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으로 이은 집의 시간

오래된 집을 고쳐 두 번째 신혼집으로 완성한 강혜민 씨@gareth_hyemin와 가레스 그린 씨@gareth.c.green 부부. 손수 만든 가구로 채운 공간에서 보내는 일상은 낭만으로 가득하다.

2층 거실에는 패브릭 소파와 벽난로, 조명을 두어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왼쪽 모듈형 소파는 잭슨카멜레온의 ‘슬래시’, 오른쪽 1인용 소파의 프레임은 가레스 씨가 직접 만든 것.
1층 거실, 직접 만든 다이닝 테이블 위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강혜민 씨와 가레스 씨. 뒤쪽 벽면을 채운 수납장 또한 남편의 손에서 완성됐다.

 브랜드 마케터 강혜민 씨와 무대 조명 디자이너이자 목수로 일하는 가레스 그린 씨. 영국 런던에서 만나 긴 장거리 연애 끝에 한국에 자리 잡은 두 사람은 신혼집을 연희동에 꾸렸고, 이번에도 같은 동네에 두 번째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촬영 스튜디오로도 활용할 수 있는 집을 찾던 중 1970년에 지어진 2층 구옥을 발견했는데, 너무 현대적이지 않으면서도 넓은 구조와 오래된 주택만이 지닌 분위기에 매료돼 집을 고쳐 살겠다는 도전 정신으로 계약했다. 하지만 10년 가까이 비어 있던 집은 사람이 살 수 없는 상태라 바닥과 벽을 전부 걷어내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고, 벽에는 단열재를 채우고 페인트를 칠했으며 바닥에는 흙을 새로 깔아 난방 공사를 진행했다. “처음에는 5개월이면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철거를 시작하고 보니 고칠 게 끝이 없더라고요.” 창문 새시와 난방을 제외한 모든 작업은 부부가 직접 했지만, 1년여에 걸친 공사 동안 수압이 낮아지거나 배수가 되지 않는 등 예상치 못한 문제가 이어졌고, 디자인 전문가가 아닌 두 사람에게는 마감재를 고르는 일도 쉽지 않았다. “나무로 짠 벽이 잘 맞을지, 벽과 바닥 색이 어울릴지, 최종적으로 어떤 분위기가 나올지 모두 확신할 수 없었죠. 핀터레스트 같은 사이트에서 레퍼런스를 찾으며 하나씩 실험하듯 완성해 나갔어요.” 큰 구조 변경은 하지 못했지만 주어진 공간 안에서 집의 풍경을 새롭게 그려냈다. 1층은 기존 부엌과 안방의 위치를 바꿔 작은 부엌이 있던 자리에 가레스 씨의 목공 작업실을 두었고, 가장 큰 안방은 벽과 붙박이장을 모두 철거해 개방감 있는 부엌으로 완성했다. 2층은 따뜻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가레스 씨의 취향이 가장 많이 반영된 공간으로 부부가 사용하는 침실과 서재, 그리고 여유롭게 쉴 수 있는 소파를 두었고 벽난로와 조명으로 아늑함을 더했다. 1층은 오래된 나무 천장의 문양을 살렸지만, 2층은 기존 천장을 철거하고 삼각형 지붕 구조를 드러내 높은 층고와 개방감을 확보하며 이국적인 매력을 높였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한 집이지만 방치됐던 공간을 멋스럽게 되살린 부부에게 이웃의 “고맙다”는 인사와 “외국에 온 것 같다”라는 손님들의 감탄은 큰 보람이 됐다. 

오랜 세월을 견딘 나무 천장은 그대로 살리고, 그에 어울리는 목재로 문과 벽을 짜 넣었다. 곳곳에 놓인 초록빛 식물이 조화를 이룬다.
2층으로 향하는 계단 천장에는 뉴욕에서 들여온 이사무 노구치의 아카리Akari 36N 램프를 설치해 안락한 분위기를 냈다.

 

손수 만든 가구 위에서 고양이들과 보내는 오후, 

부부의 웃음이 식탁 위로 번지는 저녁. 이국적인 

낭만이 깃든 오래된 2층집에는 소소한 행복을 

담은 부부의 시간이 새롭게 쌓여가고 있다. 

아기자기한 포인트가 되는 창틀의 고양이 모형.
안방은 주방으로 새롭게 단장하고, 계단 옆쪽 벽을 터서 작은 팬트리 공간으로 완성했다.

함께 만든 집에서 쌓는 하루
집을 새롭게 단장하며 가레스 씨는 집 안 곳곳의 나무 가구와 수납장도 손수 제작했다. 강혜민 씨의 취향을 바탕으로 가레스 씨가 형태를 완성한 작품들로, 나무 벽과 색을 맞춘 가구들은 집 안에 온기를 더하며 안락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부엌 한가운데에는 강혜민 씨가 오랫동안 꿈꿔온 아일랜드 식탁이 자리하는데 역시 가레스 씨의 손에서 탄생한 가구다. 부엌 입구의 벽처럼 보이는 부분은 맞춤 수납장으로 컵 선반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했다. 1층 거실의 큰 다이닝 테이블도 가레스 씨의 작품으로, “이 식탁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가구예요. 아내가 보여준 사진 속 디자인은 물리적으로 구현이 쉽지 않았죠. 두 부분으로 나뉜 상판을 하나의 다리로 지탱하는 구조를 고안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완성했는데 아내의 가족이 오기로 했던 터라 제때 끝내지 못할까 봐 꽤 긴장했었죠(웃음).”라며 뿌듯함을 전했다. 그의 손끝에서 완성된 이 테이블은 이제 손님들을 맞이하는 집의 중심이 되었다. 2층 서재에는 고양이들이 오르내릴 수 있는 계단형 책장을 만들었고, 그 뒤로는 막혀 있던 욕실 위 공간을 터서 만든 다락방이 숨어 있다. 작지만 포근한 둘만의 아지트인 이곳에서 부부는 책을 읽으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거나 손님이 오면 침실을 내어주고 잠을 청하기도 한다. 강혜민 씨는 남편과 고양이들과 함께하는 일상이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말한다. “남편이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요. 부엌의 넓은 조리 공간과 창 밖 경치 덕분에 더 즐기게 됐죠. 때로 지인을 초대하면 남편이 마당에서 바비큐를 구워 대접하는데,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저에겐 큰 행복이에요.” 영국에서 온 가레스 씨에게도 직접 고친 이 집은 특별하다. “익숙했던 영국에서의 삶을 뒤로하고 한국에 정착한 건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그래서 집이 주는 안정감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아내와 고양이들이 함께 있다는 것도 그렇고요.” 손수 만든 가구 위에서 고양이들과 보내는 오후, 부부의 웃음이 식탁 위로 번지는 저녁. 이국적인 낭만이 깃든 오래된 2층 집에는 소소한 행복을 담은 부부의 시간이 새롭게 쌓여가고 있다.

서재의 책장은 고양이들이 오르내릴 수 있도록 계단형으로 만들었다. 그 위 다락은 부부가 휴식을 취하는 아늑한 은신처.
1층의 게스트 룸. 손수 제작한 나무 침대 프레임과, 은은한 조명이 어우러져 손님을 위한 따뜻한 공간이 된다.
1층의 게스트 룸. 손수 제작한 나무 침대 프레임과, 은은한 조명이 어우러져 손님을 위한 따뜻한 공간이 된다.

CREDIT INFO

editor    신문경
photographer    김잔듸·임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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