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우선매수청구권 행사 여부 쟁점
현대증권의 인수전이 재점화되고 있다. 지난해 한차례 매각이 무산된 뒤 다시 시장에 매물로 나왔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KB금융지주와 한국금융지주 2파전 양상이 될 것으로 보이지만 흥행 성공 여부는 안개속이다.
1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KB금융지주와 한국금융지주가 지난 12일 현대증권 매각 절차 참여를 위한 인수의향서(LOI)를 제출했다. 키움증권과 메리츠종금증권도 인수 가능성 검토에 나섰고 사모펀드(PEF), 중국계 자본 등도 잠재 후보군으로 부상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현대증권 재매각 성사에 무게를 두고 있다. 지난해 매각작업이 불발된 이후 재추진한다는 점에서 신중을 기할 것이란 관측에서다. 또 현대그룹의 구조조정이 당면과제로 떠오른 만큼 강도 높은 매각을 추진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해 대우증권 인수전에서 고배를 마셨던 KB금융지주와 한국금융지주가 다시 한 번 맞붙을 가능성이 크다. 이들이 가격 경쟁력을 내세울 경우 현대증권 인수가격 상승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투자증권이 현대증권 인수에 성공하면 자기자본은 6조5000억원 규모로 대우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의 합병(7조8000억원) 이후 두 번째 대형증권사가 탄생하게 된다.
KB금융이 현대증권을 품에 안을 경우 자기자본규모는 4조원 안팎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현대증권 주가는 전일대비 700원(13.23%) 오른 5990원에 마감했다. 매각 기대감이 주가를 끌어올린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매각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현대증권을 둘러싼 매각 가격과 우선매수청구권이 쟁점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매각 대상인 현대증권 지분은 22.56%, 시가 약 3000억원 수준이다. 현대상선 보유분 22.43%, 기타 주주 보유분 0.13% 등이다. 경영권 프리미엄 30%를 감안한 매각가는 40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유진투자증권은 최근 대우증권 매각 사례에 비춰볼 때 현대증권의 가격 매력을 장점으로 꼽았다. 산업은행이 보유한 주가순자산비율(PBR) 1.28배의 대우증권 지분 43%가 2조3853억원에 매각됐다. 따라서 PBR 0.39배, 자기자본 3조2000억원대의 현대증권 가격 매력도는 높다고 판단했다.
서보익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우리투자증권 매각에서도 PBR 0.79배에 인수가격이 형성된 만큼 현대엘리베이터의 우선매수청구권을 고려하면 현대증권 예상 인수가격은 주가순자산비율(PBR) 0.6~0.8배 구간인 4300억~5800억원에서 형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 연구원은 “이들 회사가 대우증권 인수전에서 가격 요인으로 실패한 만큼 인수 의지에 따라 인수가가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했다. 또 “현대증권 지분 30% 이상을 확보하며 자사주 7.06%를 추가 매입한다면 실제 인수가격은 5200억~6700억원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대그룹 측에서는 장부가와 플러스 알파(α) 등을 고려했을 때 1조원 수준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대증권의 지난해 3분기 기준 장부가는 6935억원이다. 패키지 매각 대상인 현대저축은행과 현대자산운용 장부가인 2800억원을 합산하면 장부가는 1조원 수준에 육박한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오릭스 프라이빗에쿼티(PE)와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할 당시 주가가 부진했고 영업손실을 기록해 입찰가는 약 6500억원으로 책정됐지만 2년 연속 흑자를 냈고 주가도 올라 매각가는 높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또 있다. 현대엘리베이터가 보유한 우선매수청구권에 대해 채권단과 인수후보자 간의 이견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현대엘리베이터의 우선매수청구권 행사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인수후보자 측은 현대그룹이 우선매수청구권을 포기해야 본입찰에 참여하겠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현대그룹의 오릭스PE와 현대증권 매각 과정에서 파킹딜(지분 매각 이후 일정기간이 지나고 되사오는 거래)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현대상선은 현대엘리베이터로부터 1400억원 규모의 자금을 대출받는 과정에서 현대증권 지분을 되살 수 있는 우선매수청구권을 제공했다. 이에 따라 현대엘리베이터가 우선협상 권리의 열쇠를 쥐게 됐다.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증권에 대한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할 경우 동일한 조건으로 매수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손미지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인수후보자 입장에서 가격 매력은 높지만 현대엘리베이터가 보유한 우선매수청구권이 부담”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의 현대증권에 대한 향후 주가 전망은 엇갈렸다.
손미지 연구원은 “현대증권 매각이 가시화되면 그룹 리스크(위험) 및 지배주주 관련 불확실성이 해소되며 주가가 반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서보익 연구원은 “최근 대우증권 사례와 같이 소액주주 입장에서는 인수 불확실성 여부에 따라 주가 리스크가 상존함에 따라 보수적이고 신중한 투자가 요구된다”고 조언했다.
한편 현대증권 인수의향서 제출 마감은 오는 29일이다. 내달 초 인수적격후보자(숏리스트)를 선정하고 본입찰은 3월 중순 실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