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e=문지숙 차의과학대학교 바이오공학과 교수] 젊은 피의 효능이 알려지자, 이를 인류의 회춘 기술로 발전시키려는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관련 바이오 스타트업들이 등장하여 과감한 연구 투자를 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하버드대·스탠퍼드대 연구자들이 공동 설립한Elevian(엘레비안)은 젊은 혈액의 GDF11 단백질을 기반으로 한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이 회사는 현재까지 약 5800만 달러(한화 700억 원 상당)의 투자를 유치했고, 뇌졸중 후유증 치료를 위한 GDF11 단백질 치료로 임상시험에 돌입할 계획이다. 또 다른 스타트업Alkahest(알카헤스트)는 스탠퍼드대 토니 위스-코레이 교수의 연구를 바탕으로 설립되어, 인간 혈장의 항노화 성분을 분석·응용하고 있다. 알카헤스트는 노화에 따라 증감하는 혈중 단백질들을 “크로노카인(chronokine)”이라고 명명하고, 혈장에서 면역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요소를 제거한 GRF6019, GRF6021 등의 혈장 유래 치료제를 개발했다. 이 치료제를 알츠하이머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2상까지 시험한 결과, 치매의 진행이 일시적으로 멈추는 고무적 관찰을 했지만 통계적으로 유의한 개선은 얻지 못했다. 비록 결정적 성과는 아니었지만 6개월간 인지기능이 더 악화되지 않았다는 점은 희망을 주었고, 알카헤스트의 기술력은 인정받아 2020년 스페인 제약사 그리폴스(Grifols)에 1억 4600만 달러(약 1,900억 원)에 인수되었다. 이는 세계 혈액제제 기업까지도 젊은 피 연구에 뛰어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한편, 윤리와 과학의 경계를 넘나든 사례로 Ambrosia(앰브로시아)라는 스타트업도 화제가 되었다. 이 회사는 35세 이상의 고객에게 10~20대 건강한 청년의 혈장 1리터를 8천 달러에 수혈해주는 파격적인 서비스를 시작했다. 일각 부유층 노인들이 돈으로 젊은이의 피를 산다는 점에서 커다란 윤리 논란이 일었고, 결국 미 FDA는 2019년 “젊은 사람의 혈장 수혈이 검증된 임상 이득도 없고 안전성도 불분명하다”는 공식 경고를 내리고 서비스를 중단시켰다. 실제로 과학계에서도 이런 즉흥적 상업화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가 컸다. 스탠퍼드의 위스-코레이 교수도 “증거 없이 노인에게 젊은 피를 파는 것은 사람들의 신뢰를 악용하는 행위”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젊은 피의 매력은 실리콘밸리 억만장자들도 사로잡았다. IT 기업인 출신 브라이언 존슨은 자신의 회춘 프로젝트에 매년 200만 달러 이상을 쓰는 것으로 유명한데, 최근 그는 3대에 걸친 혈액 교환 실험을 감행했다. 45세인 자신은 17세 아들의 혈장을, 70세인 아버지는 자기(45세)의 혈장을 서로 수혈하여 할아버지-아들-손자 세대가 피를 나눠 갖는 파격적인 시도였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브라이언 본인은 아들의 젊은 피를 받고 “뚜렷한 효과를 느끼지 못했다”고 했지만, 오히려 자신의 피를 받은 70세 아버지의 생물학적 나이가 25년이나 젊어졌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는 그의 자가측정에 따른 주장일 뿐이고, 사용된 바이오마커 한두 개만 개선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무엇이 어떻게 개선되었는지 검증되진 않았지만, 이 이야기는 노화에 맞선 인간의 열망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제대혈: 가장 ‘젊은 피’의 잠재력
앞서 언급한 젊은 피 중에서도 가장 젊은 피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제대혈(탯줄 혈액)이다. 아기가 태어날 때 탯줄에서 채취하는 피로, 풍부한 조혈모세포와 중간엽줄기세포 등 여러 줄기세포가 들어있어 재생의학적으로 가치가 높다. 많은 산모들이 출산 후 미래에 있을지 모를 질병 치료를 대비해 제대혈은행에 아기의 제대혈을 보관하는데, 이렇게 냉동 보관된 제대혈은 필요 시 해동하여 치료에 사용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제대혈을 노인성 질환 치료나 노화 억제에 활용할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2017년 미국 연구에서는 인간 제대혈 혈장을 늙은 쥐에 주입하여 기억력과 학습능력을 향상시켰고, 그 혈장 속 TIMP2 단백질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Nature에 발표했다. 스탠퍼드대 카스텔라노 박사 팀이 진행한 이 실험에서, 제대혈을 맞은 늙은 쥐들은 미로 찾기 능력이 크게 개선되고 뇌 기능, 근육, 뼈 건강 지표까지 전반적으로 향상되었다. 연구진은 수천 가지 혈장 단백질 중 TIMP2라는 단백질 하나가 이런 회춘 효과에 핵심적임을 밝혀냈는데, 아직 그 기작은 명확히 모른다고 한다. 이 발견은 제대혈 속 특정 인자만으로도 노화된 생체 기능을 되살릴 수 있음을 시사하며, 알츠하이머 등 퇴행성 뇌질환 치료로서도 큰 잠재력을 보였다.
