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규제 방점 노동안전 대책 발표
산재 빈발 건설사 등록말소도 가능
대출한도·금리 산정 산재이력 반영
“기업 전방위 옥죄는 조치” 우려도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정부가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해 초강력 제재 카드를 꺼냈다. 연간 3명 이상 노동자가 사망한 기업에 대해 영업이익의 최대 5%를 과징금으로 부과하고, 산재 사망자가 많이 나오는 건설업체는 등록 말소까지 가능하도록 했다. 솜방망이 처벌로는 안전 불감증을 막을 수 없다는 게 정부 판단이지만, 경영계를 중심으로 처벌 강도가 기업 존폐를 위협할 수준이란 우려가 나온다. 

15일 정부는 당정협의회를 거쳐 관계부처 합동으로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핵심은 기업의 안전 관리 의무를 경제적 부담으로 직결시키는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정부는 지자체, 민관과 협업해 안전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과징금 신설 등 현장에 실효성 있는 제재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며 “당은 대책에 입법, 예산수반 과제가 다수 포함된 만큼, 대책의 차질없는 이행을 위해 산안법 개정 절차에 즉시 착수하고 내년 예산 반영도 적극 지원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우선, 연간 3명 이상 산업재해 사망자가 발생한 기업엔 영업이익의 5% 이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영업이익이 불분명하거나 적자가 발생한 공공기관 등에는 최소 3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한다.

15일 국회에서 열린 당정협의회에서 노동안전 종합대책이 발표됐다. / 사진=최성근 기자
15일 국회에서 열린 당정협의회에서 노동안전 종합대책이 발표됐다. / 사진=최성근 기자

사망사고가 잦은 건설업은 한층 더 엄격히 규제한다. 최근 3년간 영업정지 처분을 두 차례 받은 뒤 다시 사유가 발생하면 건설업 등록 자체를 말소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건설업체에 대한 영업정지 요건도 강화된다. 기존에는 동시 2명 이상 사망일 때만 적용됐지만 앞으로는 연간 다수 사망으로 확대된다. 영업정지 기간도 사망자 수에 따라 현행 2~5개월에서 더욱 늘어난다. 등록 말소가 이뤄질 경우 신규 사업, 수주, 하도급 등 영업활동 전반이 중단된다. 건설업 외 업종도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인허가 취소나 영업정지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손질한다.

정부는 제재 수단을 금융·자본시장으로도 확장한다. 금융권 여신 심사와 대출 약정을 개편해 중대재해 위험이 대출금리, 한도, 보험료 등에 반영되도록 한다. 특히 분양보증이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보증 시 ‘안전도 평가’를 신설해 심사를 강화한다.

노동자 사망으로 영업 정지를 받은 건설사는 선분양이 제한된다. 상장회사가 중대재해로 형사판결을 받으면 즉시 공시해야 하고, 이는 기관투자가들의 ESG 평가와 스튜어드십 코드에도 반영된다. 정부는 정책자금과 산재보험기금 투자에서도 중대재해 반복 기업을 배제할 방침이다.

정부는 이번 대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감독 역량을 대폭 보강한다. 2028년까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산업안전 감독관을 3000여 명 증원하고 민간과 협력해 감독 범위를 넓힌다. 또한 ‘안전한 일터 특별위원회(가칭)’를 설치해 노사정과 전문가가 참여하는 구조를 마련한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통해 노동자뿐 아니라 노동조합과 근로자 대표에게도 작업 중지나 시정조치를 요청할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경영계는 즉각 반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논평을 내고 “형사처벌 강화, 영업이익 기반 과징금, 영업정지·공공입찰 제한, 외국인 고용 제한, 건설사 등록 말소 요건 강화 등은 기업 경영을 전방위적으로 옥죄는 조치”라고 비판했다. 이어 “법제화될 경우 개별 기업뿐 아니라 협력업체까지 타격을 받으며 국가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번 대책이 기업의 안전투자 확대를 강제하는 효과를 낼 수 있지만, 과징금과 영업정지 등 사후 처벌에만 의존할 경우 위험을 은폐하는 방향으로 대응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단 지적이 나온다. 

경총 측은 “정부가 산재 예방 정책을 강화하려면 영세 사업장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며 “안전 인프라 구축, 교육, 예방 사업 등에 대한 실질적 지원이 선행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도 산재 감소 효과가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또다시 형벌과 경제 제재를 강화하는 것은 실효성이 검증되지 않은 처벌 중심 정책이란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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