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ET "일본 정부 조선사 간 구조조정 통해 시너지 극대화"

 

일본 야구대표팀은 ‘사무라이 재팬’으로 불린다. 일본 국민들이 지어준 애칭이다. 무사처럼 강한 승부욕으로 세계를 제패하라는 의미를 담았다.

일본 국민에게 사무라이는 곧 자부심이다. ‘굴복하지 않는다’는 사무라이 정신은 야구를 넘어 정보통신(IT), 자동차 등 열도 전 산업군에 걸쳐 붙는 단골 좌우명이 됐다.

사무라이가 거세된 단 하나의 산업군이 있다면 조선·해양이다. 일본 도요타와 소니 등이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선 반면, 조선에서 일본 기업은 이류에 가깝다.

이에 일본 정부는 바다 위 사무라이 재팬을 목표로, 조선 산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단기적 목표로 한국과 중국을 넘어 동아시아 조선패권 장악을 노린다. 이를 위해 일본 정부는 조선소 인수합병(M&A)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 기술은 한국, 값은 중국에 밀려...기댈 곳은 ‘엔저’ 뿐

세계적인 조선 불황 여파를 피해갈 국가는 없었다. 잘 나가던 한국 조선 경기마저 얼렸고, 여파는 중국까지 미쳤다.

일본 열도도 마찬가지였다. 지난달 조선·해양전문 시장조사기관 클락슨 리서치가 발표한 올 1~10월 동아시아권 누계 수주실적에서 일본은 654만CGT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한국은 979만CGT, 중국이 704만CGT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초라한 실적이다.

지난해 일본의 조선 수주잔량 구성은 ▲벌크선 54.0% ▲컨테이너선 8.9% ▲탱커 12.0% ▲LNG선 10.5% 였다.

수주잔량의 60%를 넘는 벌크선과 컨테이너선 등 범용 선박 부문에서는 중국조선소 저가 공세에 맥을 못 추고 있다.

이 밖에 플랜트 등 해양부문에서는 한국 조선소 기술력을 따라가지 못한다. 조선업체 명성이나 발주사 신뢰도 측면에서도 한국 보다 열세다.

그래프 = 시사비즈

 

일본 조선산업이 기댈 곳은 ‘엔저(円低)’ 뿐이다. 엔화 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한 2013년부터 일본 조선업체 수주량은 2012년 대비 급증했다.

국내 중공업사 업계 관계자는 “엔저는 조선을 포함한 일본 전 산업의 가격경쟁력을 끌어올렸다”며 “한국 조선소가 기술력에서는 최고 수준이지만 일본이나 중국 조선소 저가 수주에 맞서려면 출혈 경쟁을 감내해야 한다”고 밝혔다.

◇ “조선사 헤쳐 모여”...정부 주도 M&A 활발

일본 아베 정부가 엔저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환율은 유동적이다. 일본 정부 역시 ‘환율 꼼수’ 대신 조선소 기초 체력을 키우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일본 조선해양산업 지원 정책을 담당하는 부서는 MLIT(Ministry of Land, Infrastructure, Transport and Tourism) 산하의 조선산업 정책 위원회다.

2011년 위원회는 ‘New Comprehensive Policy on the Shipbuilding Industry’라는 조선해양산업 정책지원계획을 발표한다.

계획은 ▲해외진출 확대 제안 ▲선박펀드 설립 제안 ▲설계역량 강화 ▲유지보수 기능 보유 ▲다양한 네트워크 구축 ▲기술 전문인력 양성을 골자로 한다. 이를 통해 조선소 및 기자재업체의 외환 리스크 및 매출을 전략적으로 관리한다.

도표 = 시사비즈

 

일본 정부는 30여 년 전부터 조선사 구조조정과 M&A에 주력하고 있다. 86년부터 88년 사이 정부주도의 구조조정을 단행해 21개 조선 그룹을 8개 그룹으로 재편했다.

2000년 이후에는 히다치조선과 일본강관을 통합해 유니버설(Universal) 조선을 출범시켰고 가와사키중공업 조선부문을 분사해 가와사키 조선을 탄생시켰다. IHI와 스미토모중기계는 통합해 IHIMU(IHI Marine United)사라는 대형조선사로 거듭난다.

2013년에는 유니버설 조선과 IHIMU가 합병하며 재팬마린유나이티드(JMU)가 출범한다. 여기에 주요 금융기관이 최대 주주로 참여하며 탄탄한 자금 실탄도 확보하게 된다.

일본 조선업이 중국과 한국에 밀려 빛을 보고 있지 못하지만, 특유의 유연한 지배구조와 정부주도의 M&A는 장기적으로 한국 조선산업의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홍성인 KIET 연구위원은 “일본 정부는 조선해양산업을 성장과 고용에 기여하는 산업으로 규정하고 정책지원의 당위성을 확립했다”며 “일본 조선사 간 활발한 M&A와 공동투자는 과잉설비 대응을 위한 설비조정이 아니다. 이 보다는 업체 간 시너지를 노린 전략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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