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금리 하락으로 자본건전성 악화
장기국채 매입하기 바빠···벤처·인프라 투자 여유 없어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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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정부가 ‘생산적 금융’ 정책을 야심차게 발표했지만 보험업권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시중금리 하락으로 자본건전성이 악화돼 정부가 원하는 대로 위험투자를 감행할 여력이 사라졌기 때문이란 관측이 나온다. 당분간 보험사는 자본건전성 관리를 위해 위험투자보단 안전자산인 장기 국채를 더 많이 사들일 것이란 전망이다.  

5일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올해 1~8월 보험사의 국내 채권 순매수액은 17조1980억원으로 전년 동기와 비교해 13% 크게 늘었다. 이 중 국채가 차지하는 비중은 80%를 차지했다. 최근 4년 새 가장 높은 수준이다.  

보험사들이 국채를 대거 매입하는 이유는 올해 들어 시중금리가 하락했기 때문이다. 금리가 내려가자 보험사들의 자본건전성은 악화됐다. 금리 하락으로 부채가 불어나 자본이 깎인 것이다. 더구나 당분간 금리는 계속 내려간다는 것이 대체적인 예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험사는 ‘듀레이션 갭’을 줄여야 한다. 

듀레이션은 자산·부채의 금리 민감도를 의미하며, 보통 각 자산과 부채의 만기와 비례한다. 보험사는 장기 상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부채 만기가 길다. 이에 듀레이션도 부채가 자산보다 더 길다. 그런데 부채와 자산 간의 듀레이션 격차가 크면 클수록 금리 하락 기간에 자본은 더 많이 감소한다. 이러한 사태를 막기 위해 보험사는 만기가 10년 이상인 장기 국채를 사들여 자산 듀레이션을 확대해야 한다. 

이처럼 보험사가 안전 자산인 국채를 많이 사들이면 그만큼 벤처·인프라 등 생산적 금융에 투자할 자본적 여력이 줄어든다. 보험사들은 최근 금리 하락으로 자본 여력이 빠듯하다. 지난 3월 말엔 전체 보험사의 평균 지급여력비율(K-ICS·킥스)은 197.9%로 처음으로 200% 아래로 내려갔다. 보험사들의 사정이 좋지 않다보니 금융당국은 킥스 비율의 권고치를 기존 150%에서 130%로 낮춰주는 안도 마련했다. 

킥스는 보험사의 자본건전성을 측정하는 지표다. 분자는 보험사의 자기자본(가용자본), 분모는 보험사가 보험·장수·시장·금리·운용 등 각종 위험을 모두 직면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자본감소 규모를 추산한 요구자본으로 구성된다. 보험사가 정부의 정책에 따라 벤처·인프라 등 상대적으로 손실 가능성이 큰 투자를 늘리면 요구자본이 증가해 킥스 비율이 하락한다. 

자본건전성 관리가 어렵다보니 당국이 마련한 자본제도 개선안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금융권의 생산적 금융을 촉진하기 위해 자본건전성 제도의 일부 항목을 수정하기로 했다. 요구자본에 반영되는 위험계수를 낮춰주는 것이 핵심이다. 현재는 보험사가 비상장주식에 투자하면 49%의 높은 위험계수가 부과된다. 상장주식은 35%, 인프라나 장기주식은 20%다. 금융당국은 조만간 구체적인 안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다수의 보험사들은 현재 자본건전성 문제로 배당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위험 계수를 낮춰준다고 해서 생산적 금융에 자본을 많이 투입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면서 “더구나 당국이 더 강화된 규제인 기본자본비율을 도입하려고 하는 점도 부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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