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타이어, 나눔재단 ‘후원 단절’ 후 “명칭 사용 못하게 해달라” 소송
법원 “출처 혼동·명성 손상 증거 부족”···재단 독립성 인정
35년간 사용된 재단 명칭, 사회적 혼동 우려도 부정···항소 전망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한국앤컴퍼니와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한국타이어)가 한국타이어나눔재단(나눔재단)을 상대로 제기한 ‘한국타이어’ 명칭 사용금지 소송에서 패소했다. 재판부는 오너 일가의 경영권 분쟁과 법인 표지 명성 침해 여부를 별개의 사안으로 봤다.
나눔재단은 지난 1990년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조양래 한국타이어 명예회장의 뜻에 따라 설립된 재단법인이다. 저소득층을 비롯한 사회적 소외계층에 대한 생활지원, 사회문화 사업의 시행 및 지원, 사회 복지와 관련된 학술 연구 및 장학사업 등을 펼쳐왔다. 한국타이어는 기반금 30억원을 포함해 400억원이 넘는 돈을 출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 명예회장의 장녀 이자 조현범 회장의 큰누나인 조희경씨가 2018년 이사장으로 선임돼 재단을 이끌어가고 있다.
한국타이어는 조희경 이사장이 조양래 명예회장을 당사자로 제기한 가사소송(한정후견심판 청구)이 진행 중이던 2024년 4월 ‘나눔재단은 한국타이어 표지 사용을 중단하라’며 이번 민사소송(명칭사용금지 청구)을 냈다. 후원 관계가 종료됐음에도, 나눔재단이 계속해 한국타이어 명칭을 사용한다면 출처 혼동의 가능성이 높고, 저명한 한국타이어 표지도 희석될 수밖에 없다는 게 이유였다.
업계는 30년 이상 이어진 나눔재단 후원의 단절 및 송사의 배경을 놓고 2020년부터 가시화된 조양래·조현범 부자와 나머지 세 남매(장남 조현식 고문, 장녀 조희경 이사장 차녀 조희원)의 ‘경영권 분쟁’의 연장선으로 해석해왔다.
그러나 이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민사62부(재판장 이현석 부장판사)는 오너 일가의 경영권 분쟁과 한국타이어 명성 손상 행위 등의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지난 5일 한국타이어 측 청구를 기각(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피고 대표자(조희경)가 그룹 회장(조양래)에 대해 한정후견 개시 심판을 청구하는 등 개인 간 분쟁이 있던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나눔재단과 한국타이어 사이에 분쟁이 발생했다거나 나눔재단의 행위로 인해 한국타이어 명성이 손상돼 한국타이어가 손해를 입었다거나 향후 손해를 입을 수 있는 위험이 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나눔재단이 부정경쟁방지법을 위반해 한국타이어의 ▲시설·활동을 혼동하게 하는 행위 ▲명성을 손상시키는 행위 ▲공정한 상거래 관행 위반해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했다는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나눔재단은 비영리 재단법인으로서 사회복지 지원·장학사업 등을 수행해 왔고, 원고들이 영위하는 자동차 타이어 제조·판매업과는 고객·거래처가 겹치지 않는다”며 “양자의 사업 주체와 활동 영역이 달라 영업상 혼동이나 명성 손상, 공정한 상거래 관행에 반하는 방법으로 경제적 이익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한국타이어와 나눔재단의 관계가 소멸되면 표지 사용에 대한 묵시적 허락 역시 해제된다는 한국타이어 측 주장도 “근거가 없다”며 기각했다. 재단이 35년간 한국타이어 명칭을 계속해 사용해 온 점도 고려됐다. 나눔재단은 2010년 한국타이어복지재단에서 한국타이어나눔재단으로 명칭이 변경됐을뿐 1990년 설립 당시부터 한국타이어 명칭이 빠진 적은 없다.
이번 판결은 1심 법원의 판단이다. 한국타이어 측은 항소로 다툼을 계속할 수 있다. 항소 기한은 판결문 수령일로부터 2주 이내다. 회사 측은 현재 항소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지주사 한국앤컴퍼니의 지분 구조는 조현범 회장이 42.03%로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하고 있으며, 조양래 명예회장이 4.41%를 보유하고 있다. 경영권 분쟁의 축이었던 장남 조현식 고문의 지분율은 18.93%, 차녀 조희원씨는 10.61%에 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