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사내하청 임금 10% 삭감...조선 하청은 임금 50% 체불돼
적자 늪에 빠진 현대중공업 여파가 하청업체까지 번졌다. 지난달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부 하청업체 사장 수명이 “현대중공업이 공사대금을 깎아 하청노동자 임금삭감이 불가피하다”는 공고문을 붙였다가 3일 후 철거한 사실이 확인됐다.
취재 결과 11일에는 조선사업부 하청업체 9곳이 집단 휴업에 들어간 것으로 밝혀졌다. 사전 통보 없이 지난달 임금의 50%가 깎여나간 게 도화선이 됐다.
현대중공업은 이달 1일부터 ‘협력사 동반성장 공청회’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공청회 대상자가 사외 하청업체에 한정돼, 정작 사내 하청업체 기금 삭감에 대한 대책은 전무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예상된다.
◇ 현대重 “일단 작업하고 돈은 나중에 받아가라”
지난달 18일, 현대중공업에 시추 배관장비를 납품하는 협력사 입구에 공고문이 나붙었다.
협력사 대표명의의 공고문에는 “현대중공업 적자 여파로 하청이 받는 기성금(대금)이 줄어들고 있다. 이로 인해 도산하는 협력사가 늘고 있는 상황”이라며 “회사 생존을 위해 노동자 임금 10% 삭감이 불가피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배관 담당 하청 노동자들은 즉각 반발했다. 노동자들은 현대중공업이 배관 협력사 기성금을 일방적으로 깎은 행태가 전형적인 ‘적자 떠넘기기’라고 주장한다.
현대중공업은 관례상 작업 시작단계에서 돈을 주지 않고, 공정이 마무리된 뒤 기성금을 지급해왔다. 기성금은 원청 공사담당자들이 임의에 따라 조정할 수 있다. 즉, 하청 업체로서는 원청이 얼마를 지급해 줄지 모르는 상황에서 인력과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
그런데 하청업체가 지난달 상반기와 같은 기성금을 고려하고 공정을 끝낸 상황에서, 현대중공업이 긴축경영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대금을 낮춰 지급했다. 하청업체로서는 예상치 못한 적자가 쌓인 셈이다.
임금삭감이 결정된 배관 노동자는 “현대중공업 협력사 중 배관업체는 대표적인 고단가(高單價) 직군으로 꼽힌다. 그만큼 배관에 투입되는 인력과 자금이 많다는 뜻”이라며 “10을 받을 거라 생각하고 8을 투입했는데, 하루아침에 7을 주겠다고 하는 상황이다. 하청으로서 원청에 항의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 협력사 “본청이 돈 안주는데 별 수 있나”
노동자들이 반발하자 협력사 사장단은 게시 3일 만에 공고문을 철거했다. 배관 협력사 사장단은 임금삭감에 대한 동의를 구하기 위해 지난달 25일부터 노동자 서명을 받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협력사 관계자는 “당장 본청에서 주는 돈이 적어졌는데 임금을 유지한다면 작은 회사들은 도산할 수 있다”며 “우리라고 적게 주고 싶겠나. 하지만 본청에 항의할 시 작업 의뢰자체가 끊길 수 있다”고 토로했다.
하청 노동자들은 협력사 대표들이 3개월만 임금삭감을 인내하면, 그 뒤 임금을 복구시켜주겠다 회유하고 있다 밝혔다. 노동자들은 당장 한 푼이 아쉬운 상황에서 임금삭감을 거부할 수도 없는 처지라고 말한다.
배관 노동자들이 하나 둘 임금삭감에 동의하는 사이, 협력사 임금삭감은 배관을 넘어 전 분야로 번져가고 있다. 몇몇 협력사 대표들은 노동자 개인별로 임금 삭감률을 달리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 해양사업 하청의 임금 삭감은 이번 달부터 본격화 될 것으로 보인다. 12월 작업 분부터 임금 삭감을 단행할 시, 하청 노동자들에게는 내년 1월10일 10%가 줄어든 월급이 지급된다.
◇ 조선사업부 하청 상황 더 심각...월급 50% 체불
현대중공업은 조선, 해양플랜트, 엔진기계 등 각 사업의 구매담당 임원과 1차 협력사 대표 등 20여명이 지난 1일부터 16일까지 울산, 부산, 경주, 양산 등에 위치한 총 19개의 2차 협력회사를 방문해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있다.
이를 통해 1·2차 협력회사 간 거래 실태를 직접 확인하고, 2차 협력사 대표들로부터 자재 수주, 제작, 납품 등 거래 과정 문제점을 파악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공청회 대상 2차 협력사를 사외업체로 한정, 사내 하청업체와는 만남의 자리를 갖지 않고 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사내 하청업체와는 수시로 대화하기 때문에 따로 자리를 마련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그 사이 하청 임금삭감 문제는 집단 휴업사태로 번졌다.
11일 조선사업부 사내 협력사 9곳이 자체 휴업에 들어갔다. 원청의 기성삭감으로 하청노동자 월급의 50%가 사전 통보 없이 체불된 게 이유다.
월급을 체불한 협력사 사장들은 “현대중공업이 딱 그만큼의 작업수당을 지급해 어쩔 수 없다”며 하청 노동자들과 함께 항의 의미로 자진 휴업을 단행한다고 밝혔다.
이형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사무장은 “공사대금문제는 근래 발생한 일이 아니다. 현대중공업이 문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말이 안 된다”며 “현대중공업이 사내 하청 임금문제를 외면한다면 원청의 계획적인 하청 구조조정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