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뀌면 집도 함께 달라진다. 꽃이 피고 지는 리듬에 맞춰 살아가는, 플로리스트 고연수 씨의 집을 만났다.
계절이 머무는 집
도시 한복판에서 식물과 빛을 가장 가까이 느낄 수 있는 집. 플로리스트 고연수 씨의 집은 사계절 내내 꽃이 피어 있는 작은 아틀리에다. 거실 창 너머로 펼쳐진 울창한 나무들이 계절의 변화를 들여오고, 햇빛이 풍부하게 집 안 깊숙이 스며들어 식물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집에서 식물이 잘 자라면 그 집의 기운도 좋아진다고 믿어요. 식물이 건강하다는 건 빛, 공기, 온도 같은 조건이 잘 맞는다는 뜻이고, 결국 그 집에서 사는 사람도 편안하다는 증거니까요.” 그녀의 말처럼, 이곳은 언제나 꽃을 들이며, 집은 계절과 함께 천천히 피어나는 정원이 된다.
그녀가 운영하는 플라워 숍 더아미@the_amie_에서는 시각적 완성도와 균형에 집중한다면, 집에서는 꽃이 얼마나 오래가는지, 어떤 빛과 위치에서 가장 생명력을 유지하는지를 꼼꼼히 시험한다. 그렇게 쌓은 경험은 고객에게 제안할 플라워 스타일링에도 이어진다. 가능한 한 오래 감상할 수 있는 꽃을 선택하고, 시든 꽃을 빼내더라도 허전하지 않도록 다양한 종류를 조화롭게 매치한다. 한때 외면했던 카네이션도 오랜 시간 피어 있는 모습을 보고 다시 좋아하게 되었듯, 이 집은 그녀의 취향과 감각을 매일 새롭게 다듬는 실험실이다.
고연수 씨는 겉모습만 화려한 집보다 마감과 내구성이 탄탄한 공간을 원했고, 완성도와 디테일을 세심하게 신경 쓰는 디자인 스튜디오 채윰@chaeyum_offical과 함께했다. 채윰의 김경미 대표는 이러한 방향을 고려해 ‘모던함 속의 내추럴’을 키워드로 공간을 그려나갔다. 아울러 이 공간은 처음부터 꽃이 놓일 장면을 상상하며 설계됐다. 고연수 씨는 마감재를 고르기 전부터 “실버 화병을 쓸 것”이라 예고했고, 이에 가전을 모두 실버 톤으로 통일했다. 차가운 금속의 질감은 무늬목을 곁들여 따스함을 더했고, 계절마다 웜톤의 꽃을 매치해 집 안에 늘 포근함을 불어넣는다. 결국 이곳은 삶과 작업이 포개지고, 계절과 감각이 겹쳐지며 매일 새롭게 피어난다. 꽃이 피고 지는 리듬에 맞춰 공간은 또 다른 표정을 짓고, 그녀의 하루는 그 속에서 다시 시작된다.
온기가 시작되는 아일랜드
이 집에는 밥솥이 없다. 고연수 씨는 매일 솥 밥을 짓고 하루 두 끼를 정성스럽게 차린다. 그녀에게 요리는 단순한 끼니가 아니라, 가족에게 온기를 건네는 방식이다. 주방에 서 있는 시간이 긴 만큼, 가족과 대화를 나누고 때로는 손님과 눈을 맞추며 요리할 수 있는 대면형 주방을 원했다. 그래서 기존 ㄷ자 형태의 좁은 주방과 알파룸, 워킹 클로젯을 철거해 넓은 공간을 확보했다. 30평대의 주방이 60~70평대의 주방처럼 확장됐고, 동시에 4개의 화구를 사용할 수 있는 대형 아일랜드가 자리했다. 아일랜드는 인위적인 마감 대신 천연 대리석을 그대로 올려 자연스러운 결을 살렸다. 꽃을 만지는 사람으로서 집에서도 가능한 한 ‘가공하지 않은 것’을 두고 싶었다는 그녀의 취향이 드러나는 선택이다. 공간은 시각적으로도 탁 트여 있다. 가구와 벽체를 단순화하고 상부장을 최소화해 답답함을 덜었으며, 개방형 선반과 넓은 조리대를 배치했다. 창과 조명 위치까지 조율해 빛이 깊숙이 스며들도록 설계했기에, 낮이면 햇살이 대리석 상판 위로 길게 번진다. 그 위에서 꽃을 다듬고, 따뜻한 한 끼를 만들고, 웃음소리가 얹히며 가장 따뜻한 시간이 완성된다.
editor 김소연
photographer 김잔듸·임수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