고액계좌였다.
양도성예금증서(CD)는 6개월새 2조7000억원이 늘어 지난해 상반기 말 잔액이 22조8000억원이었다. 고액계좌는 2조9000억원 증가한 반면 5억 이하 계좌가 약 2000억원 줄었다.
고액계좌 잔액이 증가한 것은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은 기업의 여유자금이 몰린 탓으로 추정된다.
기업들은 최근 실적 부진 속에서도 투자를 줄여 현금성 자산이 늘었다. 이를 만기가 비교적 짧으면서도 안전한 금융계좌에 예치해두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수준으로 내려 시중 통화량은 사상 최대 규모인 2261조원(M2기준)에 달했지만 통화 유통속도는 역대 최저를 기록할 정도로 돈이 돌지 않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