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e=문지숙 차의과학대학교 바이오공학과 교수] 동창회에서 40년 만에 만난 친구가 마치 30~40대처럼 어려 보일 때가 있다. 반가움보다 먼저 ‘나만 늙었나’ 싶은 서운함이 올라오고, 대체 무슨 관리법이길래 저런 차이가 생기나 궁금해진다. 누군가는 “특별한 비결은 없다”고 말하지만 과학은 몇 가지 단서를 내놓는다. 핵심은 호르몬, 줄기세포, 그리고 엑소좀이다.

나이와 노화, 왜 사람마다 다를까

나이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흐르지만 노화의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같은 60세라도 어떤 이는 산책과 모임을 즐기며 팔팔하고, 어떤 이는 잔병치레가 잦다. 차이를 만드는 요인으로 생활습관, 호르몬 균형, 줄기세포의 재생 능력 등이 자주 언급된다. 유전이 밑그림을 그리지만, 평소의 선택이 색을 입힌다.

줄기세포: 몸을 고치는 숨은 수리공

줄기세포는 필요에 따라 여러 세포로 바뀔 수 있는 몸속의 수리공 같은 세포다. 상처가 나면 피부를, 피가 부족하면 혈액을, 손상이 생기면 그 조직을 보수하는 데 동원된다. 이때 줄기세포가 특정한 일을 맡는 세포로 바뀌는 과정을 분화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 ‘만능 후보 선수’였던 세포가 상황에 맞춰 피부·피·신경 같은 전문 선수로 포지션을 정하는 것이다.

젊을 때는 이 수리공들이 부지런히 움직여 회복이 빠르지만 나이가 들수록 줄기세포의 기능이 함께 줄어든다. 마치 공장이 예전만큼 가동되지 않는 것처럼 재생 속도가 떨어지고, 면역력과 조직 회복력도 둔해진다.

호르몬: 줄기세포의 스위치를 켜는 지휘자

호르몬은 몸이 스스로 만들어 내는 신호 전달 물질이다. 혈액을 타고 전신을 돌며 ‘지금은 성장할 때’, ‘에너지를 아껴 쓸 때’, ‘손상 부위를 고칠 때’ 같은 지시를 내린다. 성장호르몬, 에스트로겐, 테스토스테론, 갑상선호르몬 등이 대표적이다.

나이가 들면 대체로 호르몬 분비가 줄고 균형도 흔들린다. 문제는 호르몬이 줄기세포의 활동에도 직접 신호를 보낸다는 점이다. 신호가 약해지면 줄기세포는 ‘깊은 잠’에 빠지기 쉽고, 적절한 호르몬 환경이 유지되면 줄기세포가 깨어나 손상 복구와 새 세포 보충에 더 적극적으로 나선다.

엑소좀: 호르몬 신호를 잇는 ‘초미세 택배 상자’

엑소좀은 세포가 서로 대화할 때 쓰는 아주 작은 주머니다. 지름이 머리카락 굵기의 수천 분의 1 수준(보통 30~150나노미터)으로, 안에는 단백질·지방·작은 유전자 조각(마이크로RNA 등)이 담긴다. 이 주머니가 혈액 같은 체액을 타고 이동해 다른 세포에 달라붙고, 내용물을 전달해 그 세포의 행동을 바꾸는 역할을 한다. 쉽게 말해 세포 간 택배다. 과학자들은 이런 작은 주머니들을 통틀어 ‘세포밖소포’라고 부르며, 그중 안쪽에서부터 만들어져 밖으로 내보내지는 유형을 엑소좀이라 부른다. 엑소좀은 운동, 스트레스, 식사 상태에 따라 양과 내용물이 달라질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엑소좀이 호르몬을 만드는 세포의 작동과 호르몬 분비에도 관여한다는 증거가 빠르게 쌓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슐린 분비와 엑소좀

지방조직에서 나온 엑소좀이 췌장의 베타세포(인슐린을 내는 세포)로 메시지를 보내 혈당 자극에 대한 반응성과 인슐린 분비(식후 급증 반응)를 키워준다는 보고가 있다. 즉 지방세포-췌장 사이의 원거리 대화에 엑소좀이라는 매개체가 작동해 호르몬(인슐린) 분비량을 조절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반대로 염증성 면역세포에서 나온 엑소좀이 베타세포 기능을 해치고 인슐린 분비를 떨어뜨리는 상황도 관찰된다. 비만·당뇨 같은 질병 맥락에서는 이런 유해한 ‘나쁜 뉴스’가 엑소좀 택배를 통해 전달될 수 있다는 의미다.

