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정관 문언의 의미가 핵심”···‘합작법인’ 해석 새 쟁점 부상
고려아연 “협력 관계도 합작법인 해당” vs 영풍 “자의적 해석” 맞서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고려아연이 2023년 HMG글로벌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신주를 발행한 조치가 정관상 요건을 충족하는지를 다투는 2심 첫 공판에서 정관상 ‘외국의 합작법인’ 조항 해석을 둘러싼 공방이 한층 구체화됐다.
고려아연 정관은 원칙적으로 주주에게 신주를 우선 배정하도록 하면서도, ‘외국의 합작법인’에 출자할 경우 예외적으로 제3자에게 신주를 배정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고려아연은 “‘외국의 합작법인’에는 ‘합작 파트너’ 개념도 포함된다”며 새 논리를 제시했고, 영풍 측은 “정관에 없는 자의적 해석”이라고 반박했다.
서울고법 민사12-3부(김용석 장성조 배광국 부장판사)는 5일 영풍이 고려아연을 상대로 제기한 신주발행무효확인 소송의 항소심 첫 변론에서 “이 사건은 외국의 합작법인이라는 문언의 의미가 주된 쟁점”이라며 “양측 모두 합작법인의 유래를 일본어 ‘합작선(合作先)’으로 기재했는데, 그 의미를 구체적으로 밝혀달라”고 말했다.
재판부의 발언은 ‘외국의 합작법인’의 범위를 넓히는 해석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1심은 고려아연의 지분이 없다는 이유로 HMG글로벌을 ‘외국의 합작법인’이 아닌 단순 ‘외국 법인’으로 판단했지만, 항소심에서 ‘합작 파트너’ 개념이 받아들여질 경우 고려아연이 직접 출자하지 않은 외국 법인에도 신주 발행이 허용될 수 있다는 논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고려아연 측 대리인은 “합작은 단순히 법인 설립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 기업과의 파트너십 전체를 포함하는 개념”이라며 “정관 문언의 협소한 해석은 해외 합작사업이나 자금조달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또 “합작법인이라는 표현이 일본식 ‘합작선(合作先)’에서 유래한 만큼, 상대방 기업(합작 파트너)과의 협력관계를 포함하는 것이 정관 취지에 부합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영풍 측 대리인은 “합작법인은 공동 출자를 전제로 한 법인을 뜻하며, HMG글로벌은 고려아연이 출자하지 않은 단순 외국법인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이어 “정관에 없는 ‘합작 파트너’ 개념을 임의로 추가하는 것은 자의적 해석이며, 표준정관 개정 이후에도 동일한 문언을 유지한 것은 의도적인 균형 유지를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주 발행의 경영상 필요성을 둘러싼 공방도 이어졌다.
영풍 측은 “제3자 배정은 기존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침해할 뿐 아니라 대주주의 지분율을 낮춰 지배구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며 “이 사건 신주발행은 경영권 방어를 위한 위법 행위”라고 주장했다. 반면 고려아연 측은 “신주 규모는 전체의 약 5%에 불과하며, 발행 당시 경영권 분쟁이 현실화되지 않았다”며 “자금 조달 목적의 정상적인 경영상 판단이었다”고 맞섰다. 또 “1심 재판부 역시 경영상 필요성 자체는 일부 인정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양측의 주장을 들은 뒤, 합작파트너 개념의 해석 범위와 경영상 필요성 논리를 보강해 제출하라고 주문했다. 또 사건 배경과 구체적 쟁점을 설명하기 위해 프레젠테이션(PT) 기회를 달라는 고려아연 측 요청을 받아들여 오는 1월14일 한 차례 추가 변론을 열기로 했다. 이날 양측이 20분씩 주요 쟁점과 법리 주장을 설명하면 재판은 종결 수순에 들어갈 전망이다.
◇2023년 현대차 등 공동 출자 법인에 신주발행…경영권 분쟁 성격도
이번 사건은 고려아연이 2023년 9월 미국 델라웨어주에 소재한 HMG글로벌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보통주 104만5430주(전체의 약 5.05%)를 발행한 데서 비롯됐다. HMG글로벌은 현대자동차·기아·현대모비스 3사가 공동 출자해 설립한 미국 현지 법인으로, 미래 모빌리티와 배터리 소재 등 신사업 투자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고려아연은 이 법인에 직접 출자하지 않고 2차전지 재활용 및 자원순환 사업 협력 차원에서만 참여했다.
이 신주발행으로 영풍 측 지분율은 약 35.22%에서 31.57%로 하락했다. 반면 같은 시점 고려아연 측 우호지분은 약 32% 수준으로 올라 양측의 지배력 균형이 변한 것으로 평가됐다. 이에 영풍은 이번 발행이 정관상 허용되지 않은 외국 법인에 대한 제3자 배정이자 사실상 경영권 방어용 행위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HMG글로벌이 ‘외국의 합작법인’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신주발행을 무효로 봤다. 또 이 같은 정관위반이 주주의 신주인수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했다. 다만 신주 발행 목적 중 일부가 ‘2차전지 및 자원순환 등 신사업 추진’이라는 고려아연 경영상 필요에 따른 점이 인정된다고 보고, 경영권 강화를 위한 발행이라는 영풍 측 주장만으로는 전체 목적을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