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APEC에서 확인된 한국 기업인 리더십
기업은 세계로 뛰는데, 정부는 발목 잡지 않도록
‘노란봉투법’ 등 기업활동 위축 법안, 시행 전 균형감 있게 검토해야
[시사저널e=노경은 기자] 경주를 뜨겁게, 대한민국을 설레게, 아시아 태평양 연안 국가를 긴장하게 한 APEC 2025 코리아가 지난 1일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지난 나흘간 APEC에서의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먼저 연말까지 접점을 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였던 한·미 관세 협상이 전격 타결이라는 가장 큰 성과가 있었다.
APEC CEO 서밋도 마찬가지다. 단순한 외교행사가 아니라 우리 기업과 국가 브랜드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글로벌 스테이지가 됐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의장 자격으로 개막식에 참석했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그룹 총수들은 경제외교대사 역할 수행으로 글로벌 기업 투자·협력 흐름을 우리 쪽으로 유도하는 구체적 성과를 냈다. 실제 젠슨 황 엔디비아 CEO는 우리 정부와 기업에 총 26만장의 GPU를 공급한다고 발표했고 아마존, 르노 등 7개 외국 기업은 한국에 향후 5년간 약 90억달러(약 12조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이는 단순히 투자금액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AI·반도체·배터리 등 우리 정부가 중점적으로 육성해 온 전략산업 분야에 글로벌 기업들이 자금 배치를 선언했다는 점에서 우리 기업 생태계가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기업의 투자유치·첨단산업 생태계 구축·외국 기업과의 협업은 곧 일자리 창출, 기술 확산, 수출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이뿐만 아니다. 이번 APEC 계기를 통해 우리 기업들이 보여준 글로벌 경제외교 채널 활용 능력은 앞으로도 지속 가능한 성장 동력으로 활용될 여지가 크다. 세계 무대에서 한국 기업의 리더들이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은 국가 브랜드와 신뢰도 측면에서도 큰 자산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정부의 역할이다. 물론 관세협상이라는 큰 난제를 해결하면서 정의선 회장은 이번 관세 인하 정부 성과에 대해 “국가에 신세를 꼭 갚겠다”는 말을 전했다고 한다. 정말 정부로선 대단한 아웃풋을 냈고, 우리 기업은 덕분에 불확실성을 해소하게 됐다.
그러나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정부가 이러한 기업들의 활동을 단순히 관리하거나 제한하는 태도로 접근해선 안 된다는 거다. 기업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활약하려면 규제·노동·세제·입지 등 다양한 제도적 환경이 뒷받침돼야 한다. 재계는 일사천리로 국회에서 통과 후 내년부터 시행될 노란봉투법, 상법개정안 등을 여전히 우려한다.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 해외 투자 유치, 국제협업 확대라는 맥락에서 보면 이러한 법안이 기업들의 활동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 APEC에서 유리한 경제 투자 흐름을 만든 게 우리 기업 리더들이었지만 이 흐름이 지속가능한 성과로 이어지려면 정부가 인프라·세제·인력정책 등에서 후속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기업이 더 쉽게 일하게 해달라’는 의미가 아니다.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고 투자유치를 통한 고도화 전략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제도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갖게 해달라는 뜻이다.
이번 APEC에서 우리 기업 총수들이 보여준 글로벌 리더십과 투자·협업 실행력은 단순한 행사의 일회성 성과가 아니다. 한국 기업이 이제 세계 무대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를 등에 업고 움직일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는 걸 증명한 것이기도 하다. 이 신호탄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 정부 입법 및 정책 추진은 기업활동의 마중물이 되도록 해야지, 역풍이 되도록 설계돼선 안 된다. 만약 입법과정이 기업 경영환경을 흔들고, 투자·협업 의욕을 꺾는 방향이라면 우리 사회가 지금 눈앞에 만든 기회를 차버리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