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합병부터 주파수 경매까지, 조 단위는 기본
이동통신 업계에 조 단위 투자가 필수가 되고 있다. 이동통신망 투자부터 미디어 플랫폼으로 변신하려는 노력에도 천문학적인 투자 금액이 필요하다. 투자에 나서지 못하는 업체들은 경쟁에서 뒤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SK텔레콤이 CJ헬로비전 인수에 나서면서 신호탄을 쐈다. 지난 4월 장동현 SK텔레콤 사장이 미디어 플랫폼으로 변신하겠다는 선언을 한 뒤에 생긴 일이다.
그밖에 2.1기가헤르츠(GHerz) 대역 주파수, 제 4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도 결국 투자금이 결정한다. 주파수 경매와 새 이동통신사 설립에는 조 단위 금액이 투입돼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동통신 업계 강자가 대규모 투자에 나서면서 경쟁사들은 위기를 느끼고 있다. 업계에 ‘빈익빈 부익부’가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자금력을 갖춘 SK텔레콤 등 대형 이동통신 업체에 대응해야 하는 미디어 업계 전망은 어둡다.
◇ 이동통신 업계, M&A·주파수 경매는 돈 잔치
SK텔레콤이 CJ오쇼핑 보유 CJ헬로비전 지분 전부를 사들일 경우 약 9000억원이 든다. SK텔레콤은 CJ와 공동으로 1000억원 대 콘텐츠 투자 펀드도 조성하기로 했다. 1조원 이상 투자금이 들어가는 셈이다.
이동통신 업계 또 다른 이슈는 주파수 경매다. 미래창조과학부는 2016년 상반기 2.1GHerz대역 20메가헤르츠(MHerz) 주파수 경매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주파수 경매에 걸린 돈 규모는 더 크다.
업계에선 비슷한 폭 주파수가 1조원 대에 거래된 것을 감안하면 최종 낙찰 금액이 2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대역 주파수는 기존 LTE 망과 연계해 광대역 LTE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활용도가 높다.
가격이 더욱 오른다고 예상되는 이유는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가 양보할 수 없는 경쟁에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경매에 나올 주파수는 SK텔레콤이 보유하다 사용기간이 만료된 대역폭이다.
2.1기가 대역에서 SK텔레콤이 60MHz, KT가 40MHz, LG유플러스는 20MHz를 사용하고 있다. SK텔레콤은 60MHz 중 20MHz를 되찾으려 한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사용자 수에 균등하게 주파수를 배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점유율 약 50%를 차지하고 있는 SK텔레콤 사용자가 많음으로 그만큼 많은 주파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LG유플러스는 타사에 비해 부족한 20MHz를 추가확보하려 하고 있다.
통신 기술이 발달하고 5세대 통신망으로 전환이 다가오면서 황금 주파수를 차지하려는 경쟁은 심화할 전망이다.
제 4 이동통신 선정도 자금력이 가름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한 이동통신 업계 관계자는 “골목마다 이동통신 대리점이 있는 상황에서 유통망을 갖추는 데만 수조원이 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 경계하는 KT·LGU+, 떠는 케이블 업계
SK텔레콤이 CJ헬로비전을 인수한다고 발표하면서 경쟁사들은 즉시 대응에 나섰다. KT와 LG유플러스는 각각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동통신 업계 점유율 1위 SK텔레콤이 알뜰폰 업계 점유율 1위 CJ헬로비전을 인수해 이동통신 시장 장악력을 높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SK텔레콤이 시장 장악력을 바탕으로 방송, 인터넷 등 유선 서비스 결합상품으로 소비자를 락인(Lock-In, 가둬두는 효과)하는 전략을 쓸 거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현재 SK텔레콤의 결합상품 점유율은 낮지만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규제 당국에서 이번 인수합병 건을 인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현행법 상 인수합병을 막을 조항이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선 서비스 1위 사업자인 KT와 양강 체제를 구축하게 되는 셈이다.
가장 위협을 느끼는 이동통신사는 LG유플러스다. LG유플러스는 IPTV사업을 성공으로 이끌면서 야심차게 신사업을 개척했다. 하지만 SK텔레콤이 케이블 1위 사업자를 인수합병하면서 유료방송 시장 지배력을 강화했다. LG유플러스는 여러 방면에서 SK텔레콤과 부딪히게 됐다.
시장에선 LG유플러스가 종합유선방송사(MSO)인 씨앤엠(C&M)을 인수하게 되리라는 소문이 돌았다. C&M은 케이블 업계 점유율 3위 업체다. 하지만 수도권 중심 지역을 권역으로 두고 있어 영향력이 크다.
하지만 시장에 퍼진 C&M인수가는 2조원 정도다. 이는 CJ헬로비전 지분 가격의 두 배 수준이다. LG유플러스 2014년 영업이익은 5763억원이었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C&M 가격이 1조원 대가 되지 않으면 LG유플러스가 인수에 나서지 못할 것”이라면서 “BMK파트너스가 C&M을 인수할 당시부터 가격이 높았기 때문에 본전 생각을 하면 가격을 낮출 수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케이블 업계도 위기감을 표현하고 있다. 케이블 시장은 인수건 이전에도 이동통신 업체들이 방송사업에 진출하면서 하향세를 보이고 있었다.
한 케이블 업계 관계자는 “케이블 서비스의 취지는 지역 특성을 유지하자는 것인데 전국 사업자인 SK텔레콤이 CJ헬로비전을 인수하는 건 여기 맞지 않다”면서 “규모가 큰 이동통신사가 통신 사업으로 번 돈을 시드머니로 방송사업에 진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SK텔레콤은 2일 미디어 사업에 5조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당장 케이블 업계는 이에 대응할만한 마땅한 투자 계획을 밝히지는 못하고 있다. 기존 이동통신 1위 업체와 케이블 1위 업체 매출만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현재 이동통신 업계에 이를 견제할 새 경쟁자가 등장하기도 어렵다. 정부는 과점 상태인 통신 시장에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제 4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선정 업체가 주파수 할당을 받기 위해 내는 돈만 1000억원이 넘는다.
한 통신 업계 전문가는 “이동통신 기술이 발달하면서 투자해야 하는 돈도 늘었다”면서 “이제 4세대를 넘어 5세대 통신으로 넘어가는 시기인데 지금 사업에 뛰어들어서 경쟁력을 갖추기가 힘들다”라고 말했다.
민보름 기자 dahl@sisa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