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질 높아질 것" VS "서비스 요금만 오를라"

 

SK텔레콤이 CJ헬로비전을 인수·합병하는 것을 두고 방송통신 업계에 논쟁이 일고 있다. SK텔레콤은 유튜브 매출 확대와 넷플릭스 한국 진출을 앞두고 국내 유료방송 업계가 몸집을 불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업계 경쟁자들은 초거대 방송통신 기업이 탄생하는 것에 대해 경계하고 있다.

일각에선 다른 시각으로 이 문제를 보고 있다. 업계가 아닌 소비자 입장에서 이번 인수 합병이 어떤 결과를 낳느냐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일부 소비자단체는 CJ헬로비전 인수를 우려의 눈으로 보고 있다. 소비자단체 관계자는 현재 지역 권역 별로 나눠진 방송 시장까지 독과점으로 굳어질 경우 이동통신 시장처럼 가계 부담이 늘어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업계 몸집 불리기와 미디어 플랫폼·콘텐츠 투자는 피할 수 없는 경향이란 의견도 나온다. 특히 콘텐츠 투자가 늘면 적자에 시달리던 방송 채널사용사업자(PP)나 외주 제작사도 발전 기회를 찾게 된다.

◇ 미디어 플랫폼·콘텐츠, 질 높일 수 있을까

PP업계 최강자인 CJ E&M은 2014년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방송 매출은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반비례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인기를 끌면서 올해 들어서야 영업이익이 흑자 전환했다.

적자는 콘텐츠 시장에 만연한 문제다. 콘텐츠 제작자들은 제작비를 제대로 회수하지 못하고 있다. 방송시장도 포화상태인데다가 콘텐츠 가격도 제작비에 걸맞게 책정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창조과학부가 발표한 ‘2014 방송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종합편성채널 등장에도 불구하고 방송광고 규모도 전년 대비 2.9% 감소했다.

대형 PP업체는 계열사인 유선방송사업자(SO)에 사실상 의존하고 있었다. SO는 PP콘텐츠를 좋은 번호 채널에 내보내고 콘텐츠 사용료를 지급한다. 이런 방송사업자를 MSP라 한다. 일종의 수직계열화다. 독립 PP는 매출 100억을 넘기 힘들 정도로 영세하다. 실제로 최근 화제가 된 유료방송 콘텐츠도 대부분 CJ E&M이 제작했다.

하지만 통신 업계가 IPTV라는 새 플랫폼을 내놓으면서 PP나 콘텐츠 제작사에 새로운 기회가 생겼다. 굳이 SO에 콘텐츠를 내보내지 않아도 또 다른 통로가 있기 때문이다. IPTV와 위성방송 도입이후 케이블 고객 1500만명이 케이블에서 이동했다.

PP협회는 최근까지 케이블 TV협회에서 독립을 시도한 적이 있다. 당시 PP협회 회원 90%가 이 안건에 대해 찬성했다. 11일 케이블 TV협회 송년회를 찾은 권영철 CBS기자는 “케이블 협회에서 SO와 PP 관계가 계속 갈 건지 우려가 많다”면서 “세상이 이렇게 급변하나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CJ그룹은 SO인 CJ헬로비전을 매각하면서 콘텐츠 사업에 더 집중할 계획을 세웠다. SK텔레콤과 500억 짜리 공동펀드도 두 개 조성한다.

SK텔레콤은 초고화질(UHD) 방송과 케이블 디지털 전환, 케이블 TV망을 기가네트워크로 고도화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즉 플랫폼 투자와 미디어 투자가 동시에 진행된다. 네트워크와 플랫폼이 발달하면 고화질 콘텐츠 수요도 생긴다.

이광훈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소비자 선택이 다양화하면서 이제는 공급자가 아닌 소비자 중심으로 시장이 변하고 있다”면서 “기업 역시 소비자 선택에 부응하기 위해 전통적 영역에만 머물러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 독과점 횡포 우려 높아져

일부 관계자들은 SK텔레콤이 CJ헬로비전 인수 후 시장에서 독과점 지위를 이용해 횡포를 부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기업이 방송 시장에 본격 진출하는 것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안진걸 참여연대 처장은 “SK텔레콤은 온가족 할인 제도를 일방적으로 폐지하는 등 이동통신 시장에서 시장 지배적 사업자 지위를 이용하고 있다”면서 “알뜰폰과 케이블 점유율까지 더한다면 방송통신 시장에서 독과점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기업이 방송시장까지 진출해 시장을 장악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고도 말했다.

이주홍 녹색소비자연대 국장은 지난 6월 방송통신 결합상품 논란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었다. 그는 당시 열린 토론회에서 소비자 입장에서 방송통신 묶음상품을 통해 방송, 인터넷 같은 서비스가 저렴하게 공급되는 것 자체에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국장은 SK텔레콤의 CJ인수에 대해 “인수합병이 되면 SK가 갖게 되는 알뜰폰(MVNO) 점유율이 40%로 커져 MNO(기간통신사업자, 기존 이동통신 사업) 시장처럼 고착화될 위험이 크다”면서 “알뜰폰 도입 취지가 중소업체를 시장에 진입시켜 경쟁을 활성화하는 것이었는데 이번 인수 건이 통과된다면 다시 시장이 대기업 위주로 재편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SK가 방송 플랫폼을 강화하고 CJ가 콘텐츠를 강화하는 시너지 효과도 중요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재판매로 피해를 볼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방송 상품 질이 개선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한 회의도 나온다. KT, LG유플러스 등 경쟁사와 시민단체는 대규모 투자를 한다는 계획 자체가 인수합병 결정이 나면 언제나 나오던 말이라고 주장한다. LG유플러스는 “SK텔레콤이 밝힌 5조원 투자 계획은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기존 투자액을 단순 합산한 것”이라고 밝혔다.

SK텔레콤 관계자와 CJ E&M 관계자는 콘텐츠 펀드가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 투입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고 답했다.

민보름 기자 dahl@sisa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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