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노조, 주 4.5일제 전면 도입 요구···사측은 불가 입장 고수
불경기 속 이자장사로 홀로 호황, 고연봉 받은 은행원들 앞장서 파업 주도
여론 반응 싸늘···내부에서조차 적극 지지 기류 나타나지 않아
영업시간 축소로 소비자 피해 예상되나 구체적 절충 방안도 없어
[시사저널e=김태영 기자] 금융노조가 정부 정책에 맞춰 주 4.5일제 전면 도입을 요구하면서 총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불경기 속 이자장사로 홀로 호황을 누린다는 비판 속에 고연봉을 받은 은행원들이 근무 시간 단축까지 요구하는 것을 두고 민심은 물론 내부에서조차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은행 대면 영업시간 축소로 인한 소비자 피해 등 논란이 예상되지만 노조 측은 구체적인 절충 방안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노조는 오는 16일 총력투쟁 결의대회와 26일 총파업을 앞두고 교섭 일정을 조율 중이다. 금융노조는 주 5일제 근무가 2000년 금융권 노사 합의에서 시작된 것처럼 주 4.5일 근무도 금융권이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산성 감소나 임금 삭감 없이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금요일 오후에 일찍 문을 닫는 대신 월~목요일에는 영업시간을 늘리면 생산성이 줄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측은 지난 4월부터 진행된 교섭에서 주 4.5일제 수용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 고위직 시중은행 관계자는 "주 5일제는 도입 당시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서 매우 보편화돼 있었다"며 "주 4.5일 근무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근무 방식이 필요하고 서비스업의 특성상 다른 산업보다 먼저 도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앞서 금융노조는 조합원 찬반투표를 통해 94.98%의 찬성률로 쟁의행위를 가결해 오는 26일 총파업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파업이 예고대로 실행되면 시중은행과 국책은행, 신용보증기금,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 금융노조 소속 노조원들은 업무를 전면 중단한다.
이처럼 양측의 이견이 큰 상황에서 여론의 반응은 싸늘하다. 시중은행들이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하고 있는 가운데 억대 연봉을 받는 은행원들이 앞장서 근로 시간 단축에 목을 매는 모습이 곱지 않다는 시선이다.
전국은행연합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작년 평균 연봉은 1억1490만원에 육박했다. 올 상반기에는 역대 최고액인 6350만원의 평균 급여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성과급까지 더해지면서 삼성전자(6000만원)나 현대자동차(4500만원) 등 국내 간판 기업 급여를 크게 웃돌았다.
앞서 시중은행들은 금리 인하기에도 대출 금리를 높이면서 사상 최고 실적을 연이어 경신했다. 금융감독원이 집계한 올 상반기 국내은행의 당기순이익은 14조900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8.4% 증가해 반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금융사들의 개인 일탈·내부통제 실패 등으로 인한 금융당국의 기관·개인 제재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달갑지 않은 여론에 한몫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 8월까지 KB·신한·하나·우리·NH농협금융 등 5대 금융지주가 증권선물위원회로부터 받은 제재 건수는 총 18건으로 집계됐다. 지난 2023년 한해 총제재 건수가 21건이었는데 올해 남은 기간을 감안하면 이를 넘어설 것이 확실시된다.
은행권의 파업 요구가 빈번하다는 점 또한 비판을 받는 이유다. 금융노조는 지난해에도 출근 시간을 30분 늦춰 달라며 영업시간 조정을 요구하면서 총파업을 예고했다. 당시 파업 찬성률은 95%였다. 그러나 노사가 일부 근무 조건 개선에 합의하면서 예정했던 파업을 직전에 철회했다.
일선 은행원들 사이에서도 총파업을 적극 지지하는 기류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근무시간 조정 대안 없이 일단 제도를 도입한 뒤 논의하자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말했다. 지난 2022년 금융노조의 총파업 당시에도 '귀족 노동자'라는 부정적인 시선 아래 시중은행들은 총파업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면서 낮은 참여율을 나타내기도 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영업점의 문을 닫고 진행하는 총파업은 아무래도 금융소비자들의 불편이 뒤따르기 때문에 시중은행 입장에서는 참여하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근무 시간 단축 현실화되면 영업점 운영시간 단축으로 이어져 소비자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미 은행 업무 대부분이 비대면으로 이뤄지고 있는 와중에 영업시간을 더 줄일 경우 금융 취약계층의 불편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 공공성을 앞세워온 노조가 정작 공공성의 최전선에서 소비자를 볼모로 잡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근무 시간이 단축되면 어떤식으로든 금융소비자 피해가 불가피한데 노조 측은 구체적인 절충안이 없다"며 "금융소비자 보호와 금융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대명제 아래 노사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