필자가 몸담은 연구실에서도 제대혈의 항노화 효과를 확인하기 위한 동물실험과 초기 임상 연구를 진행했다. 자연 노화시킨 쥐들에게 제대혈 유래 세포와 혈장을 투여하자, 인지 기능, 운동 능력, 기억력이 식염수 투여 대조군보다 향상되는 결과를 얻었다. 노화로 인한 만성 염증 수치가 낮아지고 항산화 효소 활성이 증가하는 등, 젊은 피가 노화 환경을 개선한다는 생물학적 단서를 발견한 것이다. 다만 아주 늙은 쥐(노령이 심한 경우)에서는 제대혈의 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음도 관찰되었다. 이는 항노화 개입에도 적절한 타이밍이 있음을 시사한다. 지나치게 진행된 노화는 되돌리기 어려울 수 있으므로, 인간에게도 너무 늦기 전에 건강 관리를 시작하고 필요한 경우 젊은 세포 치료 등을 받는 예방적 접근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금까지의 연구들은 노화라는 자연현상을 완전히 막을 순 없지만, 올바른 조치와 시기를 통해 노화 속도를 늦추고 생물학적 나이를 젊게 유지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세포밖소포(엑소좀): 젊은 피의 효과를 전달하는 신기술
최근 들어 과학자들은 ‘젊음의 인자(Youth Factors)’를 전달하는 핵심 매개체로 혈장(plasma)과 혈소판(platelet) 유래 엑소좀(Exosome)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젊은 피의 회춘 효과는 혈액 속 단백질이나 호르몬 때문이라고 여겨졌지만, 이제는 세포들이 주고받는 미세한 소포, 즉 세포밖소포(Extracellular Vesicle; EV)가 이러한 신호를 전달하는 진짜 메신저일 수 있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엑소좀은 세포가 분비하는 지름 200나노미터(1억분의 1미터) 이하의 초미세 소낭으로, 그 안에는 단백질, 유전물질(RNA), 마이크로RNA(miRNA) 등 부모 세포의 정보와 신호가 고농도로 담겨 있다. 즉, 세포가 스스로의 상태를 주변 세포에 알리거나, 손상된 조직의 회복을 유도하기 위해 보내는 생물학적 신호 패킷(biological signaling packet)이라 할 수 있다. 젊은 혈액 속 엑소좀은 이런 신호를 통해 재생과 회복을 유도하는 인자들을 전달하며, 단순한 단백질 주입보다 훨씬 정교하고 지속적인 회춘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치료 패러다임으로 부상하고 있다. 즉, 세포들이 엑소좀을 통해 서로 대화하고, 젊은 세포가 보내는 엑소좀은 주변의 노화된 세포들에게 “회복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셈이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엑소좀은 ‘세포를 이식하지 않는 세포치료제’로 불릴 만큼 주목받고 있다. 젊은 세포나 줄기세포에서 얻은 엑소좀을 환자에게 주입하면, 마치 줄기세포를 직접 이식한 것처럼 조직 재생과 항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제대혈 산업과 항노화 시장도 이러한 연구 발전에 힘입어 성장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제대혈 은행이 늘어나고 이용자가 증가하면서, 글로벌 제대혈 보관 시장 규모는 2025년 약 33억 달러에서 2034년 58억 달러 이상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 노화 방지 바이오 산업은 IT 거대자본까지 속속 뛰어들어 투자 경쟁이 치열하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가 투자한 Altos Labs, 구글이 설립한 Calico처럼 수십억 달러 규모의 longevity 기업이 나타났고, 국내외 투자자들도 고령화 시대의 거대 시장으로 항노화 기술을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Elevian, Alkahest 등 스타트업들은 상당한 투자를 이끌어냈고, 기술이 성숙하면 노화 관련 질병(치매, 파킨슨병, 심장질환 등)을 늦추거나 치료하는 혁신 신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이러한 항노화 치료의 임상 적용까지는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안전성 검증, 윤리적 문제, 대량 공급 및 비용 등의 현실적 한계를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과학적 토대는 차곡차곡 쌓이고 있으며, 정부 지원과 국제 협력을 통해 머잖아 “회춘의 묘약”이 상용화될 날도 꿈은 아니다.
