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층 중저가 브랜드 입점해 10대 천국

 

#A-LAND 매장은 앳된 얼굴의 무리들로 가득했다. 옷을 앞에 두고 떠들며 웃는 여학생들. 알 수 없는 은어로 친분을 주고받는 남학생들. 여학생들은 팔짱낀 채 ABC마트로 이동했다. 남학생들은 무리지어 게임체험 팝업스토어로 향했다.

“원더플레이스나 A-LAND 가려면 서울 가야하는데 여기 생기고 나서는 할인소식 들릴 때마다 놀러 와요. 온 김에 몇 시간동안 구경하고 놀고 그래요.” - 이순주(16·여) 

 

구매력 갖춘 중장년층 고객이 주로 들르는 백화점과 달리 현대백화점 판교점(이하 판교점)은 놀고 구경하는 10대들로 붐볐다. 

백화점이 세대를 아우르는 문화공간으로 변화하는 모양새다.

◇현대百 판교점, 중저가 브랜드와 체험형 마켓으로 십대 공략


판교점은 연면적 23만7035㎡에 지하 6층~지상 10층으로 설계된 수도권 최대 규모 백화점이다.

12일 토요일 오후 2시 판교점 1층에 들어서자 루이비통과 구찌 등 명품 브랜드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30~40대 고객이 다수였다. 수입브랜드와 디자이너 매장이 들어선 2·3층 역시 분위기는 엇비슷했다.

4층으로 올라가니 백화점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다. 분당구 정자동에서 온 이순주(16·여)양은 “4층에 카카오샵 등 볼 게 많아 살 것만 사고 4층에서 구경하고 논다”고 말했다. 이 양은 이 날도 친구와 단둘이 놀러왔다. 


중저가 브랜드가 입점하면서 10대들은 십대들을 백화점으로 불러 모은 요인은 우선 중저가브랜드의 입점이 꼽힌다. 판교점 4층에는 A-LAND를 비롯해서 유니클로, H&M, ABC마트, 더페이스샵(The Face Shop) 등이 들어서 있다.

분당구 야탑동에 사는 오지영(29·여)씨는 “유니클로나 H&M, A-LAND는 백화점에 보기 힘든 브랜드다. 신촌이나 홍대 정도에 가야 큰 매장이 있고 그 외에는 롯데월드몰이나 가야 볼 수 있다. 그래서 일반 백화점이라고 하면 고등학생들이 올 리가 없는데 여기 4층에 가면 십대에서 20대 초반 친구들이 정말 많다. 카카오 프렌즈샵과 라인카페에도 많다”고 말했다.

A-LAND와 유니클로 매장에 가보니 친구들끼리 모여 구경하는 10대 청소년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A-LAND 매장 안에서 만난 김소정(17·여)양은 “사촌언니네 집에 들르면서 여기에 와봤다. 산 건 없지만 돌아다니는 게 재밌어서 벌써 두 시간 넘게 4층에만 있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 판교점 5층에 자리한 어린이 책 미술관에서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다. / 사진=시사비즈

 

4층 체험샵에서도 10대와 20대 초반 고객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워크스테이션 게임을 체험하는 팝업 스토어에서 만난 송현우(가명·20·남)씨는 “여기 오면 게임 체험도 하고 돌아다니기도 하면서 3~4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과거 백화점은 성인 고객들 지갑을 여는 데 마케팅의 초점을 맞췄다. 공간 그 자체보다 제품이 가진 성능과 매력을 어필하는 데 집중했다. 판교점은 한발 더 나아간다. 젊은 세대를 장기고객으로 만드는 전략을 펼친다. 마케팅의 초점은 제품이 아니라 백화점이 가진 콘텐츠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개장 전에 “차별화된 젊은 콘텐츠로 판교점을 채우자”며 신사업의 목표를 분명히 설정했다. 정 회장의 목표는 5층에서도 엿보인다. 5층에는 영화관 CGV와 어린이 책 미술관이 들어섰다. 그 사이로 다양한 카페와 프랜차이즈 식당들이 입점했다. 5층 식당의 메뉴가격은 높지 않았다. 1인분 기준 1만 원 이하 메뉴들이 다수였다. 커피는 인근 카페의 가격과 큰 차이가 없었다.

