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공공주도·수요억제 기조
서울시는 민간정비·속도전 맞불
토허구역 지정 두고 충돌 가능성도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서울 주택시장에 혼란이 가중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서울시가 주택공급 방안을 두고 정반대 행보를 보이고 있어서다. 정부는 공공 주도 주택공급과 수요 억제를 강조하는 반면 서울시는 민간 중심 정비사업과 속도전을 내세우고 있다. 향후 주택공급 정책이 갈등과 협의가 반복되는 불안정한 구도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오세훈 “강남 신규 공급 없인 안정 불가”

15일 서울시에 따르면 오세훈 서울시장은 최근 노원구 백사마을 재개발 현장에서 “강남에 신규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리지 않는 한 집값 안정은 어렵다”고 강조했다. 오 시장은 정부가 내놓은 ‘9·7 주택공급 확대방안’이 수도권 신도시와 공공택지 위주 공급에 집중하면서 실제 가격 상승의 진원지인 서울 강남권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추석 전 보완책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정부는 지난 7일 ‘주택공급 확대 방안’을 통해 2030년까지 수도권에 135만가구, 연간 27만가구를 착공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주도하는 공공주택 공급에 방점이 찍혀 있다. 서울에는 33만4000가구(연평균 6만7000가구)가 배정됐다. 공급 방식은 노후 공공임대 재건축, 공공청사·국공유지 재정비, 도심 유휴부지 활용, 정비사업 지원 등이 핵심이다. 다만 전체 물량에서 공공임대 비중이 높아 실수요자 중심의 주택 수요를 충분히 흡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시장의 평가가 엇갈린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9일 서울 노원구 중계동 ‘백사마을’을 방문해 철거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오세훈 서울시장이 9일 서울 노원구 중계동 ‘백사마을’을 방문해 철거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서울시가 준비 중인 보완책의 핵심은 민간 정비사업 촉진이다. 지난 7월 24일 발표한 ‘주택 공급 촉진 방안’의 연장선이 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당시 서울시는 신속통합기획을 한 단계 진화시킨 ‘신통 시즌2’를 예고하며 정비구역 지정부터 관리처분인가까지 각종 행정 절차를 병행 처리하는 방식으로 평균 18.5년에 달하던 재건축·재개발 소요 기간을 13년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절차 간소화 외에도 조합 설립을 1년 내 완료하도록 유도하고, 처리기한제를 확대하는 등 행정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구상도 담겼다.

이번 보완책은 이러한 기본 틀을 유지하되 강남권을 겨냥한 보강책이 추가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처럼 초고가 아파트가 밀집한 지역은 사업성이 높지만 조합원 분담금과 고분양가 심사 등 제도적 부담이 커 속도가 더디다. 이에 따라 용적률 인센티브 조정이나 서울주택진흥기금을 활용한 초기 사업비 지원 확대 같은 수단이 검토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실제로 강남권 재건축은 수천가구 단위 대규모 사업이 많아 착수 단계에서만 수백억~수천억원대 자금이 필요하다. 서울시가 이를 뒷받침하면 금융조달 부담을 줄이고 사업 동력을 조기에 확보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재명 “무한정 공급 불가···투기 수요 차단”

반면 정부는 공공주도 공급과 수요 억제를 병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1일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공급을 무한대로 늘릴 순 없다”며 “수요는 실수요자 중심으로 바꾸고, 투자를 위해 부동산 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최소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주거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초과·투기 수요를 통제하고 공급도 실효적으로 하겠다”고 강조했다. 투기적 수요를 차단하지 않으면 공급 정책 효과도 제한적이라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 대통령의 발언 배경에는 최근 강남을 중심으로 집값 상승세가 재점화되는 흐름이 자리한다. KB부동산에 따르면 9월 둘째 주 기준 강남구 아파트값은 연초 대비 15.5% 올랐고, 송파구는 13.7%, 서초구는 12.8% 상승했다. 성동구(11.8%), 용산구(9.9%), 마포구(8.7%) 등 이른바 ‘한강벨트’로도 상승세가 확산 중이다. 정부가 강남발 집값 불안을 억제하지 못하면 전체 수도권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정책 기조에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토지거래허가구역 연장 여부, 갈등 분수령

서울시와 정부의 시각차는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구역)에서 본격적으로 맞부딪힐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정부는 9·7대책을 통해 토허구역 지정 권한을 국토부 장관으로 확대했다. 국토부가 직접 서울 주요 지역의 거래를 관리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이는 정부가 직접 시장 통제력을 강화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강남3구와 용산구 토허구역은 이달 말로 지정이 끝난다. 집값 상승세를 고려할 때 토허구역이 연장되거나 성동·마포 등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만약 정부가 확대 조치를 단행한다면 민간 정비사업 속도를 높이려는 서울시 정책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서울 주택공급을 둘러싼 갈등은 정치권으로도 번지고 있다. 여권 내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6일 자신의 SNS를 통해 “오 시장이 약속한 24만호 공급 성과는 착공 기준으로 사실상 ‘제로’”라고 비판했다. 신속통합기획과 모아타운을 내세웠지만 아직 가시적 성과가 없다는 지적이다.

이에 오 시장은 같은 날 “재개발·재건축을 빵 찍어내듯 생각하는 무지한 발언”이라고 맞받았다. 이어 “152곳 정비구역을 지정해 21만호 공급 토대를 마련했는데, 공급 속도를 문제 삼는 건 주거정비사업에 대한 기본 이해가 부족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양측의 공방은 단순한 정책 논쟁을 넘어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한 ‘전초전’ 성격이 짙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권 내 서울시장 후보 경쟁과 맞물리면서 주택공급 이슈가 정치적 공방의 핵심 소재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당분간 정책 혼선이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전국 단위 투기 억제에 집중하고, 서울시는 지역 내 공급 확대에 매달리다 보니 정책 목표와 수단이 엇갈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이런 정책 불일치가 시장 불안을 오히려 키울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중앙과 지방 간 조율 메커니즘을 구축하지 않는 한 불안정한 동행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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