건강한 젊음을 유지하는 생활습관
궁극적으로 노화를 지연시키는 열쇠는 우리 스스로의 손에도 쥐어져 있다. 최첨단 의학 발전을 기다리는 동안, 일상에서 젊은 피의 효과를 높이는 방법들도 실천할 수 있다:
•고강도 인터벌 운동(HIIT): 짧은 시간 전력 질주 후 휴식을 반복하는 고강도 인터벌 운동은 성장호르몬 분비를 촉진하고 근육 및 세포 재생을 돕는다. 주 3~4회, 20~30분씩 꾸준히 해보자.
•단백질 충분 섭취: 단백질은 근육과 조직 재생의 재료이다. 달걀, 생선, 살코기, 콩 등 양질의 단백질을 꾸준히 섭취하면 IGF-1 등의 성장인자 분비를 도울 수 있다(성인 기준 체중 1kg당 1.2~1.6g 권장).
•숙면 취하기: 수면 중에는 성장호르몬과 각종 회복 인자가 분비된다. 하루 7~9시간 양질의 수면을 취해 몸의 회복을 최적화하자. 수면 패턴을 규칙적으로 유지하고, 취침 전 전자기기 사용을 피해 숙면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좋다.
•간헐적 단식: 16시간 공복, 8시간 식사 형태의 간헐적 단식은 세포의 자가포식(autophagy)을 촉진해, 손상된 세포를 제거하고 새로운 세포 성장을 유도한다. 주 1~2회 간헐적 단식을 시도해 볼 만 하다.
•요가 및 스트레칭: 가벼운 요가나 스트레칭은 혈액순환을 개선하고 성장인자의 신체 전달을 원활하게 한다. 매일 15~30분씩 몸을 유연하게 움직여주면 근육·관절 건강과 혈류 개선에 도움이 된다.
•충분한 수분 공급: 수분은 세포 기능 유지에 필수다. 하루 2리터 내외의 물을 마셔 세포가 최상의 상태로 일하도록 돕고, 노폐물 배출을 원활하게 하자. 달거나 카페인 많은 음료보다는 물, 허브차, 탄산수 등이 좋다.
•비타민·미네랄 섭취: 비타민 D, 비타민 C, 아연, 마그네슘 등은 면역과 회복에 중요한 영양소다. 결핍되지 않도록 식단을 챙기고, 필요시 보충제를 활용하자. 항산화 비타민은 노화 속도를 늦추는 데도 도움을 준다.
•사회적 교류 활동: 가족, 친구와 어울리는 사회 활동은 스트레스를 줄이고 정신 건강을 지켜준다. 이는 곧 신체의 염증 수치를 낮추고 유익한 호르몬 분비를 촉진해 간접적인 회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규칙적인 모임이나 취미 활동을 유지해 보자.
•명상과 마음관리: 마인드풀니스 명상 등 마음챙김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줄이고 자율신경계를 안정시켜 몸의 회복 모드에 기여한다. 하루 10분씩 눈을 감고 심호흡하며 마음의 평정을 찾는 습관이 도움이 된다.
•정기 검진과 전문가 상담: 무엇보다 자신의 건강 상태를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필요하다면 노화방지 클리닉 등의 전문가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전문의와 상담을 통해 개인 맞춤형 영양, 호르몬 치료 등을 고려해볼 수도 있다.
이러한 생활습관들은 젊은 혈액의 이점을 최대한 살리고 우리 몸의 자가 회복력을 높여준다. 물론 앞서 살펴본 젊은 피와 줄기세포 연구가 인류의 수명 연장과 건강 수명 개선에 혁신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지만, 그 은혜를 최대로 누리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노력과 예방적 관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노화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이지만, 과학과 현명한 습관을 무기로 삼는다면 우리는 훨씬 건강하고 활력 있는 황혼기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회춘의 묘약”이 현실이 되는 그 날까지, 꾸준한 관리와 열린 마음으로 건강 혁명을 준비해보면 어떨까?
문지숙 차의과학대학교 바이오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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