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는 쓸 돈을 미리 계산해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는 공약 가계부의 핵심이기도 하다.
박근혜 정부는 세입을 확충하고 허리띠를 졸라 매는 세출 구조조정을 통해 5년간 135조원을 준비할 방침이었다. 이 계획은 2년 반 동안 지켜지지 않았다. 정부가 “증세는 없다”며 꿈쩍도 않는 동안 나라 살림은 악화됐다.
◇ '비과세·감면 정비' 18조원 확충 계획 물거품
공약가계부엔 비과세·감면 제도를 정비해 세수를 확충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일몰(적용시한 만료)이 도래하면 원칙적으로 종료하되, 필요한 경우 재설계 후 도입하는 원칙으로 세법을 개정해 5년간 18조원의 재원을 조달하기로 했다. 정부 방안이 계획대로 되려면 연간 3조9000억원가량 비과세 감면 혜택을 줄여야 가능하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지난 11일 국회에 '2016년도 조세지출예산서'를 제출하며 올해 국세감면액을 35조6656억원으로 추산했다. 올해 국세감면액을 33조548억원으로 전망했던 것과 비교하면 2조6000억원 이상 늘어난 것이다. 지난해 국세감면액은 당초 33조원 수준으로 예상했지만 결국 34조3383억원의 세금을 깎아줬다. 임기 첫 해인 2013년의 국세감면액 33조8350억원보다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사실상 공약가계부의 18조원 세수 확충 방안은 사라진 셈이다.
오히려 박근혜 정부가 지난 3년 동안 신설한 비과세·감면 항목은 22개에 달한다. 이에 따른 연간 세수 감소액이 4000억원에 육박했다. 지난해 세법 심사 과정에서도 비과세·감면 제도 가운데 19개가 폐지됐지만 신설된 것도 15개에 달했다. 2013년에도 비과세·감면 신설(6개)이 폐지(7개) 못지 않았다.
기획재정부는 경기 회복 지연과 글로벌 경제 성장 둔화 흐름 속에서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투자와 고용 촉진을 위한 '경제활성화'와 늘어나는 재정요구를 감당하기 위한 '세수확충'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 세출 절감? 오히려 늘었다
'돈 먹는 하마'로 비교되는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대폭 줄이겠다는 약속도 '공약(空約)'에 불과했다. 5년간 세출을 84조1000억원 줄이겠다는 방안도 엉망이 됐다. SOC나 산업, 농업 분야 예산을 줄여보겠다는 계획이었다.
결과는 정반대다. 현재 정부가 공약 가계부 이행 실태와 관련된 상세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있어 확인되는 분야는 사회간접자본(SOC)·산업·농림 예산 등 세 곳이다. 특히 SOC 예산의 경우 당초 공약가계부상 올해 2조7000억원이 줄어들어야했지만 오히려 1조1000억원 늘었다.
내년도 예산안에서도 SOC 예산은 줄지 않았다. 표면적으로 올해보다 6%나 줄었지만 추경으로 미리 지출한 예산을 합할 경우 올해와 비슷한 수준이다. 정부는 내년에 써야 할 SOC 예산을 올해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미리 가져다 썼다. 도로의 경우 몇 년에 걸쳐 공사가 진행되는데 내년에 집행될 예산을 올해 미리 풀었다는 얘기다. 공사 작업 속도에는 한계가 있으니 내년도 예산안과 마찬가지다. 방문규 기획재정부 제2차관도 “내년 SOC 예산안에 올해 추경 예산을 더하면 올해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공약가계부 설계에 핵심적으로 참여했던 한 여권 인사는 “공약가계부의 최대 핵심은 세출 구조조정이었다”며 “임기 첫 해부터 과감히 추진하지 못하다보니 공무원들의 '철옹성'을 뚫는 데 실패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