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보다 확장에 무게 실리는 스타트업 생태계
경직된 투자 시장 분위기 속 생존 위한 현실적 선택
우버·에어비앤비 등 글로벌 기업도 사업 확장 속도

/사진=AI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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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e=이창원 기자] 스타트업 생태계 전략이 ‘원 투 텐(1→10)’으로 급변하고 있는 모습이다. 다수의 스타트업 기업들이 새로운 모델 발굴보다는 이미 검증된 사업 모델을 더 크게, 더 넓게 키워가는 전략으로 전환하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스타트업의 상징은 ‘제로 투 원(0→1)’, 즉 ‘세상에 없던 혁신’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투자 시장이 경직되면서, 스타트업 기업들이 안정성에 방점을 찍으며 시장의 분위기가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코로나 팬데믹 시기까지 투자 시장의 유동성은 넘쳐났고, ‘아이디어만으로 수십억원을 투자’ 받는 사례가 심심찮게 등장했다. 하지만 2022년 이후 글로벌 금리 인상,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상황은 180도 달라졌고, 이와 같은 투자 시장의 분위기는 올해도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VC(벤처캐피털) 업계 관계자는 “정권 교체 이후 스타트업 등에 대한 투자가 조금씩 활기를 찾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모험을 거는 투자’에 대해 조심하는 분위기”라며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아이템보다는 시장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서비스가 얼마나 빨리 확장할 수 있는가가 투자 판단의 핵심 기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경직된 투자 시장 상황 속에서 투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스타트업 기업들이 검증된 사업 모델을 통한 안정적 매출 확보에 집중하게 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국내 배달앱, 중고거래 플랫폼 등에서는 적극적인 확장 전략이 관측되고 있다.

시장 포화 상태가 된 배달앱 시장에서는 배달의민족, 요기요, 쿠팡이츠 등은 핵심 사업인 배달 서비스 자체로만 경쟁하던 시대를 넘어 장보기·퀵커머스·간편결제·금융 서비스 등까지 영역을 넓히며 이른바 ‘슈퍼앱’으로 진화 중이다.

배달앱 업계 관계자는 “앱 하나만으로 생활의 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종합 플랫폼을 지향하며 사업을 확장하는 것이 최근의 트렌드”라며 “특히 생활 밀착형 서비스에서 항상 존재하는 이슈 리스크를 대비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용자들의 일상에 보다 많이 녹아들게 되면 서비스 이탈률 등의 관리에도 용이해 다양한 분야를 접목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고거래 플랫폼 시장에서도 확장 전략이 두드러지고 있다. 당근마켓은 단순 중고거래를 넘어 지역 커뮤니티, 동네 광고, 구인·구직, 반려동물 서비스 등까지 사업을 확장하며 지역 기반 플랫폼으로 변모했다. 또한 번개장터는 명품 리세일과 정품 인증 서비스를 내세워 차별화에 나서며 세대와 취향에 맞춘 리세일 문화의 허브 서비스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AI 스타트업도 기존의 파괴적 혁신보다는 현실적 업그레이드가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교육 분야의 스타트업들은 기존 B2B 교육 시장에 AI를 접목해 실제 직무 환경에 맞춘 훈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헬스케어 스타트업은 병원 EMR 시스템에 AI 보조 진단 기능을 얹는 식으로 기능 개선과 생산성 향상에 집중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AI 스타트업 기업 관계자는 “대부분의 AI 기업들이 완전히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기보다는 기존 산업 구조를 강화하고 최적화하는 방향으로 키(key)를 잡고 있다”며 “현실적으로 많은 자본과 높은 기술력이 필요하지만 불확실성이 높은 사업 분야는 후순위로 배치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미 글로벌 AI 기업들과의 기술 격차가 크고, AI 기술의 핵심적인 데이터 확보 등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비롯한 물리적인 한계가 존재한다”며 “당장 산업에 적용해 성과를 낼 수 있는 비교적 기술 수준이 낮은 서비스 개발을 통해 투자금 등 캐시(cash)를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다는 인식들이 업계 전반에 깔려있다”고 부연했다.

지난 10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제1회 대한민국 산업단지 수출박람회(KICEF 2025)’에 참가한 스타트업 기업들. /사진=이창원 기자
지난 10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제1회 대한민국 산업단지 수출박람회(KICEF 2025)’에 참가한 스타트업 기업들. /사진=이창원 기자

이러한 원 투 텐 전략은 비단 국내 스타트업 기업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택시 호출 서비스로 시작한 우버는 현재 음식 배달(Uber Eats), 화물 운송(Uber Freight), 금융 서비스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고, 이에 최근 흑자 전환에 성공하기도 했다.

숙박 공유 플랫폼인 에어비앤비도 여행자들이 현지 투어, 요리 수업, 문화 체험을 즐길 수 있는 체험 서비스를 비롯한 비즈니스 출장 등까지 시장을 넓히며 전환기를 맞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원 투 텐 전략은 이미 검증된 고객 기반 위에서 빠른 매출 성장이 가능하고, 안정적인 성장 그래프를 통해 투자자들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는 명확한 장점이 있다”며 “사용자 관리 측면에서도 자연스럽게 충성도가 높아지는 이른바 ‘락인 효과(Lock-in effect)’가 발생해 기업 입장에서는 분명한 우월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모방·확장형 모델이 난립하면서 스타트업 생태계 전반의 창의성과 다양성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은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라며 “이미 존재하는 모델을 변형하거나 조합하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팔로워(follower)’ 역할에 그치는 기업들이 증가하는 것은 생태계 전반에 부정적인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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