CGV 옆으로 이어진 5층 야외공간으로 나가니 회전목마가 보였다. 추운 날씨에도 회전목마를 타려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젊은 부부가 유독 많았다. 바로 옆에 어린이 책 미술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자가 방문한 시각에 미술관에서 색종이 접기 체험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8살 딸을 데리고 온 이다영(가명·45·여)씨는 “딸은 전에 아빠와 함께 와본 적이 있어서 2번 째 방문”이라며 “아이가 즐거워한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매장 구성은 평일 인근 직장인들에게도 인기다. 오지영(29·여)씨는 “주변에 판교 테크노밸리도 있고 네이버, 다음도 다 옮겨오면서 직장인들도 종종 볼 수 있다”고 전했다.

현대백화점 판교점 지하1층에 입점한 교보문고 / 사진=시사비즈

 

◇서점과 식품관으로 지하1층은 북적


지하 1층 교보문고에서는 데이트 나온 젊은 커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판교점 교보문고는 국내 대형서점 최초로 140석의 의자와 대형테이블을 설치했다. 대형테이블 옆에는 카페가 입점해 있었다. 언뜻 보면 서점보다는 북 카페의 분위기를 풍겼다.

대형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던 김재희(가명·28·남)씨는 “사실 교보문고 서현점이 훨씬 크기 때문에 더 많은 책을 구하려면 거기로 가는 게 낫다”면서도 “그런데 여기는 백화점에 놀러왔다가 잠시 쉴 겸 와서 책도 볼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역시 지하1층에 자리한 식품관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판교점 식품관은 1만3860㎡의 규모로 조성됐다. 큰 규모를 무색하게 할 만큼 많은 인파였다.

고객들이 가장 길게 늘어선 매장은 매그놀리아 베이커리와 삼진어묵, 신승반점이었다. 덴마크 대표 음료 체인점 ‘조앤더주스’도 빈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매그놀리아 베이커리에서는 컵케이크 하나를 사기위해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그럼에도 대기 행렬은 줄지 않았다.

다만 인기 매장과 그 외 매장의 영업 격차가 상당해 보였다. 신승반점 앞에는 스무 명 이상 고객들이 기다리는 데 반해 바로 옆 한정식 매장은 한산했다. 기자가 방문했을 당시 손님은 한 테이블에만 있었다.


현대백화점 판교점 지하1층 식품관에 입점한 삼진어묵 앞에 고객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 사진=시사비즈

 

◇주차문제 상당수 해결된 듯, 주차비 책정은 도마에 올라

개장 초기 제기됐던 교통정체 현상은 상당부분 해결된 것으로 보였다. 지난 12일 토요일 오후 2시에도 교통 체증은 없었다. 백화점 내부로 들어가는 차량도 대기 없이 내부 주차장에 진입했다. 

판교점 앞 사거리에 교통정리 봉사활동을 나온 택시기사 강도석(가명·55·남)씨는 “최근에는 교통정체가 별로 없다. 복잡하다고 소문나서 버스나 지하철 타고 오는 사람이 많아졌고 백화점 주차장이 가득차면 주변 공영주차장으로 향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차량을 갖고 온 고객들 사이에서는 주차비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오지영(29·여)씨는 “놀고 즐기는 문화공간이라고 마케팅 하는 판교점에서 주차비 정책은 일선 백화점과 같아서 아쉽다”라며 “CGV에 영화만 보러 와도 두 시간이 넘어가는데 주차비 할인은 두 시간 밖에 안 되니까 1시간은 굳이 백화점에서 뭐라도 사서 채워야 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김재희(가명·28·남)씨 역시 “교보문고나 CGV, 어린이 키즈 전시관 등 사용처에 따라 주차료를 할인해주는 서비스가 생겼으면 좋겠다”며 “백화점에 놀러 와서 물건은 사지 않고 이런저런 문화공간에만 있다가 돌아갈 때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때마다 주차비가 아까워서 공영주차장에 세워둔다”고 말했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한 공영주차장에서는 약 1200원으로 1시간을 주차할 수 있었다. 판교점 주차장의 절반도 안 되는 주차비다. 콘텐츠를 팔겠다는 정 회장의 일성과는 달리 주차비 책정방식은 제품만 팔던 시대의 백화점에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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