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억 횡령·배임 혐의 2심 결심 공판서 최후 진술···12월22일 선고
갈색 수의에 흰 고무신, 검은 뿔테안경 쓴 채 법정 출석···목소리 떨려
검찰 “총수일가 사익추구의 전형”···징역 12년·추징금 7896만원 구형
변호인 “담보 확보된 투자, 총수 구속 땐 회사 타격 불가피” 선처 호소

조현범 한국앤컴퍼니그룹 회장. / 사진=연합뉴스
조현범 한국앤컴퍼니그룹 회장.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오만했고 어리석었다” “다신 배신하지 않겠다”

10일 오후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백강진 부장판사)에서 열린 조현범 한국앤컴퍼니그룹(한국타이어) 회장의 200억원대 경영비리 혐의 2심 결심공판. 갈색 수의를 입은 조 회장은 최후진술 기회를 얻어 피고인석에서 일어나며 이렇게 말했다. 눈물을 흘리진 않았지만 목소리는 여러 차례 떨렸고, 말을 잇기 전마다 잠시 숨을 고르는 모습이었다.

조 회장은 “귀한 시간을 할애해주셔서 송구스럽다. 여러 기일 제 변론을 들어주셔서 감사하다”며 운을 뗐다. 이어 “1심과 항소심을 거치는 동안 굉장히 외로웠고, 할 일이 없어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많았다”며 “이 사건을 겪으며 제가 얼마나 무모하고 어리석었는지 자책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잠시 고개를 숙인 뒤 “전에도 한 번의 기회가 있었고, 배려와 기회를 주셨는데도 또 사업하는 게 무슨 벼슬인 줄 알고 안일하게 생각했다”며 “재판부의 배려를 배신했다. 이런 배신은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 또 “부모 잘 만나 선배들이 깔아놓은 터전에서 하다 보니 조금 잘된 것을 제 능력이라 착각했다. 그런 오만함이 불미스러운 일로 이어졌고,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잘못이 많았다”고 반성했다. “저의 불찰로 회사 임직원들이 쌓아온 명예를 실추시켰다. 직원과 동료, 주주, 이사회에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는 말도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공동 피고인인 정 아무개씨를 언급하며 “그는 자동차 세계관을 공유하며 함께 일한 친구다. 제가 하자는 대로 했을 뿐이다. 그에게는 부디 선처를 베풀어 달라”고 호소했다.

◇檢 “총수일가 사익추구의 전형”…“기회 받고도 재범, 실형 불가피”

검찰은 단호했다. 1심과 마찬가지로 중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조 회장에게 징역 12년과 추징금 7896만여원을, 정아무개씨에게는 징역 2년을, 한국타이어테크놀로지 법인에는 벌금 2억원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은 “피고인은 과거 집행유예로 기회를 받고도 같은 범행을 반복했다. 그 자체가 반성이 부족하다는 방증이다”며 “이 사건은 총수 일가가 지배력을 앞세워 계열사 자금을 사적으로 전용한 전형적 사익추구 범행이다”고 규정했다.

이어 “지인 회사 ‘리한’에 50억원을 담보 없이 대여한 행위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자금 유용이며, 몰드업체 MKT에 유리한 단가를 설계한 행위 역시 회사 손해를 담보로 한 내부거래”라고 지적했다. 또 “법인 차량·법인카드의 사적 사용과 여행사 리베이트까지 이어진 범행은 일상적 착오가 아니라 총수의 의도적 결정이었다”며 “법질서 훼손과 피해 규모를 감안할 때 실형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피고인과 총소일가의 지위 및 역할, 동종전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점, 타이어 몰드 관련 혐의를 부인하고 피해가 회복되지 않은 점, 사익추구라는 범행동기, 한국타이어 법인과 구성권들, 주주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친점 등을 불리한 양형 요소로 고려해 달라”고 강조했다.

◇변호인 “담보 확보된 투자…총수 구속 땐 회사 타격 불가피”

조 회장 측 변호인단은 “당시 의사결정은 경영상 판단의 범위 안에 있었다”며 “회사가 실질적 손해를 입은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50억원 리한 대여 혐의에 대해선 ‘화성 공장 우선매수권을 담보로 한 투자성 거래’, 130억원대 몰드 단가 조정 혐의는 ‘기술력 확보와 설비투자 유도 목적의 정상화 조치’라고 설명했다.

회사비용으로 구입하거나 빌린 고가의 스포츠카를 사적으로 사용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타이어 성능 테스트용 개발차량으로 실제 연구개발에 사용됐다”고 주장했다.

또 “조 회장은 구속 이후 컴플라이언스위원회 설치, 내부통제 강화, 지배구조 투명화 조치 등 재발 방지책을 마련했다”며 “이미 1년 가까이 구금돼 있으며, 기업 총수가 장기 수감될 경우 4만여 임직원과 협력사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양형에 대해서도 “조 회장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 실형보다는 집행유예로 복귀해 회사와 직원들에게 책임을 다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억 횡령·배임 범죄…130억대 배임은 1심서 무죄

조 회장은 2017~2022년 사이 회사 자금 약 75억원을 빼돌려 개인 차량 리스 비용, 법인카드 사적 사용 등에 쓴 혐의로 2023년 3월 재판에 넘겨졌다. 또 한국타이어가 2014년 2월∼2017년 12월 계열사 한국프리시전웍스(MKT)로부터 약 875억원 규모의 타이어 몰드를 사들이면서 다른 제조사보다 비싼 가격을 지급해 부당 지원했다는 혐의도 받았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한국타이어가 131억원의 손해를 입었고, MKT에 몰아준 이익이 조 회장 등 총수 일가에 흘러갔다고 판단했다. MKT는 당시 조 회장이 29.9%, 형 조현범 고문이 20.0%, 한국타이어가 50.1%의 지분을 보유했다.

1심 재판부는 회사 자금 50억원을 지인 운영 회사에 사적 목적으로 대여한 혐의, 법인 카드를 사적으로 사용한 혐의 일부를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운전 기사에게 배우자를 전속 수행하게 해 회사에 재산상 손해를 입힌 혐의(업무상 배임), 개인적으로 사용할 차량 5대를 회사 명의로 구입·리스한 혐의(업무상 배임), 여행사 몰아주기 부정 청탁을 받고 배임수재 한 혐의 등도 유죄로 봤다. 반면 MKT 부당지원 혐의 등은 “손해 발생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무죄로 봤다.

조 회장에 대한 2심 선고기일은 12월 22일 오후 2시에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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