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줄이 발 묶인 쟁점 현안…정의화 의장 "효율적 국회운영 방안 마련해야"
임시국회 첫 날인 10일 오전 11시. 의원 집무실 300여 곳이 모여있는 의원회관은 조용했다. 여느 때 같으면 복도에서 의원들과 마주쳐 인사를 나눌법 한데 이 날은 달랐다. 대부분의 의원실은 문을 굳게 닫고 있었다.
불이 켜져 있는 A 의원실을 찾았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비서 한 명이 무슨 일로 찾았느냐며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신분을 밝히고 의원이나 보좌관을 찾자 "의원은 어제 본회의 끝나고 곧바로 지역구로 내려가셨다"며 "보좌진도 저 빼고 당분간 전부 지역 사무실로 출근한다"고 말했다.
12월 임시국회가 10일부터 곧바로 소집됐지만 첫 날부터 개점휴업 상태다. 여야가 의사일정에 합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달 잡아놨던 문상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만 진행됐다. 정기국회에서 낙제점을 받은 여야 지도부는 이날까지도 서로 네탓 공방만 벌이며 협상 테이블조차 만들지 못했다.
임시국회를 단독으로 소집한 새누리당은 전날까지 진행된 정기국회에서 쟁점 법안들을 처리하지 못한데 대해 야당의 책임론을 제기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법안은) 인질도, 협상과 흥정의 대상도, 전리품도 아니다"라면서 "법안 처리의 기준은 오로지 국민과 국가의 도움이 되는지 여부가 돼야 하는데 현재 야당은 법안의 알맹이와는 무관하게 대통령의 관심 법안이라는 이유만으로 반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원유철 원내대표도 "야당이 지난주 국민 앞에서 내놓은 합의문을 휴지 조각처럼 구겨버리고, (야당의) 막무가내식 모르쇠 태도와 판깨기 행태로 인해 끝내 시급한 법안 처리가 무산됐다"고 지적했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청와대 책임론으로 맞불을 놓으며 의사일정에 협조할 뜻이 없다고 밝혔다. 이종걸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이날 정책조정회의에서 "국회는 청와대 말씀을 열심히 받아쓰는 자만 생존하는 국무회의나 청와대 비서관회의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前) 원내대표 때부터 날짜를 박아 처리하기로 한 법부터 합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임위별 청문회 개최에 대한 내용을 담은 국회법,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기한 연장을 위한 세월호 특별법 등부터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춘석 원내수석부대표도 청와대를 향해 "자신들의 뜻대로 되면 '민생국회'고 안 되면 '무능국회'라는 것은 심히 유감스럽다"고 밝힌 뒤 "사회적 합의 없는 노동관련법은 통과시킬 수 없다. 국민이 반대하는 법안 통과는 절대 없다"고 강조했다.
임시국회 대응 방식을 위임받은 이종걸 원내대표는 여당의 일방적인 임시국회 소집을 문제삼으며 의사일정 협의를 거부하고 있다.
여야의 평행선 대치가 정기국회에 이어 임시국회에서도 이어지면서 쟁점 현안에 대한 논의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야가 정기국회 안에 합의한 후 처리하기로 했다가 못한 법안은 총 6개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서비스법), 기업활력제고특별법(원샷법), 사회적경제기본법, 대·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법, 테러방지법, 북한인권법 등이다.
서비스법은 의료민영화를 우려해 보건·의료 분야를 제외하는 문제를 놓고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원샷법은 대기업 재벌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상속 등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때문에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 대·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법 역시 소관 상임위인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서 심의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한 노동관련 5개 법안은 정국의 '뇌관' 수준이다. 야당은 '파견근로자 보호법(파견법)', '기간제·단시간 근로자 보호법(기간제법)'에 대해선 절대 불가 방침을 세웠다.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악법'이라고 규정한 셈이다. 나머지 근로기준법과 고용보험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등 3개 법안만 따로 떼어 처리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새누리당은 5개 노동법을 함께 처리해야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이날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여야가 합의 처리하기로 한 쟁점 법안들도 상식과 합리를 바탕으로 충분히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각 당의 '이념의 덫'과 '불신의 벽'에 가로막히고 말았다"며 "국회의 생산적 기능이 지금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하루빨리 국회선진화법의 보완을 서두르고 예측 가능한 국회, 효율적 국회 운영을 위한 개혁방안들을 처리해야 한다"며 "이번 임시국회를 통해 밀린 숙제를 모두 정리하고 국민의 걱정을 덜어드리는 연말이 되길 의장으로서 간곡히 호소한다"고 말했다.
이민우 기자 w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