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첨단화에 화재 위험성도 증가...차량화재전문가 양성 필요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갑자기 엔진룸에서 폭발음과 함께 불이 치솟았습니다.”
연일 터지는 주행 중 화재사고에 고가 외제차 운전자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발단은 지난해 불거진 BMW 연쇄 화재사고다. 100일 동안 8건 발생한 화재사고로 BMW는 ‘달리는 폭탄차’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단기간에 비슷한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 당사자들은 BMW 차체 결함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주행 중 화재사고는 비단 특정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자동차의 첨단화, 계절적 요인, 튜닝차량 증가 등의 요인들이 차량 화재위험성을 높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 BMW 만의 문제? 현대·기아차 차도 불 붙어
연달아 발생하는 화재사고에 BMW는 초상집이다. 당장 메르세데스 벤츠와의 경쟁도 버거운 상황에, 차주들의 신뢰까지 잃었다.
BMW 관계자는 “도의적인 책임을 져야겠지만 억울한 측면이 있다. 이제 BMW에 불만 나면 사람들은 연쇄라는 단어를 쓴다. 하지만 연간 차량 화재발생건수를 찾아보면 BMW 차체 문제로만 볼 수 없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일각에선 BMW가 반성은 하지 않고 변명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BMW는 기술적 결함의혹에 대해선 확답을 내놓지 못한 상태다. 다만 주목할 점은 BMW 주장대로 국내에서 발생하는 주행 중 화재사고가 특정사에 국한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현대·기아차도 주행 중 화재사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해 12월 13일 경기도 광명시 하안사거리에서는 기아차 모닝이 불길에 휩싸였다. 차량은 전소됐지만 원인은 밝혀내지 못했다. 지난 1월 20일에는 가평군 청평면 대성리 가평초등학교 앞 경춘국도를 달리던 박모 씨의 K3 승용차에 불이 났다. 운전자 박 씨는 차량 엔진룸에서 불이 시작됐다고 소방당국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 자동차 첨단화될수록 화재 위험성 증가
국민안전처 산하 소방방재청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5년까지 6년간 발생한 국내 자동차 화재는 총 3만1770건이다. 연평균 5200여건, 하루 평균 14.5건에 이른다. 이 중 대부분의 차량이 전소됐다. 이 탓에 화재원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미제로 끝나는 경우가 상당수다.
BMW 화재사고 역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독일 본사 화재감식팀 및 BMW 코리아 기술팀이 합동 조사를 펼쳤으나, 상당수 차량들이 전소돼 명확한 원인을 파악할 수 없었다.
전문가들은 최근 발생한 화재사건의 원인을 3가지로 추려낸다. 가장 주목하는 현상은 자동차의 첨단화다. 최근 자동차에 정보통신(IT) 기술이 융합되는 경우가 증가하면서, 자동차 배선이 복잡해진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내비게이션을 비롯해 블랙박스, 첨단 오디오 시스템이 탑재되면서 과거보다 전기배선설비가 증가했고, 전선 굵기는 그만큼 가늘어졌다. 이 탓에 합선위험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사설업체를 통한 튜닝 건수 증가다. 고속주행을 즐기는 차주들이 증가하면서, 사설업체를 통한 터보엔진 튜닝 등이 늘고 있다. 정식 튜닝업체가 아닌 동호회 및 사이비 전문가를 통한 튜닝이 판치면서 사고 위험성도 커졌다. 실제 1년 전 강남 사설업체에서 엔진에 터보기능을 추가했다는 전모씨는 “튜닝 후 엔진소리가 커졌고 속도도 빨라졌다. 그런데 튜닝 후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보닛에서 연기가 발생했다. 화재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그 뒤 튜닝차량을 폐차했다”고 밝혔다.
국내의 뚜렷한 사계절도 자동차 화재사고의 원인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 최근 자동차 경량화 추세에 따라 차량 내부에 고무 및 플라스틱 제품을 사용하는 빈도가 늘었다. 이 중 고무재질은 주변 온도에 따라 수축과 확장 등이 일어난다. 한국은 특히 여름과 겨울의 온도차가 크다보니 이 과정에서 고무소재에 틈이 벌어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연료장치 주변을 둘러싼 고무패킹에 틈새가 생길 시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차량화재 전문가 양성 절실
차량 화재원인에 대한 추측은 가능하지만 확증이 없다. 이 탓에 차량화재 발생 시 차주가 책임을 떠안는 경우가 다반사다. 최근 사법부가 자동차사의 화재사고 책임 회피에 경종을 울리는 판결을 내린 게 그나마 위안이 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9부(부장판사 오성우)는 지난 1월 31일 주행 중 화재사고를 겪은 A씨의 보험회사가 쌍용차를 상대로 낸 구상금 소송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이 “쌍용차는 2234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운전자 과실이 발견되지 않는 이상 차량 결함으로 보는 게 맞다”며 “차량 엔진 하자는 제품을 해체해보지 않으면 발견하기 어렵다”고 판결, 운전자 책임이 있다는 쌍용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동차사 역시 최근 달라진 여론을 의식, 자체 화재감식반 등을 꾸릴 계획이다. BMW 코리아는 공식 서비스센터 현장에서 고객들이 더욱 안심할 수 있는 기술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BMW 마이스터 랩(BMW Meister Lab)은 검증된 업계 최고의 국가공인 기능장으로 구성된 기술팀을 딜러사 서비스센터에 배치하는 제도다.
현대·기아차는 화재전문가들로 구성된 자체 화재감식반을 연내에 발족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다만 업계관계자들은 차량화재 전문가라는 호칭부터 문제가 된다고 말한다. 차량전문가와 화재전문가가 사실상 별개로 존재하는 상황에서 차량화재만을 전문적으로 감식하는 직군을 체계적으로 양성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병일 국가공인 자동차 명장은 “자동차 내부 구조 등을 구체적으로 알아야 발화점 등을 찾아낼 수 있다. 차량에 능통하지 못하다면 화재전문가를 영입하더라도 명확한 원인을 밝히기 어렵다. 국과수 수사에도 미제로 끝나는 사건이 많은 이유”라며 “체계적인 전문가 양성이 필요하다. 자동차 첨단화 추세에 맞춰 화재사고 원인도 복잡해지고 있다. 정부와 자동차사가 나서서 과정을 수립해야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