여성호르몬 생성과 엑소좀

난소의 과립막세포(난자를 둘러싼 세포)와 여포액 안에는 엑소좀이 풍부하다. 이 엑소좀이 과립막세포의 에스트로겐 생성(스테로이드 합성)을 돕고, 세포 증식·생존에 영향을 주는 등 난소 호르몬 환경을 미세 조정한다는 연구들이 나와 있다. 즉, 난소 내부에서도 세포 간 엑소좀 교환이 활발하고, 그 결과 여성호르몬 분비의 미세한 조율이 일어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장기-장기 간 교신

간에서 나온 엑소좀이 췌장 베타세포의 인슐린 유전자 발현을 자극한다는 동물실험 결과도 있다. 몸속 장기들이 엑소좀을 매개로 원거리 대화를 하며 호르몬계 반응을 함께 조정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처럼 엑소좀은 호르몬을 직접 분비하는 세포의 민감도와 분비량, 그리고 호르몬 표적 조직의 반응성을 바꾸는 데 관여한다. 호르몬 ↔ 줄기세포를 잇는 통신망에 엑소좀이 중요한 ‘중간 매개’로 자리잡아 가는 중이다. 운동을 했을 때 근육에서 나와 전신에 좋은 신호를 보내는 물질들(일명 ‘운동 신호물질’) 가운데에서도 엑소좀·세포밖소포 기반 신호가 주목받는다. 규칙적인 운동이 엑소좀 신호의 질과 양을 바꿔 대사·면역·호르몬 반응을 이롭게 만든다는 관찰이 늘고 있다.

엑소좀, 한 줄로 이해하기

세포가 내보내는 아주 작은 주머니로, 안에 실린 단백질·지방·유전자 조각이 다른 세포의 스위치를 켜고 끄는 메신저 역할을 한다. 그래서 호르몬을 만드는 세포와 표적 조직 사이의 미세 조율사로도 일한다.

‘늙지 않는 약’ 대신 균형을 지키는 법

진시황이 찾던 늙지 않는 약은 아직 없다. 대신 생활습관을 통해 호르몬의 하루 리듬(생체시계)을 정돈하고, 줄기세포와 엑소좀이 일할 환경을 좋게 만들 수는 있다. 비용보다 지속성이 중요하다. 과하게 시작하지 말고, 이번 주에 바로 할 수 있는 것 한 가지부터 붙잡는 편이 오래 간다.

호르몬 균형·엑소좀 친화 생활 수칙 7

1. 수면을 규칙적으로: 매일 같은 시간에 자고 일어난다. 7~8시간 깊은 잠을 목표로 하고, 잠들기 1시간 전엔 화면을 멀리한다. 밤잠이 안정되면 성장호르몬 분비와 회복 과정이 매끄러워지고, 엑소좀 신호의 일중 리듬(밤·낮)도 정돈된다.

2. 아침 햇빛과 가벼운 움직임: 기상 후 30분 안에 아침 햇빛을 쬐고 10~15분 가볍게 걷는다. 생체시계를 앞당겨 낮과 밤의 호르몬 리듬을 또렷하게 만든다.

3. 단백질 균형 섭취: 매 끼니 손바닥 한 장 정도의 단백질(생선·달걀·두부·콩·살코기)을 챙긴다. 단백질은 근육 유지와 호르몬 생성의 재료가 되며, 조직 회복을 돕는 엑소좀 신호의 질에도 영향을 준다.

4. 근력 + 유산소 운동, 주 3~5회: 스쿼트·푸시업 같은 근력 운동과 30분 내외의 빠른 걷기를 섞는다. 운동은 근육·지방·혈관에서 나오는 유익한 엑소좀 신호를 늘려 대사·면역·호르몬 반응을 이롭게 만든다는 보고가 있다.

5. 스트레스 배출 루틴: 스트레스가 길어지면 코르티솔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과도하게 올라 수면·식욕·면역을 흔든다. 심호흡·명상·산책·가벼운 취미 중 나에게 맞는 한 가지를 매일 10분이라도 실천한다.

6. 과한 당분·초가공식품 줄이기: 단 음료, 밤늦은 간식, 과한 술은 혈당과 염증을 급격히 올려 호르몬 리듬과 엑소좀 신호의 균형을 망친다. 물·차·통곡물·채소·견과류 위주의 식단으로 기본기를 다진다.

7. 정기검진과 전문가 상담: 갑상선, 당뇨, 지질, 빈혈 등 기본 혈액검사를 주기적으로 확인한다. 호르몬(또는 엑소좀) 치료는 아직 연구 단계의 영역이 많으니 반드시 의료진과 상의해 적응증과 위험을 따져 결정한다.

건강한 노화는 기술이 아니라 습관

노화 자체는 멈출 수 없지만, 어떻게 늙어갈지는 선택할 수 있다. 수면, 빛, 식사, 움직임, 사람 사이의 관계가 하루하루 쌓여 호르몬의 리듬을 정렬하고 줄기세포·엑소좀이 일할 환경을 만든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한 노화를 노년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기능적 능력을 개발하고 유지하는 과정으로 정의한다. 번쩍이는 시술이나 값비싼 보약보다, 오늘 할 수 있는 작은 습관 한 가지가 건강한 노화의 출발점이다.

[앞으로 계속될 연재에서는 이런 어려운 딥 바이오 이야기들을 최대한 쉽고 친근하게 풀어보려고 합니다. 줄기세포의 민주화가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고, 실제 병원 현장에서 환자분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그 과정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문지숙 차의과학대학교 바이오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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