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에너빌리티, 국내 첫 원전 해체 주관사로 참여
방사선 없는 비관리구역부터 철거···2037년 종료 목표
전체 사업비 1조713억원···해체 작업만 약 7000억원 추산
관리구역 해체 발주 땐 두산에너빌 등 민간 수주 확대 전망
‘국내 첫 원전 해체’ 경험, 540조원 글로벌 시장 교두보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2년 6월22일 오전 경남 창원시 두산에너빌리티를 방문해 신한울 3·4호기 원자로와 증기발생기용 주단소재 보관장에서 한국형 원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2년 6월22일 오전 경남 창원시 두산에너빌리티를 방문해 신한울 3·4호기 원자로와 증기발생기용 주단소재 보관장에서 한국형 원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국내 첫 상업용 원전인 고리1호기의 해체 사업이 약 180억원 규모의 비관리구역 철거로 첫 삽을 떴다. 아직은 터빈·발전기 등 방사선이 없는 설비를 해체하는 초기 단계지만, 이후 방사선 관리구역 철거와 부지 복원 등 후속공정이 이어지면 수천억원대 발주가 줄줄이 대기 중이다. 두산에너빌리티 컨소시엄이 참여한 이번 공사는 국내 원전 해체 산업의 ‘첫 수주’이자 민간 주도의 후행주기 시장이 열린 신호탄으로 평가된다.

국내 첫 상업용 원전 해체의 주관사로 나선 건 두산에너빌리티다. 회사는 지난 4일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고리1호기 비관리구역 내부·야드 설비 해체공사’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공사는 HJ중공업, 한전KPS와 함께 2028년까지 진행된다. 방사선 노출이 없는 비관리구역의 터빈·배관 등 2차 계통 설비를 해체하는 단계로, 전체 1조713억원 규모 사업의 첫 공정에 해당한다.

고리1호기는 1978년 국내 최초 상업용 원전으로 가동돼 2017년 영구정지된 이후 약 8년 만에 본격적인 해체 작업에 돌입한다. 이번 사업은 지난 6월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의 해체 최종계획 승인 이후 첫 번째 해체 공사로, 국내 원전 해체의 실질적 첫 단추를 여는 상징적인 프로젝트다.

부산 기장군 장안읍 해안에 있는 고리1~4호기. / 사진=원자력안전위원회
부산 기장군 장안읍 해안에 있는 고리1~4호기. / 사진=원자력안전위원회

◇ “관리구역 해체는 2030년대 초부터”···수천억 발주 대기

첫 계약 규모는 184억원에 불과하지만, 이후 방사선 관리구역 설비 해체 등 위험도가 높은 공정이 순차적으로 발주되면 수천억원대 공사로 이어질 전망이다. 한수원은 이달 중순 고리1호기 비관리구역 설비 해체공사에 착수해 건물 내 석면과 보온재를 우선 철거한 뒤 터빈건물 설비부터 단계적으로 해체해 나갈 예정이다.

고리1호기 해체는 약 12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진행된다. 2028년까지 비관리구역 해체를 마치고, 2031년까지 사용후핵연료를 반출한 뒤 원자로와 방사선 관리구역 해체(2031~2036년), 부지 복원 및 규제 해제(2037년) 순으로 마무리된다. 사용후핵연료 반출은 전담기관인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이 맡게 되지만, 그 외 해체 및 복원 작업은 민간에게 기회가 돌아가는 구조다. 해체사업비만 원안위 승인 기준으로 7000억원대에 달한다.

한수원 관계자는 “총 해체비용은 원자력안전위원회 승인 당시 평가된 1조713억원 수준이지만, 공정별 세부 발주 규모는 현재 종합 설계사를 통해 산출 중”이라며 “비관리구역 이후 단계는 방사선 관리구역 중심의 본공정이어서 공사 내역과 공종별 투입 범위를 세밀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관리구역 철거가 끝나면 다음 해체 단계는 사용후핵연료 반출 이후인 2030년대 초로 넘어간다. 이 관계자는 “사용후핵연료 반출이 완료되는 2031년 이후 본격적인 해체 공사가 진행될 예정”이라며 “민간 기업의 참여는 2029~2030년경 후속 발주 시점부터 본격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 국내 첫 해체 경험, 500조 글로벌 시장 교두보로

두산에너빌리티를 비롯한 국내 주요 원전 기업들은 이번 고리1호기 해체를 계기로 해체 기술 상용화와 해외시장 진출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영구정지 원전이 빠르게 늘고 있어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현재 213개 규모의 영구정지 원전 규모는 2050년까지 588기로 2배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해체 시장 규모만 500조원 이상 확대될 것으로 추정된다.

두산에너빌리티는 한수원이 국책사업으로 추진한 ‘원자로 내부 구조물 절단 기술 개발’과 ‘방사선 오염 설비 원격 해체 기술 실증’ 과제에 참여해 관련 핵심 기술을 축적해왔다. 회사는 이번 비관리구역 해체 공사를 시작으로 향후 방사선 관리구역 해체 등 고난도 공정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HJ중공업은 두산에너빌리티와 함께 철거 및 중량물 해체 작업을 담당하고 한전KPS는 냉각재 배관 내부 방사성 물질을 화학약품으로 제거하는 ‘계통 제염’ 기술을 중심으로 해체 작업에 참여한다.

국내 건설사들도 발 빠르게 해체 시장 진입을 준비 중이다. 현대건설은 2022년부터 미국 홀텍이 추진하는 인디언포인트 원전 해체 프로젝트에 국내 기업 최초로 참여했다. 원자로 압력용기 절단, 화학 제염 등 고난도 작업을 수행하며 글로벌 해체 기술을 실증하고 있다. 대우건설은 월성1호기 해체공정 설계 용역을 수행하며 기술 내재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소 전문기업도 제염·폐기물 처리·방사선 측정 장비 분야에서 속속 참여를 모색하고 있다. 한국원자력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원전 해체 관련 기업은 106개로 전년 대비 10개 늘었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이번 고리1호기 해체 사업은 국내 원전 기술력, 인허가 체계, 방사선 안전 시스템을 총체적으로 검증하는 시험대”라며 “성공적으로 완수될 경우 국내 해체 기술의 상업화는 물론 500조원 규모 글로벌 시장 진출의 발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