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모바일 이어 가전까지 중국 추격 따돌려야
중국 가전업체 하이얼이 제네럴일렉트릭(GE) 가전사업 부문을 인수하면서 국내 전자업계에 미칠 영향에 대한 관심이 모이고 있다. 특히 이번 인수로 중국이 삼성전자의 3대 사업부문(반도체‧모바일‧가전) 모두를 위협할 수 있게 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15일 하이얼은 GE 가전사업 부문을 54억 달러(약 6조5000억 원)에 사들였다. 그동안 GE 가전부문을 누가 인수하느냐는 글로벌 가전업계의 최대 관심사였다. 현대증권에 따르면 북미 가전시장 점유율은 월풀이 1위이며 LG전자, GE, 삼성전자 순이다. 하이얼이 GE를 인수하면 북미 가전시장 10%를 차지하게 된다.
스웨덴 일렉트로룩스도 GE 가전 사업부를 인수하려 했으나 미국 감독당국의 제동으로 무산됐다. 삼성전자도 한때 인수를 위해 협상을 벌였지만 같은 이유로 무산되면서 결국 GE가전은 하이얼 품에 안기게 됐다.
일단 당장은 이번 인수가 삼성전자나 LG전자에 미칠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란 분석이 많다. 프리미엄 제품을 주력으로 하는 우리 기업들과 시장 자체가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조성은 삼성증권 연구원은 “미국 시장에서 GE 가전은 월풀, LG전자, 삼성전자 등 프리미엄 가전 브랜드와 격차가 있어 하이얼의 GE 브랜드 인수에 따른 시너지 효과는 미국 내보다는 신흥시장의 저가 수요층에 국한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을 내놨다.
송은정 하이투자증권 연구원 역시 “하이얼의 북미 시장 진출은 브랜드 가치 향상과 고사양 가전 시장 진출 목적인데 기존 고사양 브랜드 사이에서 (하이얼이) 빠르게 점유율을 확대시킬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전망했다.
다만 장기적으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컴퓨터 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 레노버가 IBM 노트북 사업을 인수했을 때도 저가 브랜드인 중국 레노버 제품을 소비할 것이냐는 분석이 많았지만 결국 다들 소비한다”며 “전자업계 소비자들은 기업의 국적을 따지기 보단 늘 관성으로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하이얼은 이번 인수를 통해 GE가 강점을 갖고 있는 붙박이 가전 기술을 자연스레 흡수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삼성전자의 경우 3대 주요 사업부문을 모두 중국과 정면으로 맞붙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반도체 부문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육성정책)의 추격을 따돌려야 하고 모바일 부문 역시 화웨이‧샤오미의 성장 속에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007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를 마치고 나오며 했던 “중국은 쫓아오고 일본은 앞서가는 상황에서 샌드위치 신세여서 이를 극복하지 않으면 고생을 많이 해야 하는 것이 한반도의 위치”라는 전망이 들어맞고 있다.
그나마 가전 부문이 중국의 영향에서 자유로웠던 이유는 그동안 중국가전업체들은 내수만으로 만족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중국 가전업체 미데아의 경우 중국소비 만으로 에어콘 판매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중국 내 TV시장의 경우 중국 상위 3개 업체가 80% 점유율을 차지한다.
이번 하이얼의 GE인수는 국내에 머물던 중국 가전이 해외시장 본격 진출을 할 수 있도록 해줬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한 전자업계 관계자는 “하이얼의 GE가전 인수는 중국가전에게 북미시장 개척 발판을 마련해 준 것”이라며 “중국브랜드의 가장 큰 약점이었던 저가 이미지를 GE인수를 통해 단기간에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GE브랜드는 매각 후에도 계속 유지될 예정이다.
중국 현지에서도 이번 인수에 대해 환영하는 분위기다. 중국 경제지 시나 금융은 18일(현지시간) “현재 가전제품 세계시장의 점유율은 하이얼 7위, GE 19위인데 하이얼이 GE를 합병하며 세계 5위로 올라설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편 하이얼이 얼마나 위협이 될지는 인수 합병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이뤄지느냐에 달렸다는 전망도 있다. 국내 전자업계 고위 관계자는 “하이얼이 단순히 GE의 북미시장 점유율을 흡수했다고 해서 위협적이진 않다”며 “중요한건 GE의 기술력을 얼마나 흡수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