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포2단지·신반포15차 수십억 지급 추진···조합원 반발 거세
잠실아이파크는 철회···기준 부재로 갈등 확산 우려
법원도 판례마다 제각각···“제도적 장치 시급”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서울 강남권 재건축 단지에서 조합 성과급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아파트 한 채 값에 맞먹는 금액을 지급하려는 움직임에 조합원 반발은 물론 법적 분쟁 가능성까지 불거졌다. 성과급 산정 기준이 불명확하고 제도적 구속력이 없어 분쟁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 개포주공2단지, 아파트 한 채 값 성과급

26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개포주공2단지(래미안 블레스티지) 청산위원회는 오는 29일 청산 법인의 운영을 종료하는 ‘청산 총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날 안건 중 하나로 ‘정비사업비 정산 및 감사(성과)금 의결의 건’이 상정됐다.

해당 안건은 145억원을 조합원 정산(청산금)으로 지급하고, 일반분양이 취소된 전용면적 84㎡ 1가구를 매각해 조합 임직원 성과급으로 지급하는 내용이다. 조합 측은 25년간 조합장과 임원으로 활동하며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조합원 재산 가치를 높인 공로를 성과급 지급 사유로 내세웠다.

개포주공2단지는 청산을 앞두고 조합 집행부에 집 한 채값에 달하는 성과급이 지급된다는 소식에  지급한다고 밝혀 조합원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개포주공2단지 청산위원회가 조합 임원들에게 아파트 한 채값에 해당하는 성과급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하자 조합원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 이미지=챗GPT 

래미안 블레스티지는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2단지를 재건축한 곳으로 2019년 2월 입주했다. 올해로 입주 7년 차를 맞은 1957가구 규모의 대단지 아파트다. 현재 전용 84㎡은 호가가 35억~40억원대로 형성돼 있다. 지난 6월 같은 평형대 매물이 33억9500만원(18층)에 거래됐다.

조합원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미 조합장과 임원들이 재임 기간 동안 보수를 받아왔고 청산 법인에서도 급여를 수령하고 있는데 여기에 또다시 수십억원대 성과급을 얹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조합원들은 강남구청을 방문해 “성과급 규모가 지나치다”며 행정적 지침을 요구했지만, 강남구청은 “조합 내부 재산 분배는 사적 사안이어서 직접 개입하기 어렵다”는 답변을 내놨다.

◇ 신반포15차, 58억→38억 재추진···잠실아이파크는 전면 철회

서초구 신반포15차를 재건축한 래미안 원펜타스 조합도 비슷한 갈등을 겪고 있다. 조합은 대의원회회의에서 조합장에게 성과급 38억원을 지급하는 안건을 다시 논의할 계획이다. 앞서 지난해에는 성과급 규모를 58억원으로 책정했다가 거센 반발에 부딪혀 무산된 바 있다. 조합 측은 “분양가를 최고 수준으로 이끌고 공사비 증액을 막아 5800억원의 이익을 지켜낸 공로”라며 지급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조합원들의 반발은 여전하다. 지난해 58억원 규모의 성과급을 추진할 당시에는 ‘전체 사업 이익의 1% 수준’이라는 설명을 내세웠으나, 이번에는 별다른 근거 없이 38억원으로 줄여 다시 상정한 점이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래미안 원펜타스. / 사진=삼성물산
래미안 원펜타스. / 사진=삼성물산

아울러 공사계약 해지 이후 대우건설과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200억원 규모)과 삼성물산에 대한 공사비 99억원 추가 지급 건에 대한 무효 소송 등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성과급 지급은 시기상조라는 지적이다. 일부 조합원들은 조합장의 행위가 배임 및 도시정비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보고 직접 고소장을 제출하는 등 법적 대응에 나섰다.

성과급 지급이 무산된 사례도 있다. 잠실진주(잠실래미안아이파크) 재건축 조합은 조합장과 임원들에게 14억5000만원 규모 성과급 지급 계획을 세웠으나 조합원 반발에 부딪혀 철회했다. 당시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입주도 하기 전에 성과급부터 챙기는 건 납득할 수 없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결국 집행부가 긴급회의를 열어 안건을 전면 철회했다.

◇ “기준 없는 성과급” 갈등 반복

강남권 재건축 단지에서 성과급 논란이 되풀이되는 근본 원인은 제도적 공백에 있다. 조합 임원 보수와 달리 성과급은 구체적인 산정 기준이나 상한선이 법령에 명시돼 있지 않다. 행정기관도 ‘조합 자율 영역’이라는 이유로 개입을 꺼리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조합원 반발과 총회 표결, 법적 다툼으로 귀결되는 구조다.

법원은 그동안 “성과급 자체는 가능하지만 사업 이익에 비해 과도하면 무효”라는 입장을 보여왔다. 원베일리에서는 10억원 규모 성과급이 전체 추가이익의 2.3%라며 인정됐지만 아크로리버파크에서는 전체 사업이익의 20%를 성과급으로 책정한 안건이 무효 판결을 받아 7% 수준만 인정됐다. 그러나 이처럼 판례마다 인정 범위가 달라 기준이 일관되지 않아 현장에서는 여전히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조합 임원 성과급의 산정 기준과 한도를 명확히 가를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성과급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는 없지만 조합원 동의 없이 거액이 결정되거나 집행부가 스스로 금액을 정하는 방식은 분명한 이해충돌”이라며 “성과급을 지급하려면 사업 이익과 기여도를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금처럼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태에서는 총회 의결 후에도 소송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불가피하다”며 “제도적으로 기준을 세우지 않는 한 비슷한 갈등이 강남권을 넘어 다른 정비사업지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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