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질문에 뻔한 답변...재벌 총수에 대한 정치인 한계 보여줘
17일 오후 1시50분. 국회 본관 앞에 수십여 명의 취재진이 몰려있는 가운데 짙은 회색 계열 정장에 보라색 타이를 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들어섰다. 일반 방문자와 마찬가지로 신분증을 내고 출입증을 받은 신 회장은 다소 긴장한 듯한 표정으로 국정감사장에 들어섰다.
이날 공정거래위원회 국감에 나온 신 회장은 선서 이후 다소 여유를 되찾았다. 시종일관 차분한 표정으로 의원들의 질의를 경청하는 모습을 보였다. 광윤사, 롯데홀딩스 등의 지분 공개를 요구하는 질문에 적극적으로 답변했다. 김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순환출자 구조 해소를 확실히 약속할 수 있느냐”고 묻자 그는 “롯데제과의 지분을 개인적으로 인수했고 TF팀도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의원들의 ‘왕자의 난’ 재발 우려에 신회장은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일축했다. 김태환 새누리당 의원은 국민 앞에 다시 한번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신 회장은 곧바로 자리에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한일 축구전 때 누구를 응원하냐는 질문엔 큰 웃음을 짓기도 했다. 신 회장은 우리말 발음이 다소 어색했지만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다.
재벌 총수를 대하는 의원들의 태도는 부드러웠다. 국감 때 늘 봐왔던 호통과 고성은 없었다. 신학용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신 회장이 “사회적 이익을 위해 공존해야 기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자 “고맙다”고 까지 했다. 일부 야당 의원들이 일감몰아주기와 자녀들의 국적 문제를 따지기도 했지만 통과의례 쯤으로 여겨졌다.
신 회장의 국감을 지켜본 야당의 한 보좌관은 “의원들이 국민의 우려를 충분히 전달했고, 신 회장도 적극적인 개선 의지를 보여 만족스럽다”며 “롯데그룹 입장에서도 국민의 의혹을 불식시키는 데 일조했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재계 관계자도 “ 예상 가능한 질문이 많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맥 빠진 질문을 할 거면 뭐 하러 신동빈 회장을 불렀냐는 비판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면죄부를 주려고 신 회장을 부른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재벌 총수에 대한 정치인들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줬다는 지적도 있다.
한편 국감이 진행되는 동안 국회 정문 앞에선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위한 전국네트워크와 재벌복합쇼핑몰.아울렛 출점저지전국비대위 상인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롯데그룹 개혁과 지역복합쇼핑몰 철수를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