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네이버 손배소 책임 인정 안해..."사실상 수사기관에 강제 권한 줘" 우려

 

박경신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소장(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 10일 오전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대법원은 영장없이 경찰에 가입자 인적사항을 제공한 네이버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 사진=뉴스1

포털 등 인터넷 및 통신사업자가 영장 없이 수사기관의 요청만으로 가입자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문제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수사기관의 무분별한 가입자 인적사항 요청과 이에 대한 사업자의 기계적 자료 제공에 합법성이 부여됐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대법원 1(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차모(35)씨가 자신의 신상정보를 경찰에 넘긴 네이버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위자료 지급을 명령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제공 요청에 응한 것이 위법하기 위해선 요청이 있을 때 사업자가 개별 사안의 구체적 내용을 살펴 그 제공 여부 등을 실질적으로 심사할 의무가 있다고 인정돼야 한다""일반적으로 전기통신 사업자에겐 그러한 의무는 없다"고 판단했다.

 

"전기통신사업법은 수사기관 서면요청만으로 이용자 인적사항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통신자료 제공으로 범죄에 대한 신속한 대처 등 중요한 공익을 달성할 수 있음에 비교해 통신자료가 제공돼 제한되는 사익은 해당 이용자의 인적사항에 한정된다"고 밝혔다.

 

아울러 "사업자에게 인적사항 제공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국가나 수사기관이 부담해야 할 책임을 사인에게 전가시키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차씨가 주장한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등 권리 침해 주장에 대해선 "수사기관이 통신자료 제공 요청권한을 남용해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명백한 경우가 아닐 경우엔 위법하게 침해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앞서 차씨는 지난 20103월 이른바 '회피 연아' 사진을 네이버 카페에 올렸다. '회피 연아' 사진은 유인촌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벤쿠버 동계올림픽 선수단 귀국 행사에서 김연아 선수에게 꽃다발을 걸어주고 포옹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김 선수가 이를 회피하려는 듯한 모습으로 편집됐다.

 

이에 유 전 장관은 해당 게시물을 올린 사람들을 명예훼손죄로 고소했다. 경찰은 3일 뒤 네이버에 글 게시자의 인적사항을 요청했고, 네이버는 아이디, 성명, 주민등록번호, 이메일 주소, 휴대폰 번호, 가입일자를 제공했다. 경찰은 이를 바탕으로 차씨에게 연락해 소환 조사를 했다. 해당 사건은 같은 해 4월 유 전 장관 고소취하로 종결됐다.

 

차씨는 같은 해 7"경찰에 개인 정보를 제공해 개인정보자기결정권과 익명표현의 자유가 위법하게 침해당했다"며 네이버를 상대로 약 2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수사기관의 요청에 따른 통신자료 제공이 위법하지 않다며 네이버의 손을 들어줬다. 반면 2심은 "네이버가 수사기관에 개인정보를 급하게 제공해야 할 특별한 사정이 없었다"며 차씨에게 위약금 5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네이버는 항소심 패소 후 상고했다.

 

대법원 판결 직후 참여연대와 차씨는 강하게 반발했다. 차씨 법률대리인 박주민 변호사는 "이제 수사기관이 요청하면 전기통신사업자는 개인정보를 다 제공해야 한다""수사기관이 강제적 권한을 갖게 됐다"고 분노했다.

 

박경신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소장(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사업자들은 합법적 요구일 경우 강제적이지 않아도 사안 경중 판단이 어렵다는 이유로 모든 요청을 기계적으로 들어줬다""테러방지법 하에서도 똑같이 재연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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