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구본준 등기이사 복귀…이재현,신격호는 사임
3월 주주총회를 기점으로 일부 대기업 총수들의 등기이사 복귀가 이뤄질 전망이다. 반면 건강상 등의 이유로 이사직 수행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오너들은 이사직에서 물러난다.
재계 총수들의 등기이사 복귀는 이사회의 구성원으로 참여해 회사의 중요한 의사 결정에 공식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법상 이사들의 잘못된 결정으로 회사가 손해를 입으면 주주들은 이사들을 상대로 각종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기 때문에 등기이사 복귀는 그만큼 책임감을 갖고 경영에 임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9일 재계에 따르면 SK‧LG‧CJ‧롯데 등은 이달 중으로 주주총회열고 그룹 총수들의 사내이사 선임안 등을 상정할 계획이다.
SK(주)는 오는 18일 주총을 열고 최태원 회장을 ㈜SK의 사내이사로 선임하고 등기임원을 기존 6인에서 7인으로 늘린다. SK이노베이션·SK하이닉스 사내이사를 유지했던 최 회장은 지난 2013년 구속된 뒤에도 이들 회사로부터 받은 고액연봉이 문제돼 등기이사직에서 내려왔다. 최 회장이 ㈜SK의 이사에 선임되면 2년 만에 책임경영 일선에 나서게 된다.
최 회장의 복귀와 함께 SK는 바이오와 제약 사업에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지난달 26일 SK(주)는 의약품 생산회사인 SK바이오텍 지분 100%를 인수했다. SK바이오텍은 SK바이오팜이 2014년 4월 분할해 만든 SK(주)의 손자회사로 지난해 매출 757억원, 영업이익 200억원을 기록했다. SK는 SK바이오텍의 설비증설 재원 확보를 위해 4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계획하고 있다.
이미 지난 2014년 신약개발 지원을 위해 1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했던 SK는 이번 유상증자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고 바이오부문을 에너지ㆍ반도체ㆍIT에 이은 주력 사업군으로 성장시킬 방침이다. 글로벌 의약품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의약품 생산 시장은 오는 2020년 85조원(2015년 60조원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LG화학은 구본준 LG 부회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한다. LG화학은 오는 18일 주주총회를 열고 구 부회장을 등기이사에 선임할 예정이라고 지난달 17일 공시했다.
LG전자 대표이사 출신인 구 부회장은 지난해 말 ㈜LG로 자리를 옮겼다. 재계는 오너 경영인 출신인 구 부회장이 그룹사 핵심 계열사의 신사업을 직접 관리하면 좀 더 강력한 추진력을 보일 것으로 보고 있다. LG그룹은 최근 미래성장분야로 자동차 부품, 에너지 솔루션 부문 등을 육성하고 있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은 롯데제과 등기이사에서 49년만에 내려온다. 롯데는 오는 25일 주주총회를 열고 황각규 롯데그룹 정책본부 운영실장 등을 새 등기이사로 선임한다.
신 총괄회장의 등기이사 사임은 신동빈 회장에 대한 재신임건이 지난 7일 일본 롯데홀딩스의 주총에서 부결됨에 따라 그룹 지배력을 공고하게 하려는 신 회장의 결단인 것으로 관련업계는 보고 있다. 신 총괄회장은 롯데제과뿐 아니라 이달 28일까지 임기인 호텔롯데와 내년 8월 10일까지인 롯데알미늄 등 그룹 계열사 등기이사에서도 내려올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8일 대법원에 구속집행정지 기간 연장 신청을 낸 이재현 CJ 회장은 CJ주식회사와 CJ제일제당 등기이사에서 사임한다. 이 회장은 그동안 CJ E&M·CJ CGV 등 7개 주력 계열사의 등기이사로 업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신장이식 수술에 따른 거부반응 등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수행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돼 오는 18일 각 계열사 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직에서 내려온다.
CJ는 이재현 회장의 공백이 장기화되면서 손경식 회장 중심의 비상경영체제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13년 그룹 총수의 구속 직후 5인 체제의 경영위원회가 발족했지만 이관훈 전 CJ 주식회사 대표는 물러나고 이미경 부회장은 미국에 머무는 등 사실상 손 회장이 그룹을 이끌고 있다. 손 회장 체제의 CJ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그동안 대부분의 오너 일가들은 회사의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법적책임 때문에 사내이사에 등재되는 것을 꺼려했다. 최근 총수들의 등기이사직과 관련, 일각에서는 보여주기 위한 제스쳐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총수들은)보유지분만으로도 회사의 의사결정을 좌지우지 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등기이사직 유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면서 “문제를 일으켰던 오너들이 등기이사 복귀로 책임경영의 자세를 보여주려 하지만 좀 더 구체적인 활동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형식에 그치